힘내! 돌핀아

by 무량화

엊그제, 아침엔 청명한 날씨였다.

전날 동쪽 바닷가 여기저기를 섭렵한 터라 피곤해서 늦잠을 잤다.

느지막이 일어나 보니 푸른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기상도라 이번엔 서쪽 바다로 방향을 잡았다.

모슬포 신창 판포 월령 금능 협재 애월....

어디라도 풍광 아름다운 바다라 맘 내키는 데서 내리면 된다.

그런데 어럽쇼? 신시가지 겨우 지나는데 바닷가에서 농무가 굼실굼실 기어올라왔다.

원래 안개가 잘 끼는 동네라지만 천천히 스며드는 정도가 아니라 뭉터기로 밀려드는 해무.

앞으로 나갈수록 이미 진행 방향 거의가 부옇게 변해있었다.

중문에 이르자 시가지 전체가 숫제 몽롱했다.

안개에 갇혀 시야가 흐려지자 목적지조차 흐릿해지며 생각 분다워졌다.

어느 바다건 이리 우중충한 날씨라면 기대했던 파란 물빛은 물론 탁 트인 전망도 망망대해 조망도 다 틀렸다.

변화무쌍한 일기,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서 편히 쉴 걸 괜히 나섰잖아.

그 와중에도 차는 내처 달려 산방산 즈음이다.

겨우 이마만 보이는 산방산에 용머리 해안은 지우개로 자취 말짱 지워졌다.

도중에 내려 사계해안을 걸어볼까, 송악산 한 바퀴 돌아볼까?

자욱한 안갯속이라 그 역시 내키지 않는다.



차가 모슬포를 스치자 얼핏 돌핀이 떠오르며 갈피 못 잡던 마음의 방황은 종료됐다.

마침 시간대도 얘네들이 근처를 지나갈 무렵이다.

오후 서너 시경 귀여운 수애기가 무리 지어 점핑 묘기를 보여주는데 이날 행운처럼 그들과 어쩌면 조우할지도.

남방큰돌고래 떼가 동일리에서 무릉리 영락리 인근 육상에서도 충분히 관찰되기에 어느 핸가는 한주 내내 찾아온 적도 있다.

주저 없이 동일리에서 차를 내렸다.

낯익은 길로 접어들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서림연대 막 지나서였다.

바다 쪽 어디선가 부웅~뱃고동 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이어서 희미하게 요트 돛대가 보이더니 호위함처럼 두 척의 유람선이 뒤따라 나타났다.

이는 돌고래가 지나가고 있다는 신호다.

시커먼 현무암 해안으로 내려섰다.

바위가 다행히 미끄럽지는 않아 물 가까이 나아가 높직한 암반에 올라섰다.

회색빛 천지, 하늘도 바다도 잔뜩 찌푸린 채 온통 우울 모드다.

무거이 철썩대는 파도소리 아니라면 끝장난 지구 한 모퉁이를 보여주는 재난영화 화면 같기도.

그래도 고맙게 한 커플이 옆에서 조잘거리는 덕에 혼자라는 두려움은 없었다.

도로 쪽에는 한무리 섬일주 대장정 팀인지가 지나가기도 했고.

계속 시선은 요트 주변에 모아졌다.

그때였다.

검은 점 하나가 조금씩 커지더니 뭍 쪽으로 다가왔다.

묵직한 잿빛 바다 버겁게 자맥질하느라 올라왔다 가라앉았다 하면서 헤엄쳐 오는 건 딱 한 마리 돌고래였다.

육안으로는 보였으나 사진에 담길 거리는 아니었다.

우연히 한순간 동영상에는 포착됐다.

배에 탄 구경꾼들의 함성에 떼밀려 우왕좌왕하는 사이 무리에서 홀로 떨어진 돌핀.

설마 우두머리는 아닐 테고 아마도 철부지 꼬맹이나 분조 임무를 맡은 소대원일지도 몰라.

아무튼 저 넓은 바다에서 외따로 고군분투하는 수애기가 짠하기 그지없었다.

놀이가 일상이 아니라 투쟁인 거 같아서.

그래도 잠깐 재롱 한번은 보여주고 가뭇없이 사라져 간 수애기.

이만으로도 예우상 대접은 해줬으니 고맙지 뭔가.

돌팍길 걸어 나오는데 여기저기 숨을 곳을 찾는 게가 눈에 띄었다.

놀래켜서 미안해, 함부로 너희들 잡거나 다치게 하지 않을게.

길 한켠 해녀의 집에선 해녀들이 물질해 온 성게를 손질하느라 곁눈도 주지 않았다.

고방에 걸쳐둔 테왁과 망사리에서는 물이 뚜뚝 떨어졌다.

호오이~~ 숨비소리 거칠게 몰아쉬며 바다에서 생존 엮어가는 무릇 그들만이랴.

생명 지닌 모두,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 그건 생존을 위해 고해를 건너는 투쟁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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