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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05. 2024

너무 내달려서 탈

카미노 스토리

간밤 내내 쏟아진 비는 새벽까지도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카미노 친구들은 우장 채비를 단단히 갖추고 하나둘 숙소를 떠났다.

그냥 하루 쉴까 어쩔까 머뭇거리며 창가에서 서성거리는데 저 아래 좍좍 내리는 빗속으로
색색의 우비를 입고 부지런히 걸어가는 사람들 무리가 눈에 띄었다.

폭우도 전혀 개의치 않고 씩씩하게 저마다의 큼직한 배낭을 거북이 등껍질같이 매달고서.

같은 숙소에 묵었던 부부도 각자의 짐을 달팽이처럼 짊어지고 아주 태연스럽게 걸어가고 있는 모습에 자극을 받았다.

안 그래도 구질거린 날씨라 신발이며 바짓단 무거워질 테니 오늘만은 거추장스러운 배낭에서 해방돼 가비얍게 걸어보자.

부리나케 아래층 접수창구로 내려가 배낭을 다음 목적지까지 부치는 동키 서비스를 부탁해 놓았다.

물과 간식을 작은 쌕에 챙긴 다음 판초를 덮어쓰고 발걸음도 힘차게 포토마린을 뒤로했다.

기나긴 강둑 길을 지나 경사진 산속 오르막으로 접어들었어도 발걸음 무겁긴커녕 천리라도 걸을 듯 가뿐했다.  

진창길 걷느라 이미 트래킹화는 축축하게 젖어 엉망인 데다 질척대는 황토가 한 덩어리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듯 모든 것은 마음의 장난, 매사 일체유심조가 맞다.  ​




작은 마을 몇 개를 술술 지나쳤다. 그래도 힘이 남아돌아 내처 걸었다.

맨손체조하듯 양팔을 휘휘 내저으며 신나게 전진 또 전진했다.

아~ 짐이 없다는 게 이리 좋구나, 매인데 없이 자유로운 게 이리 행복하구나.

누구에게나 산다는 건 무거운 등짐 메고 끝없는 고행길을 걸어야 하는 일,

다만 짐의 종류와 무게가 각자 다를 뿐 아니겠는가.

그래서 선인들은 한결같이 삶을 일러 고해라 했으리라.

그리 여기고 단련의, 정진의, 통회의, 성찰의, 인욕의, 보속의 의미로 자진해서 졌던 등짐이다.

하여 그간은 내 등에 지워진 짐, 여태껏은 섭리대로 순리대로 아니 소처럼 저마다의 숙명이려니 기꺼이 감수했다.

산다는 게 다 그러려니 여기고 순순히 받아들였던 거다.

그런데 짐을 부려두고 맨몸으로 걸어가니 너무도 홀가분, 명랑한 기분에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그래, 가끔은 등짐 부려두고 자유로이 마음의 여유를 즐길 필요도 있겠어.

인생은 단 한번 주어진 소풍길인데 그 여정이 덜 버겁도록 말이야.

혼잣소리에 내심 거나하니 도연해져서 실실 웃음기까지 헤퍼졌다.​

호남 지방의 '등짐 소리'처럼 짐이 없으니 힘들지도 않겠다 무진무진 걷고 또 걸었다.

~어어어허 어어 어허허으허 올라차아 / 바늘 같은 허리에다 태산 같은 짐을 지고 / 이 고개를 어이 넘을거나하 / 어어어허 어어 어허허으허 ~

아차차! 세월아~네월아~한정 없이 걷는 바람에 사고가 생기고 말았다.

오스피탈 크루즈에서 멈춰야 할 걸음인데 그곳을 한참 지나쳐 팔라스 데 레이란 도시까지 오게 된 것이다.

보슬비를 맞으면서도 내동 신명이 짚여 경쾌한 걸음으로 설렁설렁 걷다 보니 이십 오륙 킬로 너머를 사뿐히 걸었다.

오전 내 퍼붓던 비 멎어 하늘엔 둥실 구름, 산야에 널린 들꽃에, 향기로이 우거진 유칼립투스에, 두터이 이끼 낀 돌담에 흠씬 빠져버린 채로.

쓰러질 듯 낡은 오레오가 연달아 나타나는 바람에 거기 취해 넋 잃고 바라보거나 사진에 담느라 피곤한 줄도 모르고 그 먼 거리를 잘도 걸어왔다.

산촌 길만을 걷다가 잘 다듬어진 팔라스 데 레이란 도시에 들어서니 비는 말끔 개이고 대기 청량해 신천지를 만난 듯 눈빛 환해졌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과 산 티르소 성당(Iglesia de San Tirso)을 위시한 고풍스러운 구시가지는 오밀조밀했다.  

신시가지는 신시가지대로 거리 전체가 밝은 색채로 산뜻하게 짜여 있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서고트의 왕이 젊어서 갈리시아 지방 총독으로 머물 당시 살던 왕의 궁전(El Palacio de un Rey)이 자리한 이곳.

로마시대 건축물과 기품 있는 중세 저택이 화사한 신도시와 서로 조화 이룬 아담스러운 도시였다.

 


여유로이 공립 알베르게에 들어가서 당연히 도착해 있으려니 하고 접수증을 내밀며 배낭을 찾았으나 연두색 내 배낭은 없었다.

다른 알베르게로 가서 물어도 없어 또 다른 곳... 온 동네 알베르게를 다 뒤져도 배낭은 오리무중을 넘어 행방불명 상태.

황망스럽고 어이가 없다 못해 기가 딱 찼다.

폰과 여권과 카드는 상시 지참하나 그 밖의 모든 일상품, 한 달간 쓸 물건들이 몽땅 들어있는 배낭이 사라진 것이다.

어쩌다가 괜히 안 하던 짓을 해가지고 이 곤욕을 치른담, 무거워도 늘 하던 대로 그냥 짊어지고 왔으면 낭패 겪지 않았을 건데...

오후 늦도록 허둥지둥 짐을 찾아다니느라 기운을 다 빼서 주저앉을 듯 심신이 지쳐버렸다.

조촐한 산 티르소 성당(Iglesia de San Tirso) 과 시청사

마지막으로 별 기대도 없이 바를 겸한 작은 알베르게로 들어가 맥 빠진 소리로 이러이러한 배낭을 찾고 있노라 했다.

바 운영자는 상냥스런 스페인 여성이었고 젊은 청년 바텐더는 영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둘 사이에 한참 얘기가 오가더니 여자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내 배낭이 십여 킬로 전방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에 있다고 알려줬다.

배낭은 저만치 앞전에서 이제나저제나 하며 오지 않는 쥔장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포토마린에서 15킬로 떨어진 오스피털 데 크루즈란 마을을 지나쳐 거기서 십여 킬로나 더 내달려 여기까지 와버린 나.

심신 홀가분하니 날아갈 듯 가뿐한 바람에 해도 해도 너무 오버해 버린 셈이다.

매사 과유불급이거늘.

일단 바 삼층에 마련된 알베르게에 머물기로 하고는 세수도 못하니 배낭부터 가져와야겠다며 택시를 불러달라 부탁해 뒀다.

걸어서 되돌아간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 왕복 차비를 지불했더니 택시는 한 시간도 안 돼 배낭을 가져다주었다.

한바탕 소동이 일단락되자 젖은 옷을 세탁해 널고 배낭 찾으러 다니며 봐뒀던 티르소성당 저녁 미사에 참례했다.

감사와 자숙이 뒤엉킨 미사를 마친 다음 성당 안팎의 소박한 모습들 찍고는 일찌감치 자리에 들었다.

기쁨 충만이던 오전 시간과 마음 졸였던 오후 시간, 하루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 먼 옛일인 양 아스라이 가물거렸다.

동키 서비스 이용시 배낭에 매다는 수령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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