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부리는 폭염에다 습하니 후덥지근한 날씨라 한낮에는 움직일 생각이 나질 않는다.
대신 해가 지고 난 다음 살랑거리는 바람결 선선해지면 동네 한 바퀴를 돌곤 한다.
주로 이중섭거리를 지나 자구리 해안 쪽을 걷는다.
거리를 오가는 관광객들 많은 데다 가로 불빛 밝아 안전한 편이라서다.
일찍 나서는 날이면 외돌개에서 노을을 보고 오기도 한다.
때로는 새연교에 서서 어스름에 잠기는 범섬을 보거나 새섬을 돌아서 온다.
새연교에서 여름마다 펼쳐지는 음악 분수쇼는 여덟 시 반에 시작이라 올 들어 한 번만 구경했다.
저녁 산책 장소로는 어쩐지 음습해 제외됐던 장소가 근처에 있다.
하늘 천, 따 지, 못 연, 하늘과 땅이 만나는 연못에 쏟아져 내리는 천지연폭포다.
기암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라 폭포 일대는 뛰어난 절경지로 계곡미 멋지지만 험해서 내려가는 길은 나있지 않다.
한라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솜반천을 지나며 세 불려 서귀포 원도심 서쪽을 끼고돌다 연외천과 합류한 다.
울창한 난대림을 거느린 연외천은 걸매공원 옆구리를 감돌아 흐르다 칠십리공원 아래로 물길 이어가다가 마침내 천지연 폭포수로 쏟아져 내린다.
천제연 폭포·정방 폭포와 함께 제주도의 3대 폭포에 속하는 천지연 폭포는, 입구 도로가 평평하게 나 있어 유일하게 야간 관람이 가능하다.
여긴 낮에 가도 아열대성·난대성의 각종 상록수와 양치식물 등이 울창한 숲을 이뤄 어둑신한 곳이다.
희귀 식물들이 다수 분포돼 있어 계곡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379호로 보호되고 있다.
식물만이 아니라 폭포 아래 깊은 물속에는 열대어의 일종인 무태장어가 서식한다는데 이 폭포는 천연기념물 제27호다.
이와 같으니 천지연폭포는 '천연기념물의 보고'라는 호칭이 따라붙는다.
22m나 되는 높은 절벽에서 웅장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굉음은 언제 들어도 우렁차고 서늘하다.
깊이 20m인 연못이라서일까, 낮에 와도 검푸른 물빛인데 해가 진 다음이라 먹물처럼 검다 보니 좀 괴괴하다.
그래도 오가는 산책객들 다수라 전혀 으슥한 느낌은 안 든다.
폭포수 앞에는 인증샷 찍는 사람들로 하여 밤이건만 자리가 잠시도 빌 틈이 없다.
귤모자를 쓴 가족끼리, 포즈도 다정히 연인과 함께, 줄기차게 내리쏟는 폭포를 배경 삼은 웃음소리 낭랑하다.
요즘 서귀포 여행객 중에는 피부색 다른 외국인도 다수인데 개장 시간이 열 시까지라 다들 느긋한 표정.
내려오다 보면 천지연폭포수 서귀포 항으로 빠지는 긴 물길 따라 청둥오리 군데군데 노닐고 있다.
도로 양편의 조명 은은하니 분위기 차분해서 뒷짐 지고 느릿느릿 걷기 좋은 길.
거의 모두가 천천히 어슬렁거리며 걷는 폼이 관광객들마저 한껏 여유만만하다.
너른 주차장에 이르자 저 멀리 새연교가 보인다.
언덕 위에 들어찬 서귀포 시가지 야경 얼비친 바다빛 신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