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꽃

1997

by 무량화

한 남자가 버스터미널의 나무의자에 기대어 담배에 불을 붙인다. 맛지게 머금었던 연기를 천천히 뿜어낸다. 깊디깊은 한숨 내뱉듯이. 명주실처럼 피어오르는 자색연기가 이윽고 허공 중에 사라져 버린다. 매캐한 약간의 냄새 외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바람처럼 허공 중에 흩어지고 마는 허망 그 자체인 담배연기.

외숙모는 그렇게 허허로이 이승과 작별했다. 한 점 혈육도 남기지 못하고 담배연기 마냥 덧없이 스러져 갔다. 오십의 생애가 그리도 공허할 수 없었다. 외숙모는 한여름 잠시 돋았다 아쉽게 사라지는 무지개였다. 시나브로 증발해 버린 아침이슬이었다. 가로 늦게 외삼촌이 외도를 하며 아들을 낳았으나 그 일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으며 결과적으로 외숙모의 명을 재촉하고 말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하였다. 찬연한 예술로 혹은 위대한 업적으로 한평생 살고 간 자취가 뚜렷이 각인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보통은 자손으로 이 세상에 나왔던 표를 남긴다. 불임의 외숙모에게야 그마저 가망 없는 한낱 꿈일 뿐이었으니. 무자식 상팔자, 말이 그러하지 절손의 형벌만큼 모진 게 없거늘, 기박하게도 배태조차 못해 본 외숙모. 무엇으로도 채울 길 없는 여인의 깊은 한 때문일까. 외삼촌은 피우지 않는 담배를 외숙모는 검지와 장지 끝마디가 샛노래지도록 즐겼다.

내 유년의 뜰에 내려서면 언제나 반색을 하고 거기 서있는 외숙모. 그분이 내게 쏟은 애정의 질량은 본능적이라는 모정과 맞먹을 정도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려고 엄마 따라 본가에 가는 나를 배웅하고는 솔밭에 들어가 하염없이 흐느꼈다는 외숙모. 지나던 사람이 발길 멈추고 사연을 묻기에 짐짓, 아들 군대 보내고 오는 길이라며 목놓아 마냥 울었다는 외숙모다. 나 역시 외숙모와 떨어지기 싫어 장롱 속에 꼭꼭 숨은 채로 나오지 않아 엄마 애를 태우게도 했다는데.

60년대의 농촌 살림을 살았어도 정미소를 운영하여 험한 농사일이나 궁핍 같은 건 겪지 않은 외숙모였지만 결정적인 한 가지, 자손이 주어지지 않았다. 집안의 훈기이자 활력소 그 자체인 자녀가 없다 보니 무미건조한 분위기에다 수심으로 그늘진 날들을 밝게 변화시켜 준 아이가 나였다. 어린 생질녀로 하여 비로소 집안에 웃음소리와 활력이 감돌았으니, 외숙 내외분이 나를 귀애함은 친자식 이상이었다. 자연히 나는 외삼촌 집을 본가보다 더 좋아했다. 방학은 물론 주말마다 삼십리길 마다하지 않고 내달릴 정도로.


산야에 녹음 깊고 메꽃이 지천으로 깔린 하지 무렵. 우연찮게 열린 고향 행이다. 한창 이민 준비를 하던 당시였다. 미국에 다녀온다며 공항에 도착해 보니 여권이 만료돼 출국이 미뤄지자 뜻밖의 여백이 생겼다. 그 짬을 활용해 당일치기로 서울에서 머지않은 고향에 다녀오기로 했다. 어린 날의 추억이 수 놓인 데다 외숙 내외분이 영면에 드신 그곳. 교차되는 애틋함과 설렘을 싣고 터미널을 출발한 버스가 당진 읍내를 지나 대호지 방향으로 접어들자 눈에 드는 밭이랑 거지반이 담배밭 일색이었다.

장정 키를 넘는 의젓한 덩치에 묵직하게 넌출거리는 크고 너른 잎새가 외래 식물인 컴프리와 비슷한 담배 포기가 줄지어 선 들판. 건조한 토질에 적합하다는 담배농사가 지역 특성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걸까. 군내에 재배 신청 농가가 계속 늘어난다는 옆좌석 아낙의 자긍심 어린 설명이다. 그만큼 농가 소득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효자품종도 달리 없다는 부언을 잊지 않는다. 담배 농사는 밑거름만 충실히 해 주면 병충해 염려도 적을뿐더러 뱀도 꼬이지 않는 데다 잔손길이 별로 가지 않아 농사짓기가 대체로 수월한 편이라고 한다. 전매품인 담배인지라 전량 수매를 원칙으로 하는 계약재배를 하기 때문에 판로 걱정도 없단다. 종자를 배당받아 파종한 뒤 순을 잡아주고 꽃을 따주는 품 수고만 하면 저 혼자 쑥쑥 저란다는 담배.

그 옛적 예닐곱 살 아이가 외숙모 치마꼬리를 잡고 따라나선 담배밭은 무성히 자란 포기에 작은 키가 파묻혔다. 벌써 담배 포기 아랫단 눗누래진 밭두렁에선 구수한 듯 매캐한 담배 냄새가 났다. 담배밭에서 처음 해 본 일은 꽃 따기였다. 해바라기 잎처럼 꺼칠대면서 커다란 이파리가 달린 줄기의 맨 끝 대궁에 수줍은 듯 연분홍으로 갸웃이 피어난 담배꽃. 댕겅 잘리는 꽃대를 안쓰럽게 여기기보다는, 높다란 담배 키를 따라잡자면 까치발을 하고도 팔 길이가 모자라 애태웠던 생각만 떠오른다.

그렇게 휘어잡다 줄기가 꺾이면 외숙모는 "내 심심초 순한 걸로 장만했구나." 하면서 대궁 째로 앞치마 허리춤에 끼웠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짙푸른 담뱃잎이 누렇게 익어 잎을 딸 시기 머잖은 듯했다. 햇살 한창 따가운 팔월이면 밑자락부터 따낸 담뱃잎을 줄줄이 볏짚으로 엮어 그늘진 데다 말리던 정경이며, 껑충하게 높이 솟은 담배건조장의 황토벽 풍경이 한 장 삽화되어 되살아난다. 신문지 쪼가리도 귀해 거친 갈잎에 말아 피우던 엽연초 독한 내음까지도.



식물에게 있어 꽃을 피운다는 것은 씨앗을 남기기 위함이다. 그 일이야말로 전력을 기울여 생애를 마무리 짓는 대역사에 속한다. 뿌듯한 절정의 순간, 그러나 경제성 및 효율성이 우선인 농부들 입장으로는 그마저 용납해선 안된다. 온 기운과 영양의 총결집인 꽃을 불필요하게 개화시키느니 더 유용한 방향으로 에너지를 돌리겠다는 발상은 합리적인 영농과학의 소산이리라.

감자알을 굵게 하려고 감자꽃을 따내듯 담뱃잎을 실하게 키우려면 담배꽃을 미리 솎아내야 한다. 종자식물의 번식기관으로서의 역할이 주어진 꽃. 대부분의 식물은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그 속에 씨를 품어 다음 대를 예비한다. 꽃은 맺었으되 제 몫을 다 못하고 하릴없이 밭고랑에서 시들어가는 담배꽃. 대신 명년 농사 때 쓸 종자는 전매공사에서 공급해 주므로 전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종족번식 수단으로 피우는 꽃을 인위적으로 거세당한 담배꽃의 비탄쯤이야 위무될 수 있는 명분이라도 있다. 그러나 봉오리조차 품어보지 못한 통한을 한숨 토하듯 담배연기로 날리며 한 세상 적막하게 마감한 외숙모. 안타까운 건 미완으로 끝난 무용(無用)의 세월이다. 더욱이 앞산 풀숲 봉분마저 돌보는 후손 없이 황폐해진 채 쓸쓸하게 잊혀짐이다. 내 회포만 애연할 따름인가. 차창밖엔 녹음이 욱욱청청하다.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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