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사막

2015

by 무량화


오랜만의 해후였다. 친구는 예전이나 마찬가지로 여전히 단아하니 조용하고 찬찬한 성품 그대로였다. 분재원이 딸린 야외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며 우리는 그간의 소소한 일상사를 서로 나누었다. 사는 일에 그다지 시달리지 않고 우여곡절 없이 무난히 살아낸 노년답게 그녀는 내내 평온하고도 고요한 얼굴이었다. 부부 화목한 가운데 안팎 공히 궤도 이탈 한번 없이 반듯하게 모범적으로 살아온 내력이 읽혔다. 슬하에 자녀 둘을 둔 교수 부인이자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한 친구다.



그녀는 중등학교적 친구다. 클래스가 딱 한 반뿐인 시골학교라 늘 같은 반이었던 데다 키가 엇비슷해 짝지로 한자리에 앉기도 한 우리다. 그 사람을 잘 모르면 그의 친구를 보라 했던가. 유유상종이란 말이 있듯 그녀와 나는 성격은 물론 취향까지 서로 공통점이 많아 퍽 가까이 지냈던 사이다. 영어와 수학에 특히 강해 학급에서 늘 탑을 지키던 그녀는 가정 형편상 교대를 지원했고 친구와 달리 수학이 바닥권이던 나는 미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진로가 달라지면서 우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간간 근황을 전하며 지내긴 했으나 내가 이민을 온 다음엔 거의 연락이 두절되다시피 한 채로 살았다. 그럼에도 어쩌다 만나면 정겨운 친구였고 멀리 떠나 살지만 문득문득 생각나는 친구, 불현듯 보고 싶은 그런 친구가 그녀였다.



미국에서 모처럼 건너온 너를 안 만나볼 수가 없어서 나왔어. 식사를 마치고 등나무 시렁 아래 앉아 후식으로 나온 식혜 한 모금을 입에 댄 다음 담담한 어조로 그녀가 말했다. 작은 애 사십구재를 어제 지냈거든. 하도 무심하게 말해 처음엔 무슨 소린가 했다. 그녀의 흐려지는 눈빛을 본 순간 아연해지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무슨 그런 기막힌 일이.... 어이없고 기가 차서 말문이 다 막혔다. 너무도 뜻밖의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더 이상의 다른 말을 잇지 못한 채 친구 손을 잡았다. 내 손도 떨고 있었지만 그녀는 더 심하게 어깨까지 떨고 있었다. 그제야 그녀가 식사 내내 그저 수저만 든 채로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음이 상기되었다. 어서 맛있게 다 들어, 하면서 찬을 내 앞에 밀어주는 대로 담박한 산채가 별미라고 떠들며 깨끗하니 밥그릇을 비운 나의 무신경함이 민망스럽기만 했다.



어릴 적부터 명석하던 그녀의 연년생 아들은 다 S대를 나온 재원들이다. 문리대로 진학한 장남은 지방대 교수직에 있고 차남은 공대를 나와 S 전자 개발팀에서 일하던 전도양양한 서른아홉의 젊은이였다. 어느 날 퇴근 후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를 일으켜 응급실로 실려갔으나 의료진이 손을 쓸 틈도 없이 눈을 감고 말았다는 둘째. 꽃 같은 아내와 세 살배기 재롱둥이 딸아이를 남긴 채 말 한마디 못하고 그처럼 허망히 떠났다는 것이다. 친구는 어렵사리 그 말을 이어가다 고개를 떨구고는 아직도 악몽을 꾸는 듯하다면서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누른다. 부모에게야 이승의 마지막 순간에조차 눈에 밟힐 애석하기 그지없는 자식일 터이다. 참척의 고통이라는 깊디깊은 생채기를 부모에게 남긴 채 그들 가슴에 영영 묻힌 불효한 아들이 되고 만 젊음이 견딜 수 없이 안쓰러웠다.



친구는 한동안 그 사실을 인정할 수도 납득할 수도 아니 실감할 수조차 없었다고 했다. 흉한 꿈이라고 이건 도저히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며 한사코 도리질을 쳤다고 했다. 혼절도 몇 차례, 미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스러웠다고 했다. 차디찬 흙 속에 자식을 눕힌 다음에야 가슴을 쥐어뜯으며 통곡하고 비명을 내지르면서 하늘을 원망했노라 했다. 도대체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이런 참담한 형벌을 받는 거냐고 하느님께 대들며 따지기도 했다는 그녀. 남에게 못할 짓 한 적 없고 큰 허물 짓지 않고 살아왔는데 이런 날벼락이 웬 말이냐고 악다구니를 퍼부었다는 그녀. 저 조신하니 가녀린 몸피에서 불기가 활활 뿜어져 나왔을 걸 생각하니 애처롭고 가여워 안타깝기만 하였다.



삶을 일러 고해 건너가기라 한다. 이같이 모진 경우는 아니라도 기나긴 생의 여정을 걷다 보면 때론 사막 한가운데 모래바람 속에 서있는 듯한 황막감, 절망감을 느낄 적이 있다.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가당찮은 일,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차라리 망연자실해지는 일, 기가 콱 막힐 정도로 억장 무너지는 일 같은, 차마 못 견딜 담금질을 겪기도 하는 우리. 터무니없는 시련을 겪을 때마다 과연 하느님은 계시는가, 죄와 벌 그 심판은 늘 공정한가, 비통한 심정으로 묻게도 된다. 저마다 정해진 운명이 있으므로 인샬라, 하면서 체념한다 해도 억울하고 원통해서 그만 돌아버릴 것 같은 심사가 될 적인들 어이없었으랴. 그러한 감정의 격랑이 한차례 파도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자신을 성찰해 보며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게도 된다. 허나 종국에 이르게 되는 경계는 무상심 (無常心)이 아니던가.



독하다 싶지만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가더라, 목구멍으로 밥도 넘어가고 잠도 자는 걸 보면... 젊디 젊은 며느리나 아빠를 찾는 철부지를 볼 적마다 자꾸만 내가 죄인이다 싶어져. 이리저리 궁리해 봐도 며느리에겐 자유를 주는 게 좋겠다는 결론이고. 어린 걸 위해 정작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에 연금이나마 손녀 몫으로 돌려놨어. 참, 아들을 위해 기도 좀 해주렴. 이름이 미카엘이야. 그녀는 외려 의연하게 대화를 마무리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기운이 하나도 없는 듯 잠깐 비칠거렸다. 이마 위로 하얀 머리칼 몇 오리가 힘없이 흘러내렸다.



친구란 '가슴이 서로 통하여 오래 친하게 사귄 사람'이나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친구(親舊)의 親 자를 풀어보면 나무 위에 서서 지켜봐 주는 것을 뜻한다던가. 그렇게 지켜보다가 벗이 어렵고 힘든 입장에 놓이면 얼른 다가가 도움을 주는 이가 곧 친구라는 것. 그러하건만 나는 고통의 사막을 건너는 친구를 마주하고도 속수무책, 힘이 될만한 그 무엇도 해줄 게 없었다. 출국일을 목전에 둔 나로선 곁에 있어줄 시간도, 여건도, 그 어느 것도 여의치 않다는 게 견딜 수 없었다. 잡은 손을 한번 더 힘주어 꼭 쥐여주고 우리는 헤어졌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 하듯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기도를 보태는 것뿐이다. 그녀의 사막을 생각하며 오늘도 나는 미카엘의 영혼을 위하여 작은 기도를 바친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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