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전쯤일까. 세계적 영장류 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을 처음 만난 건 한국의 뉴스기사를 통해서였다.
서울대공원 해양관에 가둔 채 돌고래 쑈나 보여주던 남방큰돌고래를 제주 앞바다에 자연방사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인간의 이기심 어린 탐욕으로 불법 포획된 바람에 수족관 조련사 명령에 길들여져 어거지로 재주나 부리면서 점프 묘기 한 번에 고등어 한 마리 얻어먹던 돌고래다.
동물 나름 삶의 방식을 존중하자는 메시지를 선포하며 야생 적응 훈련기간을 거쳐 고향바다로 되돌려 보낸다는 돌고래는 제돌이와 네 명의 친구들이었다.
당시 그 옆에서 구연동화를 들려주던 머리 하얀 외국여인이 퍽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녀가 제인 구달이었다.
물론 아직도 마린 파크니 씨월드며 아쿠아리움 같은 비좁은 수족관에서 야생의 힘찬 자맥질을 잊은 채 스트레스라는 마음의 병으로 시난고난하는 돌핀이 얼마랴만은.
딱히 이유는 없으나 개인적으로 환경운동가 시민운동가 인권운동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뻔하지~"하는 시니컬한 동류의 기준을 그녀 제인 구달에게는 들이밀지 않았다.
우선 영혼의 창인 눈빛이 워낙 맑은 때문이었다.
순수, 순결, 청정 같은 단어가 대입되는 그녀의 티 없이 맑은 눈.
동물행동학자, 환경운동가. 아프리카 침팬지 연구로 명사가 된 제인 구달은 193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평소 아프리카를 동경해 왔던 영국인 모녀가 탄자니아 곰비 침팬지 보호구역에 도착한 것은 1960년 7월 16일의 일이다.
몇 달 뒤 어머니가 귀국하자 제인 구달이란 이름의 젊은 처자는 이후 10여 년 넘게 거기 머무르며 침팬지를 관찰 연구하면서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 등을 알려 세계를 놀라게 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는 자금을 지원하며 네덜란드 출신의 사진작가 휴고 반 라윅을 파견해 모든 활동상을 영상으로 기록해 나간다.
영광스러운 칭송과 때로는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우여곡절의 세월이 흘러갔다.
현재는 60여 성상을 지켜온 곰비지역을 떠나 런던에 머물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장벽에 막혀 고령의 그녀는 탄자니아 야생동물 보호구역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연구활동도 중단됐다.
세계인 모두가 염원하듯 어서 속히 이 악몽 같은 시기가 지나가기만을 기도드린다는 그녀.
얼마 전 낙동강 하구 다대포에서 아주 가까이 펼쳐져 있는 갯벌을 지켜본 적이 있다.
충청도 서해안가에서 유년기를 보냈기에 친근한 갯벌인데 무척이나 오랜만에 갯벌 생태계와 접할 수 있었던 것.
하루 두 차례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며 드러나는 점토질의 갯벌은 산소가 풍부하고 유기물이 많아 다채로운 생물들이 서식한다.
거기서 바지락도 캐보고 고둥이며 낙지를 건져온 기억도 선연한 갯벌.
요즘 사람들은 랩스터와 킹크랩을 즐기며 꽃게나 박하지로 담은 별미 간장게장이나 좋아할까, 예전 황발이 능쟁이 달랑게 털게 이름을 몇 사람이나 알고 기억하랴.
뿐인가, 바다의 보물 창고라 칭해지는 갯벌은 오염된 바다를 정화시켜 노폐물을 걸러 주는 콩팥 역할을 한다.
갯벌만이 아니라 아마존 밀림지대며 쓸모없어 보이는 습지 같은 자연생태계야말로 풍부한 생명력의 원천으로 지구를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해준다.
그럼에도 이십 년 전, 낙동강 타고 내려온 공장 오폐수 퇴적물들의 최종착지인 다대포라 인근은 악취가 하도 심해 거의 코를 막아야 할 수준이었다.
완전 빈사상태에 빠진 채 생태계가 크게 위협받던 중, 시 차원에서 많은 시간과 물자를 동원해 어렵사리 환경을 재생시킨 다대포다.
다대포 해수욕장엔 갈매기떼 그득하고 백로인지 왜가리인지가 긴 목 빼고서 물속 먹이를 찾고 있었다.
생태계가 되살아난 게 분명해 흐뭇한 기분으로 데크에 올랐다.
모래사장, 갈대숲길, 갯벌로 이어지는 생태탐방로 데크길을 따라 걷다 보니 의외로 펄 속에 보금자리를 튼 게가 지천으로 버글거렸다.
아, 너희들 여전히 살아있었구나! 반갑다 반가워.
밀물 썰물은 해안에 깃들어 사는 생명체에게 주어지는 식사시간이라지.
처음 보는 게라 이름은 모르는 채라도 갯벌에 게가 빨빨거리며 기어 다니고 구멍으로 숨는 걸 보니 대견하고 신통해 그 모습을 연속으로 사진에다 담아두었다.
물 빠진 갯벌을 이리저리 소요하다가 미세한 기척만 느껴져도 재빨리 제 집으로 숨어드는 게 들.
그처럼 한순간에 갯벌 완벽하게 비어버려 사위는 고요히 멈춰 선다.
진작에 자연의 가치 즉 숲의 가치 갯벌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 환경경제학 생태경제학이 나왔지만 사람들에게는 먹혀들지 않았다.
나 역시 코로나 진단검사를 받고 결과치를 받기까지의 반나절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로 몸에 탈이 나지 않았더라면 자연과 인간, 삶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 가치인지 깨닫지 못했을 터다.
아직도 진영논리에 갇혀 혼탁하게 요동질치는 한국정가나 수상한 북한의 행적도 관심 밖이고 미 트럼프대통령의 트위터 한줄에 일희일비하지도 않는다.
어디서 비리가 터지건, 어떤 자가 대권주자이건, 누가 자살을 했고 누가 거짓말을 했건, 까짓 그딴 일 신경 쓸 가치조차 없다.
헛되고도 헛된 인간사 하찮게 여겨질 만큼 이젠 내 안의 절대가치가 바뀌었다.
어느 석학의 말대로, 신이 만든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무절제한 인류의 욕심에 의해 심히 훼손돼 가자 신은 생태에 가해지는 사람들의 폭력을 멈추게 하려고 코로나를 보냈다던가.
와중에 굿뉴스도 있었다. 오래전 제주바다에 방사한 돌핀 다섯 마리 중 암컷 세 마리는 새끼를 낳았다고 한다.
돌핀가족들은 자유로이 넓디 너른 바다를 유영하며 생명체 모두가 누려야 할 일상의 행복을 즐긴다는 소식을 때마침 들었다.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