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이웃집에는 노 할머니가 혼자 사신다.
93세인 유태계 할머니의 이름은 베티다.
하나 있던 딸은 오래전에 떠나보냈다고 한다.
조카라는 노인네가 가끔 들러 차를 손보거나 잔디를 깎을 뿐 집에 찾아오는 이도 거의 없다.
할머니는 아침마다 차를 몰고 외출을 하시는데, 교회 갔다가 식당에 다녀오는 길에 필요한 물품 샤핑도 하신단다.
거동이 불편하여 항상 지팡이에 의지하며 수전증도 심하다.
보청기를 사용함에도 귀가 어둡고 약간씩 체머리도 흔든다.
그런 할머니가 운전을 하고 다니니 신기하기도 하고 아슬아슬도 하다.
바로 앞에서가 아니면 인사를 해도 언뜻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모든 기능면에서 과연 순발력이 작동할까 싶다.
할머니 집은 그 할머니만큼이나 나이를 먹은 것 같다.
하긴 그 집에서 63년이나 사셨다니 집 나이도 그만할 것이고.
그럭저럭 이 마을 토박이요 터줏대감인 할머니 시겠다.
할머니 집 뒤란에는 고목인 과수나무가 여러 그루다.
포도 시렁은 낡다 못해 삭아내렸어도 포도잎 무성하고 복숭아와 자두는 날로 탐스러워진다.
미국 사람들은 마켓에서 사다 먹는 과일만 과일로 치는지 자기 집에 열린 과일은 따먹지 않는다.
사과건 살구건 복숭아건 자두건 포도건 새 먹이로나 여긴다.
아마도 봄의 전령인 향기로운 blossom을 즐기기 위함이며, 과일이 익은 뒤 찾아오는 새소리를 듣기 위해서 과수를 심나 보다.
우리집 담장 안으로 복숭아와 자두 가지가 넘어와 왕자두가 빨갛게 익어간다.
새콤달콤 싱싱한 복숭아가 은근 나를 유혹한다.
따먹어? 말어?
남의 집 과일나무일지라도 우리집 울을 넘어온 가지의 과일은 소유권이 내게 있다고 들었으렷다. 호오~
그렇다면?
하지만 오성 이항복의 어린 시절 얘기가 떠오른다,
집 마당에 심어진 감나무가 옆집 권 대감댁 담 안으로 가지를 뻗었는데 거기에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그런데 그 집 하인들이 감을 따먹는 게 아닌가.
어린 오성은 권 대감댁 하인들의 버릇을 고쳐주고자 직접 대감댁으로 찾아갔다.
오성은 방문 밖에서 "옆집 사는 항복이옵니다." 하고 아뢨다.
권대감이 들어오라고 하는데 갑자기 문종이를 뚫고 오성의 주먹이 쑥 들어오는 게 아닌가.
그리고 이어지는 오성의 말.
오성 "이것은 누구의 팔입니까?"
대감 "그야 너의 팔이지."
오성 "그럼 대감님 댁으로 넘어간 우리집 감나무 가지는 누구의 것입니까?"
대감 "그야 너희 집 감나무 가지지."
오성 "그렇다면 그 감나무에 열린 감은 누구의 것입니까?"
대감 "그야 너희 집 감이지."
오성 "그런데 왜 대감댁 하인들이 우리집 감을 따가는 것입니까?"
대감 "음, 네 말이 맞다. 하인들의 단속을 잘못한 내 잘못이로구나."
그러하거늘 지금 나는?
과일 서리하겠다고? 새가 돼 보겠다고? 2015
*사진:픽사베이에서 모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