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낼모레면 고희를 맞는 언니가 공직에서 은퇴한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그러고도 반생을 바쳐 탁마 했던 직무와 관련된 학과 교수로 발탁, 강단에서 쌓아둔 경륜을 펼친 지도 제법 됐다. 드디어 지난 학기를 끝으로 그 대학에서 물러났다. 주어진 능력을 맘껏 발휘해 가며 자기 하고 싶은 일을 신명나게 했고 세상을 자유로이 헤엄치면서 자신을 최대로 성장시켜 왔던 언니다. 근래 들어 몇 년 내리 이어지고 있는 미증유의 경제 불황기다. 이태백이니 삼팔선이니 오륙도 시리즈가 나올 정도로 일거리를 못 찾아 노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판에 고희 즈음까지 일터가 있었다면 그건 분명 축복이다.
퇴직하고 얼마간 언니는 몸에 밴대로 시간관리를 규칙적으로 하며 책과 인터넷을 즐겼고 하루를 무료한 줄 모르게 잘 지냈다. 집에서일망정 편하자고 헐렁한 바지를 입지 않았으며 하릴없이 누워 낮잠 자는 따위의 한가로운 늙은이 노릇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 서너 달 지났을까, 어느 날 갑작스레 나른한 무력감이 들면서 한꺼번에 폭싹 삭아버린 기분이 든다는 하소연과 함께 엄살 섞인 푸념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밥맛뿐 아니라 매사 의욕도 잃어가는 데다 이유없이 심란스러워지고 짜증만 나는가 하면 서글픈 감정까지 들더란다. 하루가 지루하게만 느껴지기도 하고, 하는 일도 없이 노곤하기만 하단다. 동시에 여기저기 아픈 신호가 연달아 오더니 기어이 병원 신세까지 졌다는 것이다.
평소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에 체력도 좋고 아주 활기 넘치게 건강하던 언니다. 언니는 여섯 살이나 위이지만 나보다 훨씬 젊다. 그만큼 본인 의지대로 거침없이 자유롭게 살아왔다는 증표다. 물론 긍정적이고도 느긋한 성격도 한몫하였을 것이다. 그러던 언니의 심경 변화는 어쩌면 예견된 것인지 모른다. 줄곧 사회의 요직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며 꼭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살다가 어느 순간 모든 역할이 사라진데 대한 상실감과 소외감. 아니 그보다는 자신이 떠나도 세상은 전혀 아무렇지 않게 잘 돌아가고 있더라는 점이 괜히 서운해지며 일종의 허탈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다행히 언니는 요즘 들어 성당 봉사단체에서 다시 열정을 불사르며 자신을 추슬러나가는 중이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관계로 너나없이 은퇴 후에도 기나긴 시간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적어도 2~30년 길게는 사십 년 세월이다. 인생은 각 단계마다 나름의 목표나 지향점이 있었다. 그렇다면 노년기에는 어떤 계획이 준비되어 있어야 할까. 각자의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간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매진했던 업으로부터 벗어난 이제. 비로소 자신과 이웃에 눈을 돌려 무언가 보다 가치 있고 유익한 일을 나름 찾아야 할 때가 아닐는지. 정해진 시간에 맞춰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며 누군가의 요구를 만족시켜야 할 의무도 없는, 한갓지고 여유로운 때가 지금이다. 시간에서도 만판자유요 의무에서도 완전 자유롭다. 그러나 역할에 얽매이지 않는 해방감이 되레 낯설어 편편치가 않았던 언니. 어쩐지 아웃사이더로 밀린 듯 소외감에 씁쓸해 진다는 은퇴 후 증후군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경우라면 알 턱이 없긴 하다.
노년기의 우리는 쓸모없이 뒷전으로 밀려난 오래 묵은 그릇이 아니다. 현장에서 내쳐진 낡고 녹슨 기계도 아니다. 시대에 뒤처져버린 별볼일 없는 유물도 아니다. 우리에게는 지나간 세월이 안겨준 곰삭은 지혜가 있고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 그리고 정신적 깊이가 있다.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하느님께서 마련해 두신 마지막 선물을 마음껏 꽃 피워 볼 시간이 바로 이때 아닐까. 무언가 맡은 바 할 일이 기다리고 뚜렷한 목적이 있는 하루 만들기 프로젝트는 미리미리 마련돼 있어야 하리라. 일단 무위도식하는 시간만은 노후에 가능한 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사회와의 바람직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삶의 지평을 확대해 나가며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심 모두가 두려워하는 노화에서 오는 각종 질병들만 없다면 신체적 쇠퇴는 이때 별 문제가 안될 터. 통계치를 인용하자면 65세 이상의 5%, 75세 이상의 7%, 85세 이상의 25%가 간병인이나 요양기관을 필요로 할 뿐이다. 그러므로 퍼센트 수치가 나타내듯 노환에 대해 지레 겁먹고 두려워할 이유란 그다지 없는 셈이다.
다들 알다시피 아가사 크리스티는 80대에 베스트셀러를 집필했으며 피카소는 90 넘어까지 화필을 잡고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황금찬 시인은 구순에 시집을 냈다. 가령 주름살과 흰머리를 성형과 염색으로 깜쪽같이 감췄다 하자. 그처럼 노인 티 나지 않더라도 나이 육칠십이면 장성한 손주들이 할머니라 부르니 덧쌓인 연륜을 굳이 셈할 필요 없이 분명 할머니는 할머니. 그럼에도 대다수의 노인층이 나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나부터도 아직 마음만은 젊어 나이듦에 대한 실감도가 낮은 편이다. 실제로 비쩍 마른 외모와는 상관없이 꽤 강단지고 건강도 양호해서다. 더구나 나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일터가 있으며 그 일을 통해 이 세상 한 구석에서나마 작은 보탬을 주는 존재로 살고자 나름 열심이다. 지난여름 한국에 갔을 적이다. 사십여 년 만에 만난 여고 때 친구가 '기품있게 나이 들었구나' 했을 적에 얼굴이 화끈 달았다. 자신이 그간 도무지 그녀 말과는 걸맞지 않은 삶을 살아온 까닭에서다. 앞으로야말로 제대로 옳게 해 볼 참이다.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