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풍탑이 지키는 수로왕비 릉

by 무량화


오래전 기억으론 산자락 제법 올라야 만날 수 있었던 수로왕비 능이다.

노송 둘러섰고 띠풀 시원치 않아 황토흙 날리던 그 수로왕비 능 인근도 유택과 진풍탑 빼고는 다 변했다

홍살문 바로 앞이 주차장으로 지금은 평지에서 몇 발짝만 걸어 들어가면 바로 경내가 된다.

왕비 능은 경사도 완만한 산기슭에 앉아있다.

옆에서 보면 비탈의 기울기가 확연히 드러난다.

전에도 그러했지만 왕비 능에서 유독 눈길 끄는 파사석탑은 능 오른쪽 아래에 정좌해 있다.

가야 역사 관련 영상을 만드는지 파사각 앞에는 앵커가 서있고 촬영팀 여럿 둘러섰다.

그들을 피해 먼저 능부터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석탑을 요모조모 사진에 담았다.

내용이 중복되기에 이십여 년 전에 쓴 파사석탑 얘기를 아래 옮기는 걸로 마무린다.



오백 년에 이르던 가야 왕조의 치세 역사는 간데없어지고 단지 몇 문장 기록으로 남아있다. 일연 스님은 '옛날 이 고을이 금관국일 때 시조 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이 동한(東漢) 건무(建武) 24년 파사석탑을 배에 싣고 왔다'라고 간략히 썼을 뿐이다. 파사석탑의 돌에서는 붉은색이 돌고 석질이 무르며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 돌이라는 것은 이미 과학적 분석 결과로 알려져 있다.



파사석탑을 안치시킨 파사각(婆娑閣)이 한층 더 가락국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 끌로 다듬어 귀 맞춘 탑의 전형은 가늠마저 어려울 만치 마모가 극심한 파사석탑. 그저 둥글넓적한 돌덩이 몇을 층층이 올려놓은 형상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석질이 아니라는 연질(軟質)의 돌 표면에 나있는 엷은 자주 색조 무늬가 독특하다. 엽락석 성분의 사암은 동남아시아에서만 산출되는 암석이라고 한다.



여태껏 파사석탑으로만 알아왔던 이 탑이 일명 진풍탑(鎭風塔)으로도 불린다는 사실은 안내문을 읽다 얻은 수확이다. 바람을 진압시키는 탑, 풍파를 제압할 수 있는 특별한 탑이란 얘기다. 공주를 태운 배가 아유타국 뒤로하고 얼마쯤 항진하다 성난 파도 만나 되돌아오자 부왕이 해신을 다스려줄 영험한 돌탑을 배에 실어주니 그 탑이 곧 진풍탑. 항해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대양 한가운데에서는 집채만 한 파도가 덮치거나 돌풍에 휘말려 해난사고가 일어나는데 하물며 그 옛날임에랴. 거친 풍랑 속에서 평형석 역할을 해준 탑의 수호로 무사히 김해 앞바다 망산도에 닿아 하늘이 정한 대로 수로왕과 합혼 하여 가락국을 융성시킨 허황옥.



금관가야 시조인 수로왕의 비로 허황후라고도 칭해진 왕비는 아유타국의 공주였다. 아유타국에 대해서는 히말라야 산맥 아래 인도라고도 하고 중국 사천성에 있다고도 하고 메콩강 유역의 동남아 어느 부족국이라는 등 아직도 의견 분분하다. 공주는 수로왕과의 사이에 거등왕을 비롯해 아들 열명을 두었는데 두 명에게는 허 씨 성을 내린다. 허황옥은 김해김 씨는 물론 김해허 씨의 명실상부한 시조모이다. 왕비능에 잠든 허황후는 그럼에도 여전히 설화 속 허구냐, 실존인물이냐를 놓고 뭇 소설의 주인공이 된다. 단군에 대한 의식이 그러하듯 이 또한 못내 씁쓸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