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간사라 했다. 모임의 친구 남편이 뇌를 다치는 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한 달여가 넘었다. 문병을 가서 그녀를 만나면 준비했던 말마저 죄다 사라져 버렸다. 아니 숫제 말문이 막혀 버리는 것이다. 어떤 위로의 말도 찾아지지 않을 만큼 상황이 심각한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건 기도뿐이라고 손을 꼭 잡아 보지만, 정작 그녀는 기도는커녕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단다. 기적을 바라며 절대자에 매달리는 기도조차도 어느 정도 희망의 여지가 있을 때나 가능하지, 절박함의 도가 넘으니 머릿속이 텅 빈 듯 그저 멍할 따름이라고 울먹인다. 악몽을 꾸는 것 같다고도 한다.
의식을 놓아 버린 채 숨만 힘겹게 몰아쉴 뿐인 환자. 하루 두 차례 면회 시간을 기다리면서 피 말리는 대기 상태로 병원생활을 하다 보니 보호자의 형색은 말이 아니다. 어떻게든 목숨만은 살려야 한다는 오기 하나로 버티지만, 그녀 역시 금방 허물어질 듯 그야말로 기진맥진한 상태다.
이대로 보낼 순 없다며 흐느끼는 그녀. 평상시 잘못한 일들만 떠올리며 그녀는 자책감으로 괴로워했다. 생사의 갈림길에 마주 서면 누구라도 그런 심정이긴 마찬가지이겠지만, 유달리 정에 여린 까닭에 더더욱 비통의 터널은 어둡고 길 것 같았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그녀의 몫인 무거운 짐. 어차피 고해라고 하는 세상살이다. 크든 작든 저마다 다른 고민이나 걱정거리를 짊어지고, 휘적휘적 가파른 고개를 올라야 하는 우리임에 동병상련의 연민이 깊어지는 걸까.
함께 문병을 간 친구 하나가 어깨를 다독이듯 나직이 말한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니. 속으로 들 상처를 싸안고 다만 태연한 척 그렇게 사는 거지. 결국 오십 보 백 보 차이야. ” 가장이 대출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평생직장은 물론 전 재산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는 시련에 처했던 그녀다. 지금은 그 역경을 극복하고 어엿하게 살아가는 그녀지만 새삼스레 눈가가 붉어진다.
그녀 말마따나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고해 건너기에 다름 아니라는 인생 여정이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제각기 형태 다른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쓰리고 아픈 생채기가 아물기까지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세월이 해결해 주지 않는 문제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보다 적극적으로 신앙에 귀의한다거나 예술에 몰입하는 사람도 있겠고 때론 눈물도 약이 될 수 있으리라.
옆에 있던 또 다른 친구의 짐짓 성난 듯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그만 울어라, 나도 산다. 나도 이렇게 사는데…” 끝내 잦아드는 음성. 여럿이 모이다 보니 품은 사연과 곡절도 가지가지다. 너무 기막혀서, 어이없도록 기가 막혀서 눈물도 안 나오더라고 했다. 분하고 억울해서, 현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어서 마구 화가 나더라고 했다. 다 큰 자식을 파도에 쓸려 보낸 그녀였다. 하늘이 필요해서 일찍 데려갔으리라는 자위는 한순간, 그보다는 참선 통해 마음 다스린 그녀였다. 그녀의 상흔을 덧들이게 하지 않으려 평소 조심해 온 우리였기에 다들 묵연히 눈길을 내렸다. 그 앞에 더 이상 어떤 고통이 나설 수 있으랴.
몇 해 전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에서 피에타 상을 마주했을 때, 불현듯 떠오른 건 스무 살 무렵에 세상을 떠난 친구의 엄마 모습이었다. 흰 눈이 펄펄 내리던 날, 친구 엄마는 딸이 생전에 아끼던 루이제 린저의 책과 목각인형들을 딸과 함께 묻으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일절 말 한마디 없었다. 몸부림도 곡성도 없었다. 자꾸만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느라고 손등으로 그저 턱을 쓸어댔다.
아예 말문을 닫게 하는 고통의 극. 사람들은 작은 아픔에 수다스럽고 정작 큰 고통 앞에 벙어리가 된다 하였던가. 끝내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그 어머니의 고통처럼,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 상은 자식을 잃고 슬픔에 빠진 어머니여서 ‘비탄의 성모’라고도 불린다. 보는 이로 하여금 뭉클한 감정에 절로 옷깃 여미게 하는 피에타 상. 자식을 앞세워 보낸 어머니의 애끓는 통고를 제대로 이해하기엔 아직 미흡한 나이 스물한 살 때 이미 그 지극한 슬픔을 조각 속에 완벽히 담아낸 미켈란젤로. 과연 위대한 천재는 하늘이 내는 것임을 거듭 확인한 자리이기도 했다.
부활의 찬란한 영광을 의심치 않는다 해도 그 순간,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두 팔에 안은 채 처연히 지켜보는 마리아의 흉중은 다 삭고 녹아내려 빈터였으리. 어디에 그런 형벌 못잖은 연단이 또 있을 것인가. 무엇에도 견줄 바 없는 자식 잃은 어머니의 기막힌 상실감은 혼절로 이어지지만 그래도 모진 게 목숨, 산 사람은 산다. 아니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영원한 이별을 감당해야 하고 다시는 만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하는 비극의 절정. 그 고통의 늪으로부터의 출구를 운명의 신은 짓궂게도 어딘가에 따로 장치해 놀았으니까.
생때같은 자식을 떠나보내고도 사는데… 미치지 않고 그래도 사는데... 슬픔은 더 큰 슬픔 앞에 할 말을 잃는다. 고통은 더 큰 고통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살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티격태격한 일들이 실은 얼마나 사치스런 투정이었던가. 누구네는 고부갈등으로 힘겨워하고 누군가는 넉넉잖은 살림살이로 불편해한다. 뜻대로 안 되는 자식 때문에 고심하고 배우자의 불성실로 인해 속을 끓이는가 하면 심지어는 성격차이 가지고 사네 안 사네 야단법석을 떤다. 겪는 당사자에게야 더 이상 심각할 수 없는 대단한 문제라도 죽고 사는데 비하면 별게 아닐 수 있다. 현재 내게 주어진 삶이 거부할 수 없는 하늘의 뜻이라면, 차라리 거기 숨겨진 의미를 찾아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해 나감이 지혜롭지 않을는지.
한 치 앞을 모르고 사는 무기력한 존재에 대한 측은지심. 곳곳의 인생 도정에 감춰져 있는 예기치 않은 복병 앞에 속수무책인 인간의 한계를 별도리 없이 수긍하면서 다들 허망한 기분이 들어서일까. 상처 진 속내를 펼친다는 게 어쩐지 수치스럽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평소에는 거의 입에 올리기 저어했던 터였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런 격의 없이 서로를 위무하며 사십 대 아녀자 몇 이서 호방한 술꾼들처럼 의기투합, 벌건 대낮에 술집을 찾았다. 정말 흠씬 취하고 싶은 날이었다.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