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삑~삑~전화기에서 급박하게 경보음이 뜬다. 그 신호에 저절로 위기감이 고조된다. 오후 6시 45분, 이 지역에 발효된 홍수 속보를 알려주는 경보음이다. 먹장구름이 점점 푸른 하늘을 잠식해 나갔지만 서쪽은 말짱해 슬쩍 지나가는 비일 줄 알았다. 홍수경보가 요란스레 뜨고도 옆 동네만 잠깐 적시고 비켜간 적이 있었기에 심드렁했었다. 그러나 잠시 후 여봐란듯 뚝뚝 굵은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곧이어 좍좍 쏟아지는 폭우. 이번엔 예고적중이다. 오후반인 회화 클래스도 앞당겨 파했다. 메마른 캘리포니아에서야 어느 때건 반가운 비이긴 하지만 기세등등한 위세에 잔뜩 위축이 되고 말았다.
이날은 아침나절부터 하늘빛이 불안했다. 바쁘게 이동하는 구름장도 심상치 않았다. 바람 역시 거칠고 어지러웠다. 나뭇잎까지 어수선하게 휘날렸다. 소나기와 뇌우라고 표시된 일기예보에서는 강수확률 20%라 했지만 혹시나 싶어 비설거지를 미리 해두고 학교에 갔다. 먼 데서 우렛소리 들리고 섬광도 번쩍댔다. 해는 숨바꼭질을 하면서 그래도 가끔씩 얼굴을 내밀었다. 비는 까마득 잊고 한창 수업 중인데 낯선 사람이 교실을 들락거렸다. 교수와 무슨 얘기를 서로 주고받더니 유사시 위기 관련 대응 능력을 키우는 훈련인 '캘리포니아주 셰이크 아웃(The Great California ShakeOut)'을 실시한다고 했다. 재난대비 훈련을 통해 위기 상황시 지혜롭고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연습하는 것이란다.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긴장감으로 담박 조용해졌다.
이 모의훈련은 캘리포니아 지역에 언제 닥칠지 모르는 초대형 지진 빅원(big one)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사전 재난대비 훈련은 위기대응 매뉴얼에 따라 대피하는 법, 사고 발생 시 구조 방법 등을 교육받는 시간이었다. 지진이 발생했을 경우를 가상해 `땅에 엎드리고(drop), 숨어서(cover), 60초간 기다리기(hold on)'가 순서대로 진행됐다. 지진이 발생하면 주민들은 포복 자세로 몸을 낮춰 엎드려서 책상이나 테이블 등 머리를 가릴 수 있는 공간에 몸을 숨긴 뒤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기둥 등을 붙잡고 대기해야 한다. 또한 지진이나 각종 재난에 대비해 각 가정에서는 사흘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물과 식품, 비상용 플래시와 성냥, 구급약품 등을 갖춰둬야 한다. 미국에 오자마자 금방 첫 선물로 받은 진도 6, 7의 지진을 경험한 나. 아무 대비 없이 졸지에 겪은 지진에 너무도 놀라서 혼비백산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했던 기억이 났다. 그렇듯 유비무환, 매사 미리미리 재난에 대비해 연습도 하고 훈련해 두는 게 필요하다.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참사 속에서 상자오 중학교 2323명의 재학생 모두는 무사했다고 한다. 이 학교 교장이 평소 교사와 학생들에게 재난 대비 훈련을 철저히 시킨 덕에 대지진의 위기에서 전부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강진이 발생하자 학생들은 평소 연습한 대로 책상 밑으로 몸을 피했다가 신속하게 교실을 벗어나 농구장으로 대피하였다. 전교생이 농구장으로 모이는 데는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돌발 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재교육 훈련이 절실함에 따라 진작부터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재난 대응 시스템을 적시에 가동하는 유능한 기관으로 우뚝 섰다. 평소에 반복된 훈련을 통해 재난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준비와 대책을 세우는 한편 교육도 시키며 재난 후에는 재난 트라우마 관리도 해 주는 곳이다.
비상벨이 울리자 우리는 앉았던 의자를 벽으로 바짝 붙이고(안전통로 확보) 신속하게 책상 아래로 몸을 숨겼다. 잠시 후 옆 사람의 안전을 확인한 다음 소지품을 챙겨 들고 일사불란하게 다 같이 질서를 지키며 통로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지진 등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의 대피요령대로 일단 상황을 파악하며 대기했다가 건물 밖에 위치한 넓은 운동장이나 공터로 신속히 이동해 사태가 안정되길 기다려야 한다. 이때 리더인 강사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계속 조용히 할 것과 신중하고 진지하게 임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건성으로 임하지 말라는 사인이다. 재난대비 모의훈련이지만 실제 상황처럼 해야만이 일단 유사시 적용 가능하다면서 훈련을 장난이라 여겨선 안 된다고도 했다. 첫 훈련은 그렇게 끝났다. 이 나이에 별 걸 다 해본다 싶어 피식 웃음이 터졌다. 구름 잔뜩 낀 우중충한 날씨지만 느낌만은 칙칙하지 않고 신선했다. 교련시간에 화생방 훈련을 받던 예전의 학창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 들어서일까. 아주 오래전에 들었던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 대신 앵앵 다급하게 울리며 지나가는 앰뷸런스 소리도 별로 거슬리지 않았다. 2015
지구촌 각지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 소식을 접하자 이때 받은 훈련이 떠올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