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인천에 사는 외사촌 동생과 오래 통화를 했습니다.
기상이변으로 작년과 올해 유례없는 혹서기를 어렵게 지나고 있어서 이지요.
요즘 여기는 며칠째 염제의 횡포가 많이 누그러져 지낼 만 한데 거긴 어떠냐고 했더니요.
푹푹 찌는 폭염으로 아무리 에어컨을 틀어놓고 살아도 잠도 설치고 입맛이 다 없어졌다고 하더군요.
입맛 잃으면 노년기에 더위 견디기 더 힘겨우니 균형 이룬 영양식으로 건강 잘 챙기라고 했네요.
어릴 적 외삼촌 댁에 가서 그녀와 많이 어울린 터라 입이 짧은 편인 식성을 알기에, 뭐든 입맛 돋우는 음식
생각나거든 사 먹으러 가라고 하니 밖의 폭염이 무서워 아예 나갈 엄두도 못 내겠대요.
야, 에어컨 아래서도 덥다면 선풍기도 없던 시절 부채 하나로 어찌 지냈누?
글쎄 말이야, 육십 년대에 처음 선풍기가 나왔다지만 촌에서 무슨 선풍기 구경을 해?
군 단위가 아닌 면 단위 촌에서야 전기불도 없던 세월인데 한마디로 언감생심이었지.
우리조차 결혼하고도 몇 년 후에야 처음으로 선풍기를 장만했으니.
금성사에서 출시된 선풍기 보다 신일전자에서 나온 선풍기가 더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칠십 년대 중반.
그땐 훌훌 부채질이나 했지, 게다가 부채나 어디 흔했수? 식구끼리 부채 하나 가지고 돌아가면서 썼잖아.
이어서 모깃불이며 반딧불 얘기에 이어 은하수 하얗게 흐르는 밤하늘로 화제가 흘러갔답니다.
우리 예전에 오이랑 참외 샘에 넣었다가 건져 먹으면 꿀맛이었지, 그리곤 샘물 길어 서로 등목도 해주고...
풋고추나 오이지만으로도 여름 한철 거뜬히 지낸 우린데 가로 늦게 뭔 입맛 타령이냐!
아직 삼복도 안 왔으니 여름 나려면 한참 멀었거든.
따지고 보니 그렇습디다.
선풍기조차 전력소비량이 많다고 생산 중단된 적도 있을 정도의 국가경제 수준이었으니, 에어컨은 훨씬 더 뒤인 80년대 후반 들어서야 겨우 대도시 부유층에서나 사용하기 시작했더랍니다.
학교에서 각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가정환경 조사서를 작성했는데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자가용 유무가 아니라 전화기나 가전제품의 보유 여부를 조사했다면 믿길랑가요. ㅎ
집집마다 라디오, TV, 냉장고, 전화기, 세탁기를 모두 갖추고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때 그 시절.
옛날 고릿적 이바구 같지만 불과 40년 전 일이라면 어처구니없어 웃겠지요.
부산박물관 로비에 상설 전시된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의 작품들을 옮긴 겁니다.
혹여 저작권과 상관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워낙 여러 경로로 공유되는 사진이기에 몇 장 폰에 담았더랬지요.
80년대 후반 책을 내며 표지 뒤면에 넣을 사진을 그분께 부탁한 적이 있었답니다.
마흔이 채 안 된 나였건만, 그분이 포착해 낸 내 모습은
고달픈 세파에 시달린 듯 황량한 표정의 시들 마른 낙엽 같았지요.
문우들은 고뇌하는 시인 상으로 보인다며 그럴듯하다 했지만요.
원판보다 더 지적이고 곱상한 모습을 내심 원한 터라 그분 사진은 미안스럽지만 그냥 접고 말았습니다.
온 국토가 피폐해지고 온 국민이 상처투성이였던 1950년대 중반, 가장 낮은 데로 앵글을 향했던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 1세대를 대표하는 최민식 작가.
애처롭고 안쓰러워 아릿한 통증 없이는 되돌아볼 수 없는 그 당시 풍경들.
바로 작가 자신의 자화상 같은 고단하고 남루한 서민들의 삶을 호소력 있게 담아낸 그의 사진은
이제 한시대의 역사기록물이 되었지요.
전후 세월이야 너나없이 곤고하기만 한 생활이었으니 당연 사진이 밥이 되어주던 시절도 아니었을 터.
낡은 사진기 하나 메고 피난민 득실거리는 거리를 헤맨 그는 보나 마나 가난에 찌든 가장.
그나마 사진이 작품 대접을 받기 시작한 건 70년대나 되어서였을걸요.
요새야 대학에 사진과가 흔하지만 그래서 작품 스튜디오도 널렸지만
그 무렵 사진의 이력은 생활의 방편으로는 택도 없었을 겁니다.
훗날 빛의 작가로 조명받는 작가 반열에 오르지만 그에 이르기까지 치러 낸 역경의 삶은 미루어 짐작이 돼요.
그 고통과 고독은 오롯이 그 혼자만의 몫이었을 테지요.
헌책방에서 만난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인간 가족’을 접한 충격으로 사진작가의 길을 택하게 된 그.
사진은 사실적인 현장감을 담아 진실하게 찍어야 한다는 사진철학을 그는 한결같이 지켰습니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정점에 서려면 그처럼 고집스레 한 우물만 파야 하는지도....
애환 서린 민초들의 삶을 깊이 있게 담아낸 그분 사진을 박물관에서 접하던 날,
설익어 어설픈 문학 주변인으로 서성댄 오래전 그 시절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모든 사진-최민식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