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굴이 폭포수처럼

2015

by 무량화

학교 다닐 적엔 아침부터 김치냄새 풍길 수 없어 대신 고구마 하나씩을 우유 곁들여 먹곤 했다.

어쩌다 늦장을 부렸거나 꾸물거리다 시간이 급할 땐 들고 가면서도 먹었다.

방학이라 고구마 먹을 일이 줄어들자 사다 놓은 고구마들이 불그레하게 촉을 틔웠다.

옴폭 들어간 자리마다 씨눈이 돋아 생명의 찬가를 속살대고 있었다.

감자와 달리 싹이 돋아도 독소가 없으니 먹어도 상관없지만, 문득 초록 생명체가 기리운 겨울에 양파를 물 채운 컵에 올려놓고 양지쪽에서 길렀던 생각이 났다.


그렇다면 고구마를 길러 실내 습도도 보충해주고 공기 정화도 돕는 수경재배를 해보기로 하자,

처음엔 큼직한 맥주잔을 썼으나 금세 무성하게 순이 돋고 하얀 뿌리 소담히 내리기에 너른 용기로 바꿔줬다.

온갖 식물이 왕성한 기운으로 자라나는 여름철이라서인지 고구마 순은 시원스레 잘도 뻗어나갔다.

침대맡 테이블 위에 올려놨던 고구마 이파리들이 담쟁이 퍼지듯 무성해졌다.

싱그런 그들과 조석으로 눈인사 나눴으며 칭찬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성장세가 어찌나 기운찬지 점점 감당할 수없이 번져나가자 이번엔 거실로 밀려 나왔다.



삼라만상이 저마다 힘차게 용솟음치며 절정의 순간 맞아 환호 보내는 한여름.

예전 외갓집에서 보았던 고구마 밭두둑처럼 짙푸른 생명력이 넘쳐나는 고구마 순을 보니, 쓰름따름 맴맴 여름을 노래하는 매미소리가 이명이듯 스치기도 하였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 와선 귀청 따갑도록 차지고도 영근 매미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뉴저지 매미는 덩치만 컸지 소리가 매가리 없이 싱거웠고 사막에선 매미 구경이 어려우니, 지금은 이명처럼 쟁쟁 울려대는 그악스러운 매미소리조차 그리워진다.

이즈음이면 붉은 배롱나무꽃에 능소화 요요하고 지붕 위로 기어오른 박덩굴 새새 박꽃 하얗게 필 텐데...

둠벙에서 붕어 잡다 물에 빠지고 밤이면 반딧불 쫓던 고향의 여름 이야기야 해도 해도 끝이 없겠고.

단정하니 둥글게 말아 모양을 잡아주었던 고구마 줄기가 위아래 여기저기로 정신없이 새순을 키워나갔다.

아이비 덩굴처럼 하루 다르게 영역을 넓혀가는 고구마 덩굴.

종당엔 높다란 냉장고 위로 용기를 올려줬다.

거침없는 덩굴손들이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리며 흰 벽면에다 청량한 풍경을 선사해 주는 고구마 덩굴.

웬만한 관상용 덩굴식물 못지않게 늘씬하니 싱그런 자태 자랑하는 장신의 건강 미인이었다.

지켜본 지 한 달여가 훨씬 넘은 지금껏 여전히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고구마 덩굴은 수직으로 낙하하는 힘찬 폭포되어 아랫녘으로 초록빛 키를 돋워나가는 중이다.

덕택에 고구마 덩굴에서 기운차게 쏟아져내리는 폭포수 소리를 듣는 축복을 누린다.



여기까지는 십 년 전인 2015년 여름 풍경이다.


올여름, 양파 자루 아래쪽에 작은 고구마 하나가 들어있었던가 보다.


아무리 모양이나 색깔이 비슷하다 해도 그간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낸 것은 그만큼 부엌살림을 등한시했다는 반증.


어느새 고구마 순은 삐쭉삐쭉 웃자라 있었다.


용솟음치는 생명의 기운에 이끌려 접시 가득 물을 담은 뒤 고구마를 얹어 놓았다.


하루새에 세 가닥의 고구마 싹은 움쭉 키를 세웠다.


하얀 뿌리도 내리기 시작했다.


무더운 날씨에 하루 하루 갈수록 잎 무성해지며 점점 고구마 줄기는 실해졌다.


얕은 접시로는 감당이 안돼 꽃병에 고구마 뿌리를 올려놨다.


벽에 기댄 채 자란 줄기는 그새 키가 70센티에 이르렀다.


생장 속도가 이 정도라면 금세 1미터도 넘을 터.


이 애도 불원간 큰 그릇에 옮겨 냉장고 위로 올라가야 되지 싶다.


향일성 식물이라 그저 하늘로만 향하나 약한 줄기가 감당할 수 없으므로 결국 폭포수처럼 키워야 할 때가 왔다.


누리의 생명체마다 기운찬 에너지를 한껏 분출하는 팔월.


비구름 낀 서귀포 창가의 고구마 순은 바다를 내다보며

무슨 생각에 잠겨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