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May 04. 2024

길상사, 오월 단비 촉촉이 스미고


연이틀 봄비가 내리고 있네.

길상사에 갔던 날도 촉촉이 오월 단비가 내렸다네.

성북동 언덕길에는 길상사를 필두로 수연산방 지나면 좌우로 심우장과 간송미술관이 그대들 기다리지.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린 최순우 가옥도 이번엔 꼭 만나고 싶었네.

그 댁 사랑방 위에 걸어둔 현판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은, 문을 닫으면 예가 곧 깊은 산중이라는 뜻이라지.

시민문화유산 1호이며 등록문화재 268호인 거기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썼다고 하더군.

요정의 놀라운 변신 길상사뿐인가.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상허 이태준의 옛집으로 대문 고풍스러운 수연산방은 서울민속문화재 11호라데.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은 사적 550호로 조선총독부 등지고 북향으로 지어 민족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집이 됐네.

한국을 방문했던 2012년 처음으로 성북동길을 오르다 들른 간송미술관은 뻐근한 감동을 안겨주었네.

십 년도 넘은 기억이라 일지가 남겨져 있지 않았더라면 빛바래 영상 흐릿해졌을 테지.

잎잎이 눈부신 신록 아름다운 오월, 다시 한번 수연산방이며 심우장을 빗속에서 보고 싶었다네.

간절하게 맺힌 그리움으로 말일세.

해서 성북동으로 향했던 거라네.

 

마음만 앞서 여러 곳을 점찍어뒀으나 그날 들린 곳은 길상사뿐이었네.

앞서도 언급한 대로 비에 젖은 모란과 매발톱꽃에 취해 물외한인되었더라 서지.

소담스러운 화판 무거운 듯 고개 푹 숙인 붉은 모란은 더러 꽃 이파리 낙화됐더군.

매발톱꽃 영명은 의외로 섹시 걸이라 의아해했는데 보랏빛 꽃송이마다 빗속에 살풋 외로 꼰 자태 야해 보이긴 하더라네.  

무엇보다 돌돌 흐르는 좁은 계곡 물소리며 멧새 지저귐도 경내라서 인지 마냥 한유로웠다네.

자욱한 안개비로 깊은 숲 아니라도 수목마다 그윽해 보여 그 또한 좋았네.

대웅전 옆 고풍스러운 작은 쪽문에 기대서 있기도 했었고 범종 맥놀이 들릴듯한 종각 앞에서도 한참을 머물렀지.

시간 셈하지 않고 그렇게 유유자적 거닐다 보니 어느새 점심때가 훨씬 지났데 그려.

초파일 앞두고 지혜의 연등 오색으로 밝혀둔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인 길상사.

일주문과 범종각 외에는 전통 절집 분위기 별로 나지 않는 태생적 한계, 그래도 화려하기보다는 호젓은 하더군.

청정도량과 고급요정은 도무지 매치가 쉽지 않은 판이하게 다른 딴 세상, 언밸런스 정도가 아니라 센스겠지.

그럼에도 시절인연 닿으니 그조차 만남 가능하더군.


 

난 화분 하나에도 매이지 않으려 한, 무소유 설한 수행승이 엄청난 경제가치 지닌 요정터를 접수하기까지의 과정.

법정스님은 성정 깐깐하기로 소문난 분인데 대원각 시주를 그리 쉽게야 받아들였겠나.

널리 회자되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생략하기로 하겠네.

하긴 중도의 관점에서야 이것저것 굳이 따지는 분별심 부질없음이니.

종교의 경계 허물어낸 화합의 자리라서인지 석조 관음상은 성모상과 친동기처럼 닮았더군.

자애로운 관음상 앞에서 합장배례하며 관세음보살! 대신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 님! 외울 뻔했다네.

하기야 호칭이 뭬그리 중요하겠나, 신실한 신심으로 기도하면 종국엔 같은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것을.

모쪼록 서로 배척하는 종교 간의 갈등이나 사라졌으면 좋겠네.

성북동 길상사, 하면 자동으로 따라붙는 백석과 그의 나타샤라는 자야.

호사가들의 허장성세에 장단 맞춰 추임새 넣는 이들 보며 백석 연구가들은 고개 좌우로 흔들더군.

젊어 한때 권번의 여인과 시인 백석이 나눴다는 사랑타령도 거푸 들으니 진부하여 식상하겠데.

시인과의 금지된 사랑이자 짧게 끝나버린 사랑이라서 물론 충분히 스토리텔링감이긴 하나.  

이제 모두들 이승 떠나 한 줌 재가 된 옛사람들, 기억하고 기린다는 것은 남은 자의 추모 방식일 뿐이네.

기념관이며 사당이며 공덕비가 세상 인연 끝난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으리오.   

그저 잠시 비에 젖은 화초와 신록의 푸르름이나 그대들 눈으로 즐기고 가게나.

작가의 이전글 까치소리와 토정비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