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꼴레리

by 무량화


서늘하게 바람 부는 오후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을 다시 보았다. 오래전 영화로, 지나 롤로브리지다의 관능적인 연기가 특히 눈길을 끄는 영화다. 다윗왕은 슬하에 용맹스럽고 지략 뛰어난 군인인 아도니아와 그의 동생인 시인 솔로몬을 두었다. 이처럼 대비되는 두 아들 중 야심이 큰 맏이인 아도니아 대신에 솔로몬을 왕으로 책봉하고 다윗은 눈을 감는다. 그로부터 골육상쟁의 씨앗이 움터 결국 형과 아우가 맞붙어 싸우게 된다.



적군인 이집트를 등에 업고 동생 이스라엘 군과 대적하는 형 아도니아. 숫적으로 매우 불리한 군대였으나 방패의 반사광을 이용하여 적을 무찌르는 솔로몬의 지혜가 볼만하다. 절벽으로 추락하는 수많은 말과 군사들이야말로 가히 압권을 이루는 장면이다. 컴퓨터를 통한 여러 특수 기법이 동원되는 현대라면 놀랍지 않겠으나 1959년이라는 시대상을 감안한다면 연출력이 대단하다.



당시 이스라엘을 적대시하던 이집트는 시바의 여왕에게 미인계로 솔로몬을 약화시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한다.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을 유혹하여 부족들에게서 신임을 잃게 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방문한다. 하지만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와 용기에 감탄하여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여왕의 미모에 혹한 솔로몬 역시 국정에 소홀하게 되고 백성들의 원성과 지파들 간의 이간책으로 궁지에 몰리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시바의 여왕은 이스라엘의 신전에 엎드려 사죄하고 용서를 빌며 본국으로 떠난다.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은 영원한 사랑을 간직하고 서로의 길로 나가게 되는데.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에 관해서는 성경의 구약 열왕기 상 10장과 역대 하 9장에 그 내용이 담겨 있다. 성경에는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사랑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녀가 솔로몬의 지혜와 용기에 감동해 그들의 신을 찬양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만 적혀있다. 과연 이 러브 스토리는 전설일까? 역사적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시바는 도대체 어느 나라였고, 시바여왕은 누구였을까?



학자들은 성경에 나온 시바(히브리어로는 스바 Shbwa)는 사바 Saba왕국을 뜻한다고 본다. 사바왕국은 아라비아반도 남쪽 끝, 지금의 예멘 부근에 있던 나라로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쯤에 '사바'라는 나라가 세워져 약 천년 간 번성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사바왕국'하면 빼놓을 수 없는 특산품의 하나가 바로 향료다. 시바여왕이 솔로몬에게 준 선물에는 유향과 금옥이 있는데 이는 고대사회의 부와 권위의 상징인 귀한 물자들로 동방박사가 아기예수에게 바친 선물이기도 하다.



현재의 에티오피아 국기 중앙에 그려진 오각형의 별은 일명 '솔로몬의 별'이다. 지금까지도 자신들이 솔로몬의 후예임을 자랑스러이 여기며 이런 도안을 쓰고있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시바의 여왕이었다고 믿는 것처럼 시바의 여왕은 본디 에티오피아의 여왕이었다. 그에 관한 매우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마치 이 나라의 건국설화처럼 전해지고 있다. 여왕이 솔로몬과 사랑에 빠져 그의 아이를 낳았는데 이름은 메넬리크(Menelik)로 '현자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메넬리크는 에티오피아의 악숨(Aksum)에 수도를 정하고 왕조를 여니, 이것이 바로 '악숨제국'으로 한시절 고대세계를 호령하는 왕국으로 자리잡는다.



60년대 말, 경춘선을 타고 금곡역에서 내려 사릉 숲에 갔다. 송화가루 날리는 봄이었다. 대학 일년생 때 거개가 미팅이라는 걸 한다. 우린 그때 그렇게 만났다. 제비뽑기로 파트너는 정해졌다. 접혀진 종이를 펴니 이쁜 컷 그림 곁에 시바의 여왕이란 글씨가 보였다. 솔로몬을 집은 남학생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내 옆에 다가섰다. 슈만과 글라라, 삼손과 데릴라, 로미오와 줄리엣 식으로 일요일 하루 미팅 짝이 정해졌다. 솔로몬 비슷도 하지 않은 사람과 전혀 시바여왕 근처에도 안 간 사람의 어설픈 만남. 몇번 끊겨질듯한 고비를 넘기면서도 용케 인연의 끈이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뜬금없이 그때 생각이 난 것은 영화 때문이다. 오래전 주말의 명화 시간에도 보았지만 다시 접하니 감회 새삼스러운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이다. 소설이나 영화나 젊었을 때 본 감상과는 느낌의 결이 영 다르다. 나이 훨씬 들어 다시 보면 작품 이해나 해석은 물론 느껴지는 감흥이 여러모로 차이난다. 한번씩 손주넘이 짓궂게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어떻게 만났느냐고 묻곤 한다. 중매결혼이냐, 연애결혼이냐가 아니라 다짜고짜 들이밀듯 어찌 결혼하게됐냐고 묻는다. 그럴적마다 싱거운 녀석같으니라구....하며 웃음으로 고마 얼버무리고 말았던 비밀이다. 녀석은 물을때마다 전자동으로 얼레리꼴레리~후렴구가 따라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