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 철도 건널목에서 땡땡거리는 정지신호를 만났다. 마을 외곽을 통과하는 화물열차가 지나는 동안 뒤로 물러서서 기다려야 했다. 화물열차는 통상 백 여개가 넘는 컨테이너와 유류탱크를 싣고 달린다. 기나긴 화물열차가 통과하길 땡볕 아래 기다리면서도 지루하다는 생각보다는 낯익은 글자가 적힌 컨테이너 수효를 세어보는 일을 나름 즐겼다. 그렇게 한진이나 현대 상호가 뚜렷하게 쓰여있는 컨테이너를 마치 내 소유나 되는 양 흐뭇하고 뿌듯한 기분으로 바라보며 헤아리곤 했었다.
한국 수출입 물류가 공해상과 창고에 묶여있는 요즘은 그 기쁨을 잃었다.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좌초된 한진해운으로 인해서이다, 지난 포스팅에서 한진 사태를 언급하며 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 세상 인연의 고리는 종횡으로 얽혀 한 줄에 닿아있다. 내 삶이 내 의지와 노력보다는 이역만리 타인의 잘못된 선택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좌우되기도 하는 현실이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 있다 하였다. 무관한 듯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의 사태일지라도 서로 긴밀히 묶여있는 지구촌이다. 하물며 비좁은 한국 내의 관계망에서랴. 오늘 블로그 뉴스로 오른 한진해운 피닉스 지점 상황으로도, 이 세상 무엇 하나 무의미하게 그냥 놓인 게 아님을 느끼며 무어든 허투루 대해선 안 되겠다 싶어졌다.
지난 여름방학이 끝나며 한국에 갔던 손주가 오는 편에 아들이 내 선물로 용무늬가 조각된 작은 범종과 십장생이 아로새겨진 흑단 문진 등을 보내왔다. 그 외는 짐스럽다고 우체국을 통해 수화물로 부쳤다고 했다. 중량이 많이 나가거나 급하지 않은 물품은 한 달여 시간이 소요되는 배편을 종종 이용했듯 이번에도 한국산 한약재와 신간 도서들과 손주의 골프 용품을 박스에 포장해서 보냈다고 한다. 그 짐을 실은 배편이 하필이면 한진이었던 모양이다. 물건이 바다에 가라앉은 건 아니고 컨테이너에 들어있으니 언젠가 오기는 오겠지만 어이가 없었다. 새 발의 피 정도도 아닌 내가 이럴진대 금번 사태로 손실액은 물론 타격이 어마어마할 수많은 수출입 화주들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뿐 아니다. 입출항을 거부당해 한 달여 공해상에서 떠돌던 컨테이너선의 선원들은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인가.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미세관 국경보호국(CBP)이 시애틀항에 닿은 한진해운 선원들에게 상륙허가(shore leave)를 내주지 않아 선원들이 배에 갇혀 지낸다 했다. 사태를 뻔히 아는 그들이 침몰해 가는 회사로 다시 복귀하지 않을 것을 우려해서였다. 그 뉴스를 보며 20여 년 전 한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군대 가서 고생하는 아들이 눈에 밟혀 맛있는 음식을 해 먹는 건 고사하고 따뜻한 방에서 잠잘 수 없다 하던 친구다. 망해가는 회사일만으로도 스트레스인데 오랜 항해에 시달리다 기항을 해도 뭍을 밟지 못하고 바다 위에 떠있어야 하는 선원들의 고초. 노심초사할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 여전 호의호식하고 지내는 경영진 측이 밉살스럽기만 하다.
금번 사태의 원인은 재벌 마나님에서 졸지에 회사를 떠맡은 최은영 전 회장의 경영상 책임이 가장 큰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위기 이후 물동량이 줄어드는 등 해운업의 불황과 세계경제 하락도 원인의 하나이나, 무엇보다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을 발탁해 쓰는 대신 직접 오너로 나선 것이 문제였다. 최 전 회장이 7년간 경영을 맡으면서 회사 부채는 150%에서 1445%까지 10배가량 늘었다는 수치가 증명하듯 거시경제를 모르는 무능력자가 방만한 경영을 이어감으로 이번 사태를 야기시켰다. 그럼에도 설마 국가 기간산업을 그냥 무너지게 하랴 싶은지, 적극적이고 조속하게 사태 해결을 위한 결단은 뒷전인 채 나라 눈치만 보았다. 그러나 정부는 해결사가 아니다. 결국 국가가 금융 지원을 해주면 그 짐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된다. 이익은 사유화, 손실은 사회화하기. 이번 기회에 혈세 투입 대신 스스로 뼈를 깎는 자구노력으로 정상화를 모색해야 산다는 인식을 확립시켜야 하리라.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 36일째 되는 5일. 한진해운 직원들도 6년째 임금동결을 감수하면서 회사를 살리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애썼다고 한다. 반면 막판까지 단물은 다 빨아먹고 한진의 알짜배기 계열사를 챙겨 나온 전 경영자 최 전 회장의 재산은 무려 2000억 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천문학적 재산을 쥔 그녀는 과연 대대손손 영화를 누리며 살까. 최은영은 지난번 국감장에서 눈물을 보이며 애소, 악어의 눈물을 연기하더니 이번엔 국회 바닥에서 무릎을 꿇기까지 하였다. 동정심을 유발해 위기 국면을 일단 모면해 보자는 속셈으로 밖엔 보이지 않는 것이, 잊혀가던 조현아의 땅콩 회항까지 상기시키며 한진가에 대한 반감을 자극 오히려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옴니버스 스타일의 영화 <Before The Rain>을 보았다. 전쟁에 가위눌린 발칸 지역의 불행을 다루고 있는 영화로 폭력의 순환고리는 더할 나위 없이 참혹스럽다. 동시대의 런던과 마케도니아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인종 갈등으로 분규가 이어지는 한마을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때마침 읽은 Paul Auster의 <뉴욕 3부작>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삶을 극단의 고립으로 몰고 가 철저히 망가뜨리는 세 단편은 그러나 서로 묘하게 맞물려있다. 서로 상관없는 별개의 작품 같지만 세 편이 연쇄적인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 미국 작가 폴 오스터를 처음 만난 것은 한참 전이다. LA 딸한테 다니러 왔다가 책꽂이에서 그의 소설 <달의 궁전>을 빼어 들고는 사백오십 페이지를 단숨에 읽어치웠다. 그 생각이 나서 망설임 없이 펼쳐든 <뉴욕 3부작>은 영화의 여운과 겹쳐 의미망(意味網) 혹은 관계망, 불교 용어로 인드라망에 대해 숙고하게 하였다.
인드라망은 불교의 연기법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단어이다. 인드라(Indra)는 인도의 수많은 신 가운데 하나인 제석천(帝釋天)을 이른다. 제석천이 상주하는 궁전에는 무수한 구슬로 만들어진 그물(인드라망)이 있는데 그 구슬은 서로를 비추고 비추어 주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또한 그 구슬들은 서로를 비출 뿐만 아니라 그물끼리 촘촘히 연결돼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 세상의 모습이라는 것. 세계는 본래부터 한 몸 한 생명의 인드라망으로 엮여 존재하며 나아가 우주 삼라만상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이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의 근원이 되며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는 인드라망. 아래 영화를 보면 인드라망에 대한 이해가 훨씬 쉬울듯하여 영화도 올린다. 2016
https://youtu.be/CtXiyv84lG0?si=gWogHnAl-1j26E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