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의 일이다. 생각지 않은 곳에서 봄의 서곡을 들었다. 개나리 노란 덤불이 내려다보이는 충남대학병원 7438호. 신경내과 병실에서다. 허혈성 뇌혈관 장애로 친정어머니가 입원을 하신 까닭이다.
병원 가길 즐기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팔순 노모는 유달리도 겁이 많아 병원이라면 질색이시다. 그럼에도 정신이 아뜩해지는 어지럼증에다 감각이 마비되는듯한 심상치 않은 증세가 느껴지자 서둘러 조치를 취해 응급실을 찾은 것이다. 다들 근무처로 나가 혼자 집을 지키던 한낮의 일이다. 그 총망중에도 가물거리는 의식을 붙들고 초반에 슬기롭게 대처한 덕에 가벼이 고비를 넘길 수 있었으니, 하늘의 도우심이라 여겨 감사할 따름이다.
병원에서 머문 십 여일. 그동안 뇌 단층 사진을 찍고 심전도를 비롯한 이런저런 검사가 병행되었다. 원인을 찾으니 그에 따른 처방전이 나왔다. 치료는 비교적 간단한 편으로 혈전 용해제가 지속적으로 투여되었다. 보호자 역할이라야 갑작스런 피부반점이나 잇몸출혈 등을 유의해 살피라는 지시에 따르면 될 뿐 곤고하고 힘겨운 일은 없었다. 그래도 병상의 어머니는 수발드는 딸자식 안쓰러워 노상 조바심이다.
자손에게 평생을 베풀기만 했으니 이 정도의 자식 노릇은 당연하건만 그도 애가 쓰이는 모양이다. 하긴 깊은 수면은 일단 유보시켜야 했던 그 몇 날. 보호자 침대의 불편함이나 잠자리가 바뀐 때문이 아니었다. 병실은 2인실이었고 옆 침대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안노인 환자가 입원해 있었다. 일흔도 안된 정정한 할머니인데 외며느리와의 불화 끝에 충격받아 뇌혈관이 터지면서 신경계에 문제가 생겼다고 간병인이 귀띔했다.
천억 개에 이른다는 신경세포로 이루어진 뇌의 복잡다단한 구조상 어느 한 가닥 기능이 삐끗하면 그걸 찾기까지 다양한 검사가 동원된다. 여러 종류의 검사에 시달려 탈진 상태인 그 노인은 옳은 의식은 물론 아무런 감각도, 심지어 통증마저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혼미에서 잠깐씩 깨어나 정신이 들면 자꾸 말을 시키라고 했다. 사는 곳을 물으면 고향임직한 지명을 떠듬거리며 겨우 외는 정도고 여기가 어디냐고 하면 어눌한 어조로 광주요, 라는 엉뚱스런 답변이다. 그래도 자녀들은 제각각 알아보고 어서 가서 쉬라며 등 떠밀던 모정이건만, 매일 밤 옆 사람 잠을 설치게 만들던 그 할머니.
얼핏 잠들었다가 화들짝 놀라 깬 것이 몇 번인지 모른다. 교대도 없이 거의 날밤을 새다시피 하는 간병인이다 보니 수마에 쫓겨 설핏 조는 사이 번번이 일은 터진다. 한밤중 쿵― 소리에 놀라 깨어 보면 노인네가 병실 바닥에 떨어져 있기 일쑤다. 한사코 집에 가겠다며 마구잡이로 뛰어내리는 것이다. 해서 머리가 깨지고 전신은 시퍼런 멍투성이로 보기 민망할 지경이다.
한 번은 링거병 호스를 이빨로 끊어 버리고 병실을 빠져나가 혼비백산하게 만들기도 했다. 역류 져 흘러내린 피가 복도까지 흥건히 적셔 주위 사람들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그 밤. 결국은 침대에 붙들어 매도 안돼 진정제를 맞고야 겨우 잠잠해졌다. 시도 때도 없이 아들 밥해줘야 한다며 나가려고 설칠 때의 힘은 여늬적 기운과 달리 불감당의 괴력이었다. 숫잠에 들었다가 기척이 느껴져 눈을 떠보면 침상 모서리에 서서 히죽 웃고 있는 얼굴이 있어 기겁을 하게 만들기 여러 수차례.
같은 병실에서 몇 날을 함께 지내다 보니 노인의 신변사가 절로 파악됐다. 처음엔 자손들 자랑으로 일관했다. 아들은 대학원을 마친 재원이고 음악교사로 근무 중인 자부에 명문대 진학한 외손주 자랑까지 되풀이하고 또 했다. 아직 후손이 없는 아들네서 세 식구 살림 직접 돌보며 교회 다니는 일이 유일한 낙이자 생활의 전부라 하던 노인.
겉보기에는 까다롭지 않은 듯한 할머니이나 나름의 고집에다 자의식이 뚜렷하고 자존심이 무척 강한 편이었다. 그런만치, 여태껏 자신을 실망시킨 적이 없는 자손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이 있어 삶을 지탱해온 듯싶었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 없이 평온하기만 한 가정이 몇이랴. 고부갈등으로 인한 환부를 숨긴 채 겉만 보기 좋게 포장시켜 온 할머니. 친구나 이웃과 어울려 수다 떨며 속내 터놓고 지내기보다 울안의 일 절대 내색 안 하고 끌어 덮기에 전전긍긍해온 성품이 도리어 화근이었다.
사십 줄에 혼자되어 세 자녀 가르치느라 지문이 남아 나질 않을 만큼 고생 많았다는 사연에서부터 노인의 하소연은 터져 나왔다. 동시에 주르르 눈물을 흘렀다. 혹여 자식들이 신경 쓸까 저어 돼 평소엔 맘대로 울지도 못했다며 겨운 설움에 목이 멘다. “할머니, 속이 풀릴 때까지 실컷 우세요. 맺히고 쌓이면 병 밖에 안됩니다. 병나면 할머니만 괴로운 게 아니라 곁에서 지켜보는 자제들 힘들게 하는 거예요."
할머니는 그날 참 많이 우셨다. “내가 우리 아들을 어떻게 키웠는데…며느리 때문에 너무나 속이 상해 화병이 난 거예요” 그러면서 털어놓는 푸념들. 말 못할 고초 겪어내며 자식 위해 헌신해온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인 할머니였다. 그러나 일구월심 아들에게 쏟은 외줄기 사랑이 문제였다. 하늘처럼 여긴 아들에 대한 높은 기대치, 은연중에 깃든 보상심리며 깊은 집착심도 며느리에겐 부담요인이었으리라. 게다가 성격도 꼼꼼하니 화통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으니 복합적으로 고부 사이가 꼬일 대로 꼬인 듯했다.
한국통신에 다니다 구조조정으로 밀려나 졸지에 실업자가 된 아들. IMF 한파 속 이동통신 시장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 바람에 일 년 가까이 노는 가운데 아들 내외는 자주 다퉜다. 가장의 위상이 추락된 것만도 마음 아픈데 어머니 보기에 아들이 며느리로부터 대접받지 못하고 소홀히 취급 당하는 것 같아 가슴 쓰리다 못해 억장이 무너졌다. 금쪽같은 아들을 마치 아랫사람 부리듯 하는 꼴에 부아가 끓었다. 다이어트하는 며느리로 인해 빵으로 때우는 아침식사는 더더욱 못마땅했다.
직장 나간다고 사치스레 꾸미고 다니는 행색이며 아예 규모 있는 살림을 기대할 수 없는 헤픈 씀씀이에 아들 장래가 염려돼서 또 속이 터졌다. 잘못을 나무라고 가르치려 한들 며느리가 다소곳하지 않으니 집안만 시끄럽게 된다고 한숨 흘리는 할머니. 병원에 들른 자부는 과연 광대뼈와 콧날을 보나따나 억세게 생긴 인상이었다. 아들 맘 편하게 해주려는 배려로 무작정 참다 보니 혼자 끓인 속이 새카만 숯덩이라고 했다. 자식이 도대체 뭔지.
옛부터 만병의 근원은 마음에서 온다고 하였다. 곧 마음이 상하면 몸이 상하게 된다. 이렇듯 몸과 마음은 따로따로가 아니다. 서로 연관되어 상호작용을 하는 관계가 심신이다. 속상하거나 화나는 일, 불만스럽고 기분 나쁜 일, 원통한 심사나 괘씸한 감정을 참아 내기만 하다가는 결국 병을 만든다. 제때 풀지 못한 억눌린 감정은 약한 암반층을 만나면 기어이 분출되는 화산이 되어 자신마저 파괴시킨다. 그 이전에 원망이든 한이든 갈등이든 완급을 조절하며 녹혀내는 나름대로의 노련한 처방전을 지녔던들....
삼종지도에 얽매여 살았던 전 시대의 여인네들이 가슴에 앙금 진 응어리를 풀고 엉클어져 맺힌 고를 풀고자 그래서 대신 굿판을 벌인 건지도 모른다. 꾹 입 다물고 말없이 참는 것만 능사가 아니다. 그때그때 적절한 방법으로 현명하게 갈등을 해소시키지 않을 경우 키우느니 병뿐. 오랜 신앙의 힘도 완충기능을 못했다면 차라리 대화가 언쟁으로 비화되더라도 나름껏 묘수를 동원해 끓인 속을 푸는 지혜가 그 할머니에게 진작에 필요했다.
나 또한 며느리 위치이자 시어머니의 자리에 와있기에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 계기였던 그 할머니와의 만남. 올해, 1999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노인의 해>다. 우리나라 절반의 노인층이 자녀와 같이 사는 것으로 통계가 나와 있지만 그 속에 묻힌 사연과 문제는 얼마나 많을지. 생명받고 태어난 존재는 누구라도 늙게 마련이다. 너나없이 준비된 노인, 더구나 지금은 고령화 시대다.
새삼 불교에서 가르치는 '부모 은중경' 을 떠올려 본다. 어버이의 살과 피를 받아 태어났건만 우리는 오히려 나이 든 어버이의 살과 피를 더욱 졸아들게 만드는 노릇들을 하진 않는지. 살과 피 만이랴, 마지막 심장까지도 기꺼이 자식 위해 내놓을 수 있는 게 부모 마음 아니던가.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자식 입에 넣어 주는 게 어버이다. 자식 또한 부모되어 그 진정 깨달을 즈음이면 자신의 부모는 이미 이 세상에 아니 계시다.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