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민속촌과 겹쳐지는 낙안읍성

by 무량화
좌는 기장밭/ 우는 돗통시 지붕에 무성한 호박덩굴


제주 민속촌은 조선 말기인 1890년대 제주도 옛 문화와 역사를 원형대로 생생하게 보존해 놓은 곳이다,라는 설명대로였다.


한여름다이 짱짱한 햇살이 쏟아지는 고샅길 양 가에는 고목 느티나무며 대숲 그늘이 군데군데, 시원한 바람도 설렁댔다.

마을은 무척이나 넓었다.

산촌, 중산간촌, 어촌, 토속신앙촌, 민속 장터, 제주 영문, 수석 전시관.... 주제별로 옹기종기 알뜰히도 꾸며놓았다.


서당, 포도청, 산촌집. 어촌집, 네거리 집, 사냥꾼 집, 상갓집 등등...

다양한 듯 고만고만한 초가집은 참으로 많기도 많았다.


올레가 여전히 남아있는 집, 현무암 돌담에 감싸 안긴 집, 들창 섶이 높직이 올려진 집, 한껏 무성한 호박덩굴이 돗통시 지붕을 휘덮은 집, 우영팟에는 부추 쪽파 상추 양애 옥수수가 쑥쑥. 집 가까이에 수수밭이며 기장밭을 푸르게 잘 가꿔놓기도 했다.


비슷한 풍경들에 질릴 즈음, 눈빛 반짝 뜨인 체험 가옥.

삼십여 년 전 기억이 문득 겹쳐졌다.

당시 이어령 문화부 장관은 각 분야별 문화예술인을 대상으로 특별한 혜택을 부여했다.

폭염을 피해 산수 좋고 정자 훌륭한 곳으로 일 주간 여름휴가를 갈 수 있도록 주선해 줬다.

백지 놀러 가라는 게 아니라 정확히는 작품 창작활동을 독려하는 뜻에서였다.

전국 각처에 있는 어느 민속마을이건 장소는 우리가 자유로이 택할 수 있었다.

제주 민속촌에서부터 전라도 강원도 어디 어디.... 전국 어느 곳이라도 갈 수 있었으나 부산에서 멀지 않은 낙안읍성을 골랐다.

내심 끌린 곳은 머나먼 섬 제주였으나 주부가 식구들 다 집에 남긴 채로야 어불성설이요 언감생심이었다.

불혹의 나이였던 그때는 집 밖 세상은 완강한 타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삼십 수년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아, 세월 비껴가지 않아 주름이라는 파문만 일렁이는 지금은 칠십도 후반.

그래도 심신 강건하고 돌아볼 것이 많이 기다리는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한다.


비가 오면 활엽수에서 흘러내리는 빗물 모아 항아리에 보관/수수밭


아래 글은 1991년 낙안을 다녀와 쓴 글이다.



《낙안성에서 주제파악 제대로》



올여름 뜻밖의 보너스를 받았다. 파격적인 삼 박 사일의 공인된 휴가. 결혼 이후 이십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모처럼 갖게 된 나만의 여백이 생각사록 꿈같다. 살림 사는 주부로서 누리기 어려운 특혜라 그 며칠간을 기다리는 동안 해외 나들이 이상의 설렘으로 은근히 들떠 있었다.



더구나 단 혼자만의 여행 기회다. 일행이 있는바도 아니며 짐 지워진 목적도 없다. 어떤 틀이나 일정에 매인 것도 아니다. 명분은 창작 마을에서의 창작 활동이지만 순전히 내 뜻 내 나름으로 요리할 수 있는 자유 자재한 시공이다. 가정과 가족으로부터, 가사로부터 일상적 테두리를 떠나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필요 이상으로 서둘러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허락된 시간을 최대한으로 가득 채우고 싶어서였다. 당분간 안녕! 생활의 굴레를 벗으며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그때 나를 얽어맸던 온갖 매듭들이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너무나 홀가분했다. 휘파람이 불고 싶었고 날개 돋는 양 어깨 근처가 간질거렸다. 땅을 딛고 있지만 나는 이미 날고 있었다.



호남의 낙안성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 무렵. 뙤약볕 하얗게 바스러지는 성곽 안에 유적 같은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조선조 노략질 심한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임경업 장군이 쌓았다는 석성. 여문 짜임새로 마을을 둥그스름 감싸 안은 품이 퍽 든든해 보인다. 그 많은 돌을 어디서 취했는지 사방을 둘러보니 질펀한 들 한가운데. 준수한 산봉우리는 동구 밖 저만치 물러나 있다.



사대문인 듯 각 방위 지키는 누각 의젓하고 객사며 향교, 임 장군 비각 외에도 비교적 한국 고래의 풍습과 경관이 잘 보존돼 민속 마을로 지정된 여기는 마한 옛 터다. 현지 주민의 말마따나 눈부신 경제 성장의 뒷전에 묻혀 워낙 후진 채로 있다 보니 민속 마을이 됐을 따름이라는 자조도 맞는 말인 성싶다. 한때 관아 거느린 군 소재지였으나 이제 더 몰릴 수 없을 만큼 퇴락한 한촌으로 액자 속 풍경이 된 곳. 건강한 활기나 삶의 훈기 같은 게 거의 엿보이지 않는 마을이다. 극 중의 세트장 마냥 그냥 놓여 있을 뿐인 초가집. 생명 있는 거라곤 오로지 한 여름을 장악하고 있는 매미소리 그 합주만 드높다.



막막한 것이 마치 유배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일까. 외딴섬도 아니요 깊은 산간도 아니나 적소의 절연감이 사무쳐 온다. 무기력하게 증발돼 버린 시간. 어거지로 부여잡아도 결국은 서서히 소멸해 가는 한 시대의 잔광 뒤로 어둠이 밀려와 밤이 되었다. 한층 더 깊어진 적막강산. 왠지 혼자라는 게 낯설고 심란해지면서 집 생각이 났다. 가족들의 목소리라도 붙잡고 싶었다. 집에 전화를 거니 여러 번의 신호음만이 여운 길게 이어진다. 외부와 연결된 끈이 속절없이 끊어지는 느낌. 아무도 없이 텅 빈 세상에 나 홀로 서 있는 암담함이다.



그리도 소망했던 內的 자유다. 막상 소유해 보니 익숙지 않아서 인가, 내 몸에 맞는 옷이 아니다. 꾸역꾸역 고일 것 같던 글도 뒷전이다. 독서는 또 무슨 청승이며 혼의 충전은 웬 허무맹랑한 소리인가. 엉거주춤 인 채로 공연스레 마당을 서성이다가 또다시 전화기에 매달린다. 전화선 저편은 까만 어둠, 여전히 침묵만이 응답하고 나는 겹겹으로 압박해 오는 어둠과 치열히 대치중이다.



통화되기까지 아무래도 안정하긴 틀렸다. 그러고 보니 나야말로 모태 속 태아처럼 절대적으로 끈에 의지하고 살아온 셈이다. 우리라는 연결고리에 애오라지 집착한 터수에 남편이, 아이들이 나를 칭칭 묶고 있다고 여겨왔다. 바위산에 묶인 프로메테우스의 결박보다 더 얽매인 인연의 사슬에 숨 가빠하며 그 질곡을 못 견뎌했다. 목을 죄는 갑갑함에서 무작정 벗어나고만 싶었다. 나는 얼마나 구름이고 싶었던가. 바람이고자 한 적도 있었고 새가 되어 창공을 날길 원했다.



그러나 결국 허리에 동여 매여진 끈이 느슨해지면 불안해하는 게 나였다. 그 줄 한 가닥을 놓칠 세라 단단히 거머쥔 손도 나였음을 그날 비로소 깨달았다. 가정이란 동아리에 묶여 있어야 안심되는 나였고 어느 정도의 구속감 속에서라야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게 나였다. 그 끈은 나를 지탱케 하고 살아있게 하는 명줄 같은 것임도 함께 깨달았다.



붙잡아 맨 듯 더디기만 한 시간. 풀벌레 소리 강물로 넘치는 시골의 밤은 막무가내로 깜깜하다. 괴괴하다 못해 흉물스러운 칠흑빛 어둠. 가로등은커녕 창을 새어 나오는 불빛마저 없다. 다들 초저녁부터 잠이 든 모양이다. 그러니 물론 인적도 없다. 소리의 단절 빛의 차단. 완전한 고립이다. 경원해 마지않던 문명의 모든 것을 하루 만에 못 견디게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나. 소음까지도 그리고 번잡스러운 사람의 자취조차도.



맑은 혜안으로 자연을 접하리라 했다. 빛이라는 문명의 포장지에 가려지지 않은 자연의 실상을 만날 수 있으리라 했던 기대가 실은 착각이었다. 어쩌면 나는 문명사회에 깊이 중독되고 그 편리함에 취해 이미 의식이 마비된 건지도 모른다. 그 순간의 내겐 오로지 문명의 빛과 소리들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사실만이 뚜렷하게 부각될 뿐이었다.



군중 속의 고독은 차라리 행복한 넋두리요 사치스런 독백. 존재에 대한 외로움은 생각해 볼 여유가 없다. 스스로 자원한 무인고도에서 나는 지금 백기를 흔들고 있다. 불꽃을 쏘아 올리고 있다. 그 당장 전화가 연결됐다면 나는 아마 내일 아침 일찍 집에 가겠노라 말했으리라. 집을 나설 때의 신명과 호기는 간 데 없어졌다.



수년 전 문조를 키운 일이 있었다. 먹이를 주는 틈에 잽싸게 새장을 빠져나온 문조는 라일락 가지로 해서 담을 넘어 날아갔다. 새가 꿈꾸던 자유. 답답한 창살 안에서 목말라하던 저 높고 푸른 하늘로의 끝없는 비상. 그래 날아라, 훨훨 자유롭거라. 그런 나의 기원에도 불구하고 그날 저녁 한 풀 꺾인 꺼칠한 모습으로 돌아와 조롱 근처를 기웃대던 문조.



그 짝이었다. 별유천지가 기다릴 것 같던 집 밖 세상은 오히려 적지처럼 완강했으며 길들지 않은 적막의 무게는 곤혹스럽기만 했다. 그토록 숨 막혀하며 갈망했던 자유가 실은 허망할 정도로 별게 아니었다. 머릿속에 그려온 하나의 이상은 단지 꿈일 때 아름다울 수가 있을 뿐. 현실로 실현되고 파악될 때 기대치 이하인 경우는 흔하다. 눈물은 몇 프로의 염분과 수분이고 별은 대부분 탄소 덩어리에 불과한 예와 마찬가지일 게다.



이따금 먼데 성 밖에서 개 짖는 소리 들리던 한밤 내내 나는 아침만을 기다렸다. 그러고 보니 즐겁고 편안한 樂安은 못되었어도 주제 파악은 제대로 해 본 셈이다. 짱짱한 대나무 기개는 애당초 어림없겠지만 설마 삼밭의 쑥대야 아닌가 했더니 고작 칡덩굴로 얽혀야 할 나. 다만 모든 인연의 끈 거두어야 할 무렵쯤은 좀 의연해지길 바랄 따름이다.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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