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폭염과 기록적인 폭우가 교차되는 올해 기상도다.
오늘 밤, 또다시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쏟아진다는 예보다.
국지적으로 집중호우가 예상되는 만큼 주의를 요한다는 재난문자가 빈번히 뜨는 요즘.
이럴 때 경사 심한 산비탈이나 산불이 쓸고 간 지역은 지반이 약해진 상태라 토사유출 피해가 크게 발생한다.
길을 걷다가 산사태가 난 바로 앞을 지나게 되었다.
도로를 내면서 생긴 절개지 경사면이 유실되며 벌건 황토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던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근처 초목들은 흙더미에 휩쓸려 난데없이 날벼락을 맞고 말았다.
기후변화에 따른 집중호우로 피해가 어마무지하다는 중국과 일본, 홍수는 물론 산사태로 인명피해도 적잖다는 뉴스보도다.
장마철이면 한국에서도 산간지방에 산사태가 발생, 마을을 통째로 삼켰다느니 졸지에 흙더미가 일가족을 덮쳤다는 뉴스를 접하곤 한다.
도로변 가까이에서 본 산사태 현장은 일단 사고를 어느 정도 수습해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선혈처럼 붉게 드러난 황토와 마구 찢긴 나무줄기에 더해 굉음 울리며 산 한자락이 무너지던 순간을 떠올리니 절로 오싹해졌다.
사고가 난 바로 그 순간, 도로를 지나던 차량이나 없었으면 불행 중 다행이겠다 싶을만치 노변까지 어지럽혀진 황토 흔적은 을씨년스럽도록 험했다.
장마 때마다 산사태로 도로통제 된 곳도 여럿 생기는데 비하면 안전조치로 라바콘을 세워 둔 정도는 그나마 경미한 사안이겠지만.
인생사 나아가 세상사 모두 생겨난 존재 그 무엇이나 형태 다를지라도 삶의 질곡에서 자유롭지 않기는 매일반이라 측은지심이 드는 거라 했던가.
때론 생사 가르는 사고를 간만의 차이로 모면하기도 하는가 하면 저 나무들처럼 우연히 바로 그 자리에 뿌리내렸던 까닭에 모진 횡액을 당하기도 한다.
눈에 익은 그곳은 평소 잡목숲 조밀하고 더욱이 녹음방초 우거진 데다 특히 칡덩굴 녹색벽은 철옹성 같은 느낌을 주던 곳이었다.
그런데 무너져 내린 중심부에 단단한 자연암석까지 버티고 있기에 산사태 원인이 의아스러웠다.
알고 보니 폭우가 쏟아져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면서 반반한 암석 표면으로 미끄러져 내리거나 암석 틈 사이로 물이 들어가 바위를 쪼개면서 산사태를 유발하기도 한다고.
요즘 들어 대기 불안정으로 한 지역에다 몰아서 퍼붓는 물폭탄은 몇십 년이 된 재해방지시설을 무력하게 만들기 일쑤다.
이런저런 사유로 자연재해인 산사태를 원천적으로 막기는 어렵다는 결론이다.
이튿날 지나다 보니 사태난 곳은 응급조치 삼아 가림막을 덮어씌워 놓았다.
산비탈 복구공사는 곧 시작되겠지만 전처럼 무성한 숲 되어 이 상흔 가려지려면 세월이 오래 걸리지 싶다.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 셋째 삼촌집에서 기거했다.
60년대 후반, 건축사인 삼촌이 결혼하면서 마련한 종암동 집은 뒤쪽에 옹벽이 높다랗었다.
언덕배기 집도 아니건만 층층논처럼 주변에 계속 택지가 조성되며 집이 들어서고 있던 때라 그랬던가.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집을 짓고 또 지어대던, 이를테면 신흥주택단지로 각광받던 종암동이었다.
예나 이제나 장마철엔 장기간에 걸쳐 지루할 정도가 아니라 지겹도록 비가 내린다.
폭우로 도로가 침수되기도 하고 축대가 무너지는 등의 비 피해가 해마다 반복되던 시절.
서울에 집중적으로 많은 비가 내릴 즈음이면 삼촌은 각별히 기상청 예보관의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장마철에 접어들면서부터 안 그래도 신경 예민한 삼촌은 밤잠을 설쳐야 했다.
뒤란의 축대 걱정으로 밤에는 자주 가위눌림을 겪으며 잠자다 말고 몇 번씩 플래시를 들고 직접 축대 주변을
점검하곤 했다.
우기가 닥치면 축대 걱정에 낮에는 낮대로 전화를 자꾸 걸어대 성가신 숙모는, 인물 훤한 데다 정밀한 성격이라고 좋아했던 장점을 과민함에 더해 강박적이라 치부하며 구시렁거렸다.
적당한 각도를 유지하고 있는 석조 축대는 난공불락의 성벽처럼 견실하고 탄탄해 보였으나 삼촌 눈에는 영
못 미더웠던지 폭우라도 쏟아질라치면 폭포수처럼 석벽을 타고 미끄러져 내리는 빗물을 보며 끌탕을 하곤 했다.
당시 서울시장은 불도저란 별명의 구자춘 씨였는데, 도시 개발에 속도를 내며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결국 산기슭 와우아파트가 붕괴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속히 이사해야지를 입에 달고 살던 삼촌은 그 사고 이후 발 빠르게 강남행을 선택해 종암동을 떠났다.
막 개발붐이 일기 시작하던 70년 초. 강남으로 옮긴 것은 강변의 평지라서 인지 정보에 밝아서 였는지 암튼.
나이 들어 산동네가 많은 부산에 살면서 수정동이나 영도 신선동을 지나가며 축대 있는 집을 볼 적마다 자동으로 떠오르던 수십 년 전의 종암동 삼촌집이다.
이번에 산사태를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삼촌 얼굴이 떠올랐다.
노주현과 비슷한 모습에 다혈질이던 성격 탓인지
삼촌은 혈압으로 이미 작고하신 지 한참 된 옛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