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섬, 문주란 자생지 가려다가

by 무량화


문주란 하얀 꽃 피면 토끼섬을 꼭 찾으리라 했다.


토끼섬, 국내 유일의 문주란 자생지이자 군락지다.

지난겨울, 동쪽 해안길인 종달리 거쳐 세화리 가던 중에 하도리를 지날 즈음이었다.

갈대 서걱대는 철새 도래지와 하도 해수욕장 등 제법 짜임새 갖춘 카페거리가 한참 이어졌다.

여기서 특히 관심 집중된 곳은 문주란 자생지인 토끼섬과 썰물 때 드러난다는 원담(갯담)인 멀튼개였다.

흥미 가득한 호기심이 술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때부터 기다려 온 칠월이다.



서귀포 공원 여기저기 문주란 꽃이 피어나자 동쪽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남원 표선 성산 거쳐 두어 시간 만에 하도리에 닿았다.

차도에서부터 바닷가까지 길 양옆에 하얀 주단을 깐 듯 무리 지어 만개한 문주란 꽃.

야래향 꽃처럼 밤에만 향기를 풀어내는지 코끝 가까이 대어봐도 그냥 풀 내음만 났다.


토끼섬이 저만치 떠오르자 멀튼개는 그만 뒷전이 되고 말았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이용해 고기를 잡는 제주 전통 방식인 원담 멀튼개는 현무암이 만든 지형지물 덕에

손쉽게 고기잡이를 하던 시설물이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굴동 포구에서 50m쯤 떨어진 토끼섬은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19호로 지정돼 보호를 받는다.

나지막한 현무암 동산과 조그만 모래밭으로 이루어진 이 섬은 국내 유일의 문주란 자생지다.

본래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문주란인데 해류 타고 흘러온 씨앗이 여기에 뿌리를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연평균온도가 15℃ 정도 유지되어야 생장할 수 있으므로 토끼섬이 문주란 분포의 북방한계선인 셈.

이름에 난(蘭) 자가 붙었지만 문주란은 수선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로 씨앗이 가벼워 물에 뜬다.



멀리서 섬을 바라보니 충분히 걸어서 문주란 군락지 가까이 갈 수 있을 듯 거리 만만하게 보였다.

간조 시에는 걸어 들어갈 수 있으며 만조 시에는 백사장과 동산이 분리된다고 읽은 바 있어 물가로 다가갔다.


팔 힘껏 뻗으면 손 닿을 듯 하얀 토끼섬이 저만치 나지막했다.


해안가 끝자락에 마침 젊은 여성 서넛이 스노클링을 하고 있어서 믿는 구석도 있었다.

물때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나 썰물 때처럼 바닥이 많이 드러났기에 양말을 벗고 신발만 신은 채 바닷물에 들어갔다.

험한 갯바위라 건너뛰기엔 위험해 울퉁불퉁 새카만 화산암으로 휘덮힌 물길을 조심스럽게 건넜다.


종아리 정도 차는 수심이지만 몸이 쏠릴 만큼 해류 흐름이 강하게 느껴졌다.

서너 걸음으로 첫 번째 관문은 통과됐다.



두 번째 물길이 나타났다.

이번엔 일곱 걸음만에 겨우 물길 건넜다.

약간 비칠거려졌지만 중심 잡을 만은 했다.


눈앞 물길의 깊이를 짚어보고는 바지 자락 더 접어 올렸다.


정신 다잡아 수습하고 돌밭을 걸어 나가자 맙소사!


다시 바짝 눈앞에 드러난 물길은 도버해협처럼 한참 넓었다.


덜컥 겁이 났다.


가늠해 보고 자시고 할 수준이 아니었다.

냉큼 백기를 들고 무조건 온 길 되짚어 조심조심 퇴각을 했다.

원위치로 돌아와 가만 생각해 보니 이 나이에 웬 무모한 모험인가, 머리를 서너 번 쥐어박았다.

그제사 폰을 꺼내 토끼섬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해녀들 탈의장 겸 쉼터인 불턱을 지나는데 잡초 무성한 현무암 건너 동쪽 해안에 하얀 옷차림 행렬이 보였다.


웨딩사진 촬영 중인가 했는데 사진을 확대해 보니 바다장을 치르고 오는 상주들이었다.


순간, 경고에 다름 아닌 어떤 계시같이 여겨졌다.


아서라, 바다에서 조심하긴커녕 어쩌자고 겁 없이 설치다니... 한번 더 머리를 쎄게 쥐어박았다.


다음엔 배를 빌려 타고 가마, 문주란 하얗게 핀 토끼섬아! 아쉬움 접고 손 흔들었다.



푹신 젖은 트레킹화를 신은 채 터덜터덜 하도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자아성찰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걸으며 스스로의 행동거지를 반성하고자 함이었다.


절대적으로 근신의 시간이 필요한 나.


나잇값 하며 그에 걸맞게 매사 진중해져야 하리라.


분수를 지키며 절제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가족들 신경 쓰게 하거나 불편하게 만들지 않도록 자신을 관리 잘해야 할 책임이 있으니까.


자칫 후회할 일이나 흠결 남겨서는 안 되니까.


경거망동하지 말고 좀 차분해지기로... 부디 작심삼일이 아니 되기를.


날씨도 꾸물대고 저녁때라 수영객들은 거의 철수했으나 카약 타는 젊은이들만 노를 저어댔다.


수평선에 희미하게 드러나는 우도.


하도 해수욕장 건너로 지미오름 선명했다.

철새 도래지 황새 모형 부지런히 풀잎을 쪼는데 물가 오리 떼는 천천히 갈대숲으로 깃들고 있었다.

하나둘 바야흐로 빗방울 듣기 시작해 마음이 급했다.

정거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와 무척 고마웠다.


출처: 이 사진은 비짓 제주 웹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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