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May 07. 2024

페이지에서의 이틀

페이지에서 하루만 쉬려던 계획은 숙소 수영장 매끄런 수질에 반해 변경됐다.

사막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최상급 수질이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스테이트는 물론이고 애리조나주 역시 황막하기 짝이 없는 사막지대.

따라서 물은 타주의 머나먼 강에서 끌어다 쓴다.

후버댐이나 글렌캐년댐이 사막도시의 상수원이다.

가든스테이트 뉴저지의 좋은 물을 상용하다가 로스앤젤레스에 오니
석회질 수돗물이 왠지 불편스럽던 차였다.

마음 같아선 당장 페이지로 이사하고 싶을 정도였다.

상황 봐서 은퇴 이후 이쪽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만큼 수질이 기차게 좋았다.

첫날은 엔터롭밸리의 온통 붉은 색조에 지질린 시선을 파웰호수 푸른 물로 달래줬다.

애리조나주에서의 둘째 날 Horseshoe bend로 향했다,


해 뜨겁기 전 서둘러 준비하고 홀슈즈 밴드로 직진했다.

위치상으로는 엔털롭캐년와 그랜드캐년 사이에 있다.

차에서 내려 훅훅 몰아치는 열사의 모래바람 사정없이 맞으며 벌판을 걸어 나갔다.

길도 제대로 나있지 않고 따로이 편의시설이나 마트도 없다는 말을 들었기에
저마다 챙 너른 모자에 생수 한통 끼고서.

적황색 모래빛깔만큼이나 뜨거이 내려쬐는 태양 아래 마치 고행을 자처한 순례자처럼.

완만하나 황량한 언덕을 넘어서 훠이훠이 이십여분 걸어내려가 당도한 그곳.

대자연이 만들어낸 말굽모양 협곡으로
한국 하회마을의 물이 도는 구조와 유사하나 인근은 온통 수직 암벽이다.

기다시피 바위 쪽으로 다가가 사진을 찍는데
긴장감이 고조되며 손바닥에 땀이 나고 발끝이 짜릿짜릿하다.

애리조나주의 페이지를 찾은 두 가지 이유 중 비중이 높았던 앤털롭캐년보다 더 강렬한 인상으로 각인된 곳이 바로 Horseshoe bend다.



말발굽 모형의 거대한 붉은 바위를 휘어 돌며 장관을 이룬 콜로라도강이 저 아래,

직각의 절벽 높이가 300m라니 강심장이라도 오금이 저릴 만도 하다.

저 아래 펼쳐진 절경을 보려면 살살 기듯이 절벽 가까이 다가가야 다.

글렌캐년 댐에서 협곡을 따라 내려온 청녹의 강줄기는 기나긴 비단 스카프를 풀어놓은 거 같다,

대관절 어떤 형용사로 근접표현이 가능할지.

언어의 부질없음이여.

무슨 말이 필요할까.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각자 가슴으로 느껴볼 밖에는...

경탄스러운 대자연의 신비에 삼가 찬사를 보내며

차라리 숙연해지던 그 순간.

나 또한

자연의 일부로 거기 그냥 붙박이고 싶었을 뿐!

너무나 다리 후들거려 진정하려고 한참을 사막 도마뱀처럼 바위에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하필이면 그 대단한 그랜드캐년 바로 턱밑 낮은 자리에서 짝퉁이듯 주눅 든 채 아스라이 펼쳐진 글렌캐년.

파웰호수를 끌어안고서야 겨우 위용을 되찾은 글렌캐년 댐에 서니 바람의 횡포가 자심하다.

몸을 지탱하기조차 어렵게 날려갈 듯 휘몰아제끼는 초강력 바람에 모자들이 휙휙~날아간다.

아득한 낭떠러지 저 아래 콜로라도 물길로 내 모자도 사라진다.

페이지에서 머문 이틀 내내 정신없이 몰아치는 강바람에 후드끼다가 사막의 붉은 모래바람을 뒤로하고 애리조나를 떠난다.

살푼 건너뛰면 밀밭 푸르게 이어지는 유타주다.

내시경 필름?

사진은 아무나 하나.

앤털롭캐년에서 절감하였다.

워낙이 피사체가 환상적이라 어디라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다 작품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쉴새없이 눌렀던 똑딱이건만 아무리 고르고 골라봐도 여태껏 눈에 익은 그곳 풍경은 아니 보이고 웬 내시경?

빛의 조화가 빚어낸 색채의 신비는커녕

입체감마저 실종된 평면적인 사진뿐.

자못 실망 낙담... 까지는 아니지만 아무리 고쳐봐도 참 멋대가리 없어라.

말잔등에 올라탄 듯 덜컹거리는 차에 실려가기 한 십여분.

그리고 벨리에서 보낸 시간은 왕복 30분 남짓.

붉은 모래먼지와 북적대는 인파에 밀리던 그곳.

해서 소박한 인디언마을 페이지는 최고의 수질로만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사막답지 않게 부드럽고 매끄러운 연수, 물로는 최상의 수질이 아닌가 싶다. 2016

앤털롭 캐년/픽사베이 사진



작가의 이전글 비 몰고 다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