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끼니때마다 찾아오는 요 녀석을 우야믄 좋을꼬? 했던 길냥이.
훌쭉한 배를 보고 거두기로 작정, 먹이도 골고루 사 오고 클래스메이트들에게 이름 공모전까지 내걸었다.
세라님의 '바람'과 조안님의 '잔디'가 최종 경합을 하기에 이르렀다.
바람이 마음에 쏙 들었는데 뒤늦게 잔디 이름이 등장하자 잔디 역시 마음을 단번에 호렸다.
누렇게 마른 뜨락 잔디 색깔하고 똑 닮은 냥이라 잔디라 부르고 싶었으나 그러자니 바람이 걸렸다.
처음에 낙점한 바람인데 아무리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지만 변덕스럽게 가벼이 변심해 버리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베르디의 오페라까지 내밀며 뭐 까먹은 거 없냐는 세라님께 면목도 안 서고 이래저래 입장 난처했다.
그런데 바람처럼 또 한 마리가 먹이 냄새를 맡았는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흰 턱시도에 백구두를 신은 까만 나비였다.
이 녀석은 진짜 바람같이 왔다가 안에서 인기척만 났다 하면 바람처럼 민첩하게 사라지곤 하는 날쌘돌이다.
먼저 밥그릇 임자가 된 누렁이는 인심 좋은 순딩이라서인지 영역싸움은커녕 곁다리로 얻어먹듯
나중에 등장한 턱시도 눈치를 슬슬 살피며 밥을 먹는다.
두 녀석 다 식사를 한 다음 앞뜰에서 각자 열심히 그루밍을 하고는 소상처럼 앉아 있다가 담을 넘어 어딘가로 간다.
아직까지도 심하게 몸을 사려 녀석들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어 사진도 멀찍이서 겨우 찍는다.
따라서 나이나 암수 구분 역시 못하고 있다.
밥 먹을 때는 몰랐는데 뜰 한구석에 앉아있는 턱시도 사진을 찍고 보니 벨트타입의 목걸이가 보인다.
누군가가 기르다가 잃어버린, 말하자면 가출한 고양이겠다.
평생 집에서만 살다가 잠깐 실수로 집을 나서게 된 냥이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차 순간에 귀염 받던 애완동물에서 동가식 서가숙 길거리를 떠도는 신세가 돼버린 냥이.
사람 손을 탄 적이 있어서인지 더 눈치도 빠르고 경계심이 상당히 높다.
혹시 목줄에 이름이 쓰인 펜던트가 매달려 있거나 무슨 인식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워낙 예민해 근처에 접근 자체가 불가라서 현재로선 확인할 수가 없다.
어제 길을 걸어오다가 동네 전봇대에 붙은 애완견을 찾는다는 전단지를 보았다.
이처럼 사랑스런 귀염둥이를 잃고 찾으려 애쓰는 주인이 있는 반면, 애지중지하며 돌보던 보호자로부터 의도적으로 버림받아 내쳐진 동물 사연도 숱하게 듣는다.
차에서 버려진 강아지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리며 오가는 차량을 지켜보던 눈길,
심지어 휴가철이 지난 다음 피서지에서 흔히 눈에 띈다는 유기견들.
정처 없이 떠돌다 윤화를 당해 비명횡사하거나 요행히 구조돼 동물보호시설에 간다 해도 입양이 되면 모를까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결국 안락사시키고 만다.
스스로 선택해서 한가족으로 받아들인 동물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유기하는 비정한 사람들.
한때는 귀여운 어린 동물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장난감을 사들이고 그네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었으리라.
다들 피치 못할 사정이야 있겠지만 한 생명을 마지막까지 책임진다는 각오 없이, 단순히 남들 키우는 게 좋아 보인다거나 한때 충동적인 기분으로 데려오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사람과 한 공간에서 살아가며 사랑을 주고받는 가족이라는 의미에서 반려(伴侶) 동물이라 한다.
애완동물은 싫증 나면 폐기하는 완구가 아니라 감성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생명체다.
언제까지 인연이 닿을지 알 수 없지만 찾아오는 동안은 먹이를 챙겨주며 곰살궂게 이름도 불러주려 한다.
어쩌다 길냥이가 됐는지 모르나 여전히 깔끔 맞고 앙증스런 첫 번째 등장배우인 누렁이는 색깔이며 성정이며 '잔디'란 이름이 잘 어울린다.
집 나와 보금자리 잃고 배곯으며 오늘도 이 골목 저 거리를 바람처럼 떠도는 턱시도는 걸림 없이 자유로운 '바람'이 제격이다.
어젯밤엔 얘들이 먹다 남긴 밥그릇 주변에 낯선 회색고양이가 어슬렁거렸다.
야박하게 후칠 순 없고 남은 음식 설거지를 하도록 못 본 척 놔뒀다.
먹이를 밖에다 놓아주게 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녀석은 목이 말랐던지 물그릇에 오래 입을 댄 채 할짝거리고 있었다.
그리곤 다른 녀석들과 달리 당당하게 정문 틈 사이로 나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냥이 밥냄새 풍겨서 온 동네 길냥이 다 끌어들일 판이니 이를 우야믄 좋노?
또 고민되고 갈등 생긴다.
잔디에게 알아듣게 일러야겠다.
이러다 살림 거덜 낼라, 친구는 바람 하나만 들이고 네가 알아서 적당히 교통정리를 해주렴.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