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禪定)으로 초대하는 연당의 절대고요

by 무량화


시조시인 가람 선생이 가꿨다는 백련화 향에 얼마를 취해 있었던가.


순백의 가람 연꽃잎 한 겹 씩 살풋 피어나는 순간의 미세한 떨림에 빠져있다가 홍련화 연당으로 건너가려는 찰나.

잠깐만요! 다급하나 나지막한 목소리가 발걸음을 잡아챈다.

뷰파인더에 눈길 고정시킨 채인 장년의 남자.

맨발로 쪼그려 앉았다.

발자국 소리 방해될까 봐 신발도 벗었나 보다.

주시하는 방향으로 시선 옮겨보니 길 위에 작은 새가 서있다.

오십 미터쯤 전방에 물닭 한 마리가 둑에 올라서서 연신 깃을 털어댄다.

깃털의 물기를 말리는 동작이다.

경계심 풀지 않은 새끼들 세 마리 오소소 연잎 그늘에 몸을 숨겼다.

카메라에 눈을 댄 채로 장년은 낮게 상황을 설명한다.

물에 젖은 몸을 말리러 햇빛 아래 나서려 하나, 오가는 인적 많아 병아리 떼 불러낼 기회를 탐색 중인 어미 물닭이란다.

쌍방 공히 거의 오 분 이상을 끈질기게 서로, 목하 조용히 눈싸움 중이다.


아라 연꽃잎 아랫부분은 연분홍, 가운데 부분은 좀더 진한 분홍, 끝은 홍색으로 고려시대 불교 탱화에서 볼 수 있는 연꽃과 똑 닮았다


까치발로 오던 길 되돌아 일행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는 도중, 아기 연잎을 만났다.

연 이파리 가장자리에 한 마리 실잠자리 고요하다.

꺾인 연 줄기에서 물속으로 고개 떨군 연밥 하나.

탱탱하게 물에 불어 도토리 닮은 연실 저 홀로 뱉어냈다.

뻘에 묻은 뿌리에서 두둥실 떠오른 새잎은 겨자빛이다.

둥글지만 연한 아기 이파리 개구리밥 헤치며 봉긋 얼굴 내민다.

그렇게 이어지는 자연계의 순환, 미쁘고도 장하다.

스치는 바람 따라 연향 은은히 번진다.

미풍에도 하르르, 살푼 자리 고쳐 앉는 실잠자리.

선정(禪定)으로 초대하는 연당의 절대고요에 잠겨본 한나절.


이 같은 축복, 사는 동안 몇 번이나 누릴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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