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부르셔도 예~

by 무량화


몇 해 전 랭커스터에서다.

여든일곱의 도로시 할머니는 매일 아침 미사 후 30분 간의 로사리오 기도회를 이끄는 봉사자다.

귀퉁이 닳은 성서를 지금도 안경 없이 읽고 구형 세단을 씽씽 몰고 다니는 자그마한 체구의 노부인이다.

노년의 얼굴에는 자신이 살아낸 세월의 이력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시간 흐름에 순응하며 자연스럽게 나이 든 평안한 얼굴의 주름살은 그마저 품위가 서렸다.

소싯적 일이지만 오래 교사생활을 해서인지 목소리 낭랑하고 항시 환한 표정 짓는 상냥스런 그분은

그 연세에도 걸음걸이 재바르며 허리가 아주 반듯하다.

무엇보다 총기가 맑은 분으로 드나듦이 많은 모임인데도 한번 들은 이름은 틀림없이 기억한다.

온화한 아우라를 지닌 그분은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뭐든 곱게 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언제나 주위에 긍정의 플러스 기운을 전파시키는 분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날마다 고백송을 바치고 성체를 영하며 매 순간 감사 기도 속에서 사시는 그분.

언제든 하늘의 부름 받는다 해도 예! 하고 지체없이 떠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되신 도로시 할머니.

세사에 얽혀 공연히 일을 만들어가며 바쁘게 지내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분이셨다.

나 하나쯤 우주에서 스러져 무로 돌아간다 해도 아무 일 없었던 양 세상은 여전스레 돌아갈 건데.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구경을 하던 중, 명멸하는 불꽃에서 문득 우리네 생애가 겹쳐졌다.

저마다 누군들 저처럼 빛나던 청춘의 황금 시기가 없었으랴.

그리고... 우여곡절의 긴 세월 지난듯싶건만 지내놓고 보니 찰나보다 조금 긴 잠시 한 순간.

어느새 후딱 노년에 이르러, 숨결 가다듬어 고르며 본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마무리 작업을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고종명의 바람대로 건강하게 살다가 편안히 선종할 수 있기를......

폭죽은 하늘로 쏘아 올려진 잠시 후 화려하게 피어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리곤 가뭇없이 어둠 속으로 흩어지고 만다.

까만 우단 드리운 밤하늘에 찬연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올랐다가 한순간의 절정을 선보인 뒤 덧없이 사라지는 불꽃.

긴 꼬리를 끌며 높직이서 색색의 꽃송이로 연소하는 동안 황홀한 공중 곡예를 펼쳐 보이면서.

그 짧디 짧은 순간에 불꽃은 전 생애를 산다.

수천의 빛 알갱이는 구형으로 퍼져나가며 활짝 개화한다.

최고 정점의 극치를 접한 사람들은 연신 탄성을 보낸다.

그 조차 찰나의 순간 지나면 명멸하던 불꽃은 작은 점 되어 이윽고 허공 중에 스러져 버린다.



삼빡한 최후, 가뭇없는 소멸이자 후회없는 종언이다.

더러는 휘슬 소리와 동시에 맥없이 연기 내뿜으며 한줄기 꼬리로 사라지기도 한다.

공중에서 순간 명멸하다가 흩어지는 불꽃... 불의 꽃송이들.....

허공의 불꽃처럼 산산이 부서지며 소멸되어 가는 것들을 생각한다.

인생도 한순간의 불꽃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불꽃놀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에겐 지워질 수 없는 흔적, 자취, 역사가 남는다는 것.

존재하는 동안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는 각자의 소관사다.

나이 들수록 기억해야 할 파블로 카잘스의 말이 있다.

"일에 열중하면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살아간다면 사람들의 나이가 반드시 늙어 가는 것만을 뜻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유행가 가사에도 우리는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서귀포 제지기오름 치맛자락에 둥지를 튼 어떤 유리집을 한참 바라봤다.

앞창을 널따란 통유리로 틔웠으나 어쩐지 그늘로 숨어든 은거지처럼 보였다.

그 집은 코미디계의 황제라 불렸던 고 이주일 씨 집이라고 알려져 있다.

마을 사람들 얘기니 진위 여부야 어떠하든 그건 상관없다.

가망 없다는 폐암 투병 중이던 때, 마지막 삶을 정리하기 위해 제주에 내려와 지내던 집.

그래 그런지 어엿하게 남향받이로 보목포구 향해 지어진 반듯한 직사각형 건물이건만 무척 침침해 보였다.

오래 비워둔 집이 풍기는 냉기일 수도 있고 물론 숲 그늘 탓일 수도 있겠지만.

못생겨서 미안하다는 한마디로 희극계를 평정한 사람이 그다.

어린 시절은 그때대로 북쪽에 사는 아버지로 인해 사연도 곡절도 많았다는 그.

젊어서 유랑극단을 전전하며 고생했던 세월 또한 길었으니,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고단하고 험했으랴.

다 큰 자식을 가슴에 묻는 참척의 고통까지 겪은, 그야말로 파란만장의 삶을 산 그다.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 죽을 날 받아놓아 코에 산소호흡기 달고도 금연 캠페인을 펼쳤던 사람이다.



따지고 보면 누군들 인생 노정이 그리 녹록하던가.

언제나 꽃길만이고 향기로운 숲 오솔길만 이어지랴.

탄탄대로 잘 닦인 페이브먼트만 걸으랴.

가도 가도 그늘 한 점 없이 황막한 사막길, 모난 자갈 투성이길, 인적 없어 괴괴한 외딴길도 있다.

경사 급해 숨찬 길, 거칠게 할켜대는 가시밭길, 진저리 나도록 지루한 길, 아슬아슬 오금 저린 벼랑길, 질척대며 빠지는 뻘밭길도 기다린다.

정신없이 추락하는 내리막길, 지척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길, 갈등 속에 선택해야 하는 양갈래길 만인가.

모래바람 사정없이 몰아치는 사막길, 해풍 무섭게 몰아치는 방파제 길도 살다 보면 한 번씩 걷게 된다.

그러다 겨우 옛일 이야기하며 웃을만하면 끝나버리는 단막 연극 같은 여정이다.

게다가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가 거치게 마련인 생로병사의 질곡에서 예외는 없는 법.

세상에 태어나 한바탕 울고 웃다가 너나없이 늙고 병들어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사다.

연예인 중에 가장 세금을 많이 냈다고 알려졌지만 아무리 돈이 많은들 그마저도 병마와 싸우는 데야 무슨 소용?

루가 복음서에도 나와 있듯 사람이 제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한번 다녀가는 이 세상 소풍길.

여행이 될지, 고행이 될지는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자 행동하기 나름이다.

생각(think)과 감사(thank)는 어원이 같다고 한다.

소소한 일상사에서 감사를 찾는 일.

그렇다.

밤새 편히 잠들게 해 주시고 아침해 마주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로 하루를 시작한다.

걸을 수 있는 건강 허락해 주셔서 감사.

태양 바라볼 수 있는 시력 허락해 주셔서 감사.

치자꽃 향기 맡을 수 있는 후각 허락해 주셔서 감사.

새소리 들을 수 있는 청력 허락해 주셔서 감사.

스치는 바람 느낄 수 있는 감각 허락해 주셔서 감사.

감사에는 메아리 효과가 있다.

감사는 하면 할수록 감사할 일이 자꾸 생긴다.

나이 들면서 총기를 잃지 않는 것, 너무 삶에 연연해하지 않는 것.

부르시면, 언제든 툭툭 털고 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까지 두루 감사하다.

자주 잊긴 하지만 잠들기 전의 감사는 영혼의 청소가 된다는 점 되도록 잊지 않게 되기를.

금아 선생의 <이 순간>이란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 이 글귀가 참 좋다.

한편 딸내미가 한국에 있는 가족과의 소통 창구로 사용하는 카톡방 문 앞에 걸어둔 고사성어는 이렇다.

默而成之. 묵묵한 가운데 이룰 뿐.

웅변보다 침묵이 귀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 도리 하나만은 꼭 깨우치고 싶으나 일상사 미주알고주알 이처럼 떠벌리고 사는 자신.

아흐~ 안타깝게도 세상 소풍 마치기 전까지 터득하기엔 그 경지 내게는 아득하기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역할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