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설마하던 중 어느 순간 노트북이 딱 멈춰버렸다.
뚜렷한 전조증상도 없이 갑작스레 심장마비가 오듯 졸지에.
하긴 두어 번 화면이 스르륵 사라진 적이 있긴 한데 번번 무시해 버렸다.
사실 올여름 같이 유례없는 폭염에야 기계인들 더위 먹지 않겠나.
워낙 단순무지한 기계치라 '더위 먹어 쓰러진 노트북'이라고 나 편할 대로만 이해하기로 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편리한 세상은 됐을지언정 이처럼 아차 순간에 간직해 둔 많은 걸 허망히 잃어버릴 수도 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것들은 인쇄된 책자로 글이 남고, 빛바래더라도 현상된 사진 얼마든지 오래 보관이 된다.
반면 디지털 시대의 사진이나 글은 사상누각 같아 허공 중에서 가뭇없이 스러지고 마는 경우, 블로그를 하면서 종종 겪었다.
사실 과학 쪽이라면 거의 원시인 수준인 문맹자, 그럼에도 블로그 하는 게 신기하긴 하다.
고단한 이민 초기 생활 중, 짬짬이 오 년여 넘게 저장해 놨던 단상들 결국 다 날려버린 전력도 있다.
글에 곁들였던 필름 사진이 아닌 디지털 사진들도 당연히 몽땅 사라졌다.
그나마 근자 들어 데스크탑에도 사진을 담아두기 시작해 겨우 근래 2~3년 치 사진만 남게 됐다.
처음엔 잃어버린 자료들이 아쉽고도 아까워 자꾸만 미련이 맴돌았다.
그러나, 결국 언젠가는 인연이 끝날 건데 미리 알아서 정리된 거라며 스스로를 추슬렀다.
사라진 기록들이 아깝긴 하지만 이참에 비워내는
공부 잘했다고 위무하였다.
종심(從心)에 이른 이젠 생의 흔적을 하나씩 지워나가야 할 때이므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찬란히 빛나던 태양도 이윽고 바닷속으로 진다.'
이는 화산재에 묻혔다가 1500년 후 발굴된 폼페이 어느 벽에 남겨진 누군가의 낙서다.
달도 차면 결국 기운다.
유형무형의 우주만물은 생겨났다가 때 되면 드디어는 소멸한다.
생(生)은 반기며 좋아하고 멸(滅)은 싫어하며 거부하려 들지만, 시절인연 따라 생긴 즉 모든 것은 반드시 멸하기 마련이다.
인연 따라 일어났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존재는 흩어져 사라지고 마는 것.
해서 제행무상이거늘 애착 둘 것이 무엇인가.
자연계 모든 것 생멸을 겪으므로 틀림없이 예비되어 있는 그날.
한 생애가 문 닫히는 마감일은 오직 하늘만이 안다.
그때가 언제 될지는 모르지만 필히 오고야 말 작별의 시간.
마지막을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아쉬워하지도, 안타까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라고 선현들은 가르친다.
동시에 모든 집착을 놓아버리라고 누누이 당부한다.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듯 떠날 때 역시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채 너나없이 빈손으로 가는 우리.
지금도 잘한 일이라 여겨지는 게 있다.
뉴저지에서 서부로 이사 오며 꽤나 아끼던 한국 도서와 세트로 된 그릇, 침대, 카우치 등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온 점이다.
지난봄, 옆집 할머니가 눈을 감은 지 며칠도 안 돼서였다.
생전에 애지중지 쓰다듬던 살림들은 두 종류로 분류해 통례대로 구세군 교단에서 싣고 갔으며 나머지는 가차 없이 쓰레기 수거차에 실렸다.
오래전 한국 살 적에 옆집에서 시어머니 장례를 치르자마자 도우미 앞세워 곧장 고인의 유품을 들어내는 걸 보고 충격받은 바 있다.
삼우제도 지나기 전 서둘러 고인이 남긴 장농과 옷가지며 이부자리 등 짐더미를 쓰레기로 처리하는 걸 보고 씁쓸했던 기억.
남은 이들 부담 주지 않게 미리 자신이 알아서 생의 흔적들 하나씩 지워가는 일, 가벼이 비워내는 일을 진작에 해두는 게 옳았다.
그렇게 서서히 주변 정리를 하는 건, 떠난 뒤 남겨질 이들에 대한 마지막 배려가 아닐까도 싶다.
죽을 때까지 꽉 움켜쥐고 있으라는 재산은 물론 귀금속이나 가재도구 등, 심신 온전할 때 그날을 대비해 신변 깔끔하고 담박하게 정리해 두는 것은 필수겠다.
무슨 기념일이거나 여행을 가면 부지런히 사진을 찍지만 자신의 사진 또한 언젠가는 쓰레기에 불과할 것이다.
세상에서 그 누구도 내 사진을 나 자신처럼 살갑게 보거나 즐겨줄 리 없는 그야말로 성가신 군더더기 짐.
직접 촬영해 둔 사진이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찍힌 사진의 주인공일지라도 그 사진은 오로지 자신에게나 소중한 거다.
널리 귀감이 되는 인생을 살아 길이길이 후세에 남길 역사적 사료 가치가 충분하다면 또 모르지만.
따라서 삶 후반부에 들어서며 나이 들수록, 마무리를 위해 모든 생활의 흔적들, 그 부피와 무게를 줄여 나가는 일이 현명한 처사 아닐지.
타오름달 팔월은 들가을 달이라고도 한다.
들어오는 가을에게 바통을 넘기고 불타던 팔월이 훌훌 떠나가는 끝날이다.
어떤 별리 건 별리는 짧을수록 산뜻할뿐더러 아름다운 추억으로 여향 길게 남는다.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