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연속극이라는 TV 드라마는 과히 즐기는 편이 아니다.
뉴저지 살 적에 같은 몰에 한국 비디오 가게가 있어서
당시 인기 있던 드라마 전편을 쥔장이 한 보따리씩 안겨줬다.
아니, 교민들 죄다 한국 드라마 보는 낙으로 사는데 일하는 재미로 살아? 하던 그녀.
그 바람에 16부작 드라마 '피아노'며 '봄날' 그리고 대발이 아버지를 밤 꼴딱 새워가며 한꺼번에 다 봐치웠다.
이튿날 일터에서 해롱해롱 병든 닭처럼 눈도 제대로 못 뜨는 경험을 몇 차례 한 다음부터는 비디오 가져가라고 눈짓하면 손사래부터 쳤지만.
TV에 컴퓨터를 연결시켜 준 손자 덕에 흑백의 고전영화부터 무법자 시리즈까지 두루, 아니 마구 폭식을 했다.
장르 구분만은 까다로워 성향에 맞는 영화를 고르긴 하나 한때 무던히도 영화에 탐닉했었다.
은퇴 후 랭커스터에 살 땐 하루 서너 편은 예사였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코로나 시국에 갇혔어도 밖으로 나돌아 다니기 바빠 영화와 멀어졌다.
서귀포에 와서는 더더욱, 동서남북 어디나 구경거리 놀거리 천지에다 일거리까지 있으니 예가 곧 천국이구나 싶었다.
호모 루덴스의 하루는 말 그대로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다.
날마다 좋은 날에 초를 치는 우(愚)야 범할 까닭이 없잖은가.
국민을 바보천치로 아는지 조작 냄새 폴폴 나는 졸렬한 선동 문구,
사고 터지면 으레 사후약방문 같은 하나 마나 한 말 대잔치,
일단 질러나 보는 폭로성 찌라시나 짜가 기사가 난무하는 공영방송의 뉴스 따위는 외면한 지 오래다.
쓰잘데기 없이 정치권 얘기로 스트레스받기 싫어서다.
대신 유튜브를 선별해서 세상 돌아가는 양태만은 대충 짚어본다.
그간 오디오북을 골라 듣고 역사물에 몰입하기도 했으며 건강강좌도 찾아보고 불후의 명곡 듣다가 포레스텔라에 완전 빠져들었다.
부산 청년 강형호가 부른 오페라의 유령에 반해 그가 속한 그룹의 노래라면 몽땅 섭렵했다.
그들이 꾸민 무대를 보며 역시 다이내믹 코리아 맞다고 누차 고개 끄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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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팬데믹으로 잔뜩 위축되고 침체되었던 시민들 어깨 들썩들썩, 흥겹게 만든 미스터 트롯의 힘이라니.
수많은 사람들을 그들은 단번에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방송을 보기 전까지는 선입견대로 청승스런 트로트가 전성기를 맞는다는 게 왠지 께름칙했다.
나라 잃은 유랑민의 비애가 절절히 담긴 서글픈 곡조가 다시 부활한다는 자체조차 언짢았다.
해방 전 상황 닮은 비참한 시대가 도래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기저에 깔려있었다.
간밤에 본 방송 내용을 들뜬 채 전해주는, 트로트 무대에 빠진 언니가 어이없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한 전직 무색하게 노년의 품격마저 실종된 것 같았다.
그만큼 트로트는 애절하고 애상적인 대중가요로 왜색 짙은 뽕짝이라 비하되며 외면당했었다.
예능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미스터 트롯 내용이 슬그머니 궁금해졌다.
다수가 박수를 쳤다면 그럴만한 까닭이 있을 터, 과연 명성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질질 짜거나 간드러진 노래 트로트가 외려 구성진 맛에다 그리 신나고 경쾌한 노래라는 걸 첨 알았다.
미스터 트롯 무대는 트로트가 노년층 전유물이란 고정관념의 틀을 깼다
나이 지긋한 사회자에 머리 희끗한 흘러간 가수가 나와 부르는 트로트 전용 프로그램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끼 넘치는 청년들의 발랄 상쾌한 트로트 무대는 트로트=청승이란 공식을 일거에 불식시켰다.
자유분방하게 자기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청춘들의 트로트 무대야말로 한바탕의 흥겨운 놀이마당이었다.
얼마 전 친구가 싱어게인 무대를 보내줬는데 단번에 확 끌어당기는 묘한 힘이 있었다.
방송국 성향 자체가 싫어 접근조차 안 했지만 그 후 싱어게인 무대만은 유튜브에서 꼭 챙겨 봤다.
남자 꽁지머리도 혐오하는데 장발의 곱슬머리야 더 희한한 데다 턱수염까지.... 헤비메탈에 대한 고약한 내 선입관이라니.
헌데 전혀 급이 다른 락, 대단한 가창력을 통한 소리 울림통에서 스피릿이란 게 느껴졌으니 대반전이다.
누가 들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문외한이라도 고개 끄덕이게 만드는 흡인력 있는 목소리의 두 젊은이는 예상대로 일, 이등을 차지했다.
그들은 무대를 즐겼다. 자유자재 종횡무진 갖고 놀았다. 걸림 없는 무애의 경지란 걸 그 청년들이 보여줬다.
공산권 서커스단원이나 그럴까 예인은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타고난다.
어릴 적부터 타고난 끼를 마음껏 발산시킬 수 있게, 무작정 길 가로막지 않은 부모덕에 노래신동들은 기량을 갈고닦아 나간다.
그 청년들이 소년기에 부모와 함께 했던 방송을 되돌려보니 끼와 피는 대물림되는 거구나, 그럼 그렇지! 무릎이 쳐졌다.
오로지 공부의 길로만 닦달하지 않고 각자 타고난 재능과 특기를 살려나갈 수 있도록 사회 인식도 많이 변했다.
상전벽해, 사농공상 계층 의식이 뒤바뀌었듯 예능을 천시하던 전과 달리 여러모로 그만큼 세상이 바뀌었던 것.
집구석 망할 징조라던 논다리, 딴따라라 불리던 연예인의 이미지 상승이나 머리 나쁘면 운동이나 시키라 했던 과거와 달리 운동선수가 움직이는 기업이 된 작금.
만화가를 허술히 보던 전과는 천양지판으로 애니메이션 작가는 상위 인기 직업군에 속한다.
과거 최불암 씨 광고물에서 '이제 붉은색 옷이 좋아졌어요'란 멘트가 나오는데 그 말이 체감되기에 이른 나이.
그렇듯 트로트도 괘안아져 진또배기 맛깔스레 불러 젖히는 손주 또래 찬원이가 귀여워지기도 했다.
동서양 넘나드는 음악이라 탱고와 재즈에다 록 밴드인 그룹 퀸의 프레디에게도 한동안 중독되다시피 지냈다.
한편 좋아하는 가곡 '산노을'은 소프라노와 테너 여러 성악가의 노래를 돌려가며 들었다.
음악판 순례하던 중 안드레아 보첼리와 그의 아들 마테오 보첼리의 듀엣곡 'Fall on Me'를 듣게 되었다.
무상한 세월, 안드레아도 이제 노티가 완연했다.
아들을 보나 따나 당연한 일이겠지만.
흔히 기성세대로 분류되는 현재 6-80대가 젊었을 당시는 사실 포크가 대세였다.
이제는 같이 은발이 된 늙수레한 송창식 노래를 즐겨 들었던 세대다.
솔직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트로트는 촌스럽고 청승맞다는 딱지가 붙어 어쩐지 격을 떨어뜨리는 노래 같아 별로였다.
그러나 들어보니, 아니 빠져보니 나 또한 한국인이라는 동류의 붉은 피톨이 뭉클하게 꿈틀댔다.
트로트는 세대불문하고 한국인 정서 어딘가와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장르라 한 어느 대중문화평론가의 말이 옳았다.
그간 국제관계 국내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이 질척대는 진창길 같았다.
어디 하나 기운 돋우고 기분 살리는 밝은 뉴스거리란 걸 찾을 수 없었다.
하다못해 조작된 미담이 잠시 잠깐 희망을 주기도 했을 정도니 말해 무엇할까.
차라리 시선 돌려 침묵으로 일관하며 음풍영월로 지새웠다.
그러던 차 암울한 국내외 국면을 환호로 바꾼 쾌거, 아카데미상 시상식장에서 날아온 낭보가 있었다.
감독 생각에도 한마디로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 같은 거였다,
영화 기생충을 아직 관람치 않았으나 여러 리뷰를 통해 대강의 내용은 파악이 됐고 심히 좌편향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폐해를 파헤친 작품, 그런 사회가 낳은 기생충이란 영화.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하여 천민자본주의를 성토하나 내심 하나라도 더 갖고자 박 터지게 경쟁을 하고 견제를 하며 거짓말로라도 할 수만 있다면 정상에 서려 죽자 사자 머리통 굴려가며 고심들을 한다.
세상을 바로 일으켜 세우고 바로 살자는 주의 주장, 공명정대한 사회를 만들자는데 누군들 동의치 않으랴.
말이 좋아 공평이지 그렇다면 만민이 다 행복할 수 있는 어떤 대안이라도 있나?
그러나 사회주의 좌파들은 더더욱 돈맛에 환장한 족속들인지 정권만 잡았다 하면 금잔에다 빨대를 꽂는다.
게릴라 활동하다 체포될 당시 체 게바라조차 팔뚝에 롤렉스를 몇 개나 차고 있었다니 하긴 취향 운운하더라도 모순이다.
유사 이래 모두가 꿈꿔오긴 했으나 유토피아 같은 세상은 정작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무수한 사상가들이 일찍부터 그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방향을 제시했으나 갈수록 더하면 더했지 나아진 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욕망이란 브레이크를 멈추게 할 방법이 없었던 것.
그 소용돌이 가운데서 헤어날 수 없더라도 시도는 멈추지 말아야 함을 알기에 그리도 칙칙하고 어두운 영화가 나왔을 터.
치밀히 계산된 각본과 연출은 자신만의 철학이 확고한 틀 위에서 나온다.
감독의 예술적 혜안은 외할아버지의 내림이라 여겨지며 노력만으론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성취, 곧 끼와 피는 타고나는 것.
거기에 깊이 있는 철학적 사고가 수반되어 가능했으리라.
그래서 아무나 프로가 될 수는 없다.
프로는 태어날 때부터 본바탕 자체에 아로새겨진 무늬가 있음 직하다.
즉 혼과 정신이 피로 맞물려 이어진 지점에서 피어나는 강렬한 불꽃이다.
동시에 끼에 맞춰 다듬어진 존재의 발현이다.
프로는 태생부터 다르다는 걸 미스터 트롯 무대에서, 아카데미상에서, 싱어게인 가수들에게서, 재삼 확인했다,
하여 주어진 한 세상 헛욕심 품지 말고 생긴 대로 주어진 대로 끄적거리며 깜냥껏 놀다 가야겠구나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