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꽃이게?

2012

by 무량화


뉴저지 체리힐의 주말 어느 아침나절.

집 앞 드라이브 웨이를 물청소한 다음 뜰에서 민들레를 뽑고 있었다.

바로 옆엣집에 사는 닥터 빈이 하이~ 마리아! 아는 체하더니 얼른 내게 손짓을 한다.

우편함을 확인하러 나왔다가 뜰에 있는 나를 보고는 기회를 놓칠세라 자기네 집 화단으로 오라는 신호를 보내고는 슬슬 걸음을 옮긴다.



여러 날째 꽃대궁 쑥 올려 줄줄이 피어난 분홍보라색 꽃 앞에 멈춰 서서는 팔짱을 낀 채 빈센트 씨는 자랑스런 미소를 짓는다.

둘러친 담장은 없어도 잔디밭 중간쯤으로 구역이 나뉘어 서로 경계선 삼은 우리 집과 이웃인 빈센트 씨.

부부가 다 의사인 데다 부인은 타주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터라 거의 집이 비어있기 일쑤다.



그래도 남의 집에 넝큼 들어가기 저어 되어 며칠째 피어있는 그 꽃을 멀찌감치서 건너다보며 여태껏은 흔한 글라디올러스려니 했던 꽃이다.

근데 바짝 다가가 들여다보니 난생처음 접해보는 생소한 꽃이다.

오동꽃 비슷한 게 대궁 따라 종 모양 꽃이 조롱조롱, 짙은 반점을 찍고는 촘촘 매달렸다.



빈센트 씨가 이 꽃 이름을 아느냐고 묻는다.

꽃 종류라면 어느 정도 꿰고 있는데 이 꽃만은 생면부지, 정확히 처음 본다.

도르르 굴러가는 영어로 뭐라 뭐라 해싸며 약재로 쓰인다는 말을 하는 순간 오오~ 디기달리스!



디기달리스! 맞지? 나름 자신 있게 들이민다.

내 영어 발음이야 밋밋하니 억양 없는 내리닫이 식 발음이지만 디기탈리스~맞단다.

그는 아주 뜻밖이라는 듯 너 닥터였냐? 약사였냐? 어찌 이 꽃을 아느냐고 신기해한다.

이웃에 살며 평소 내가 꽃 가꾸기에 관심 많은 동양인이라고 여기긴 했겠지만 디기탈리스를 알아본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는 표정이다.



나 역시도 그 쉽지 않은 이름이 어찌 그리도 쉽게 툭 튀어나왔는지 놀라웠을 정도.

사진으로는 봤음직 하나 실제로는 여간해서 만나보기 힘든 꽃, 물론 한국에서고 미국에서고 직접 보기는 첨이니까.

심장초라는 속명도 있는 식물이니 심장병에 약효가 있는 꽃나무라는 설명이 또 한참 조근조근 이어진다.

몇 년 전 한 간호사가 디기탈리스 성분이 든 주사약을 말기 암 환자들에게 투여해 살해한 바도 있듯 독성이 매우 강하다고도 했다.



중세 때는 종교재판으로 이단자를 화형도 시켰지만 더 쉽게는 이 식물을 사용할 정도로 강력한 독성물질이 들어있다는 얘길 하면서도 어조 차분하다.

잎사귀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가 치명적 사고가 생기기도 한다며 만지면 절대 절대 안 된다고 장난스레 겁도 준다.

딸내미가 LA서 본초학 강의를 한다고 하자 어쩐지! 그럼 그렇지~ 눈빛이 달라지길래 얘기 길어봤자 대화 상대 어림없으므로 꽃 사진 핑계를 댔다.

얼른 카메라 챙겨갖고 올게...... 2012




그로부터 예닐곱 해가 지난 후, 스페인에 가서 카미노 걸으며 들판에 무리 져 핀 디기탈리스를 흔하게 만나 보았다.

원산지가 서유럽이라니 그럴 법했다.

요즘은 한국 가정집 뜰에서도 더러 보인다.

중학생 때 기적의 풀이라는 컴프리꽃을 처음 보고 근자 한국에 돌아와 아주 오랜만에 다시 그 꽃을 보자 처음엔 담배꽃인가 했는데 오, 맞아! 컴프리꽃이야! 기억 떠오르던 그 이름처럼.

다른 일, 이를테면 이재에도 감각 이리 초롱하다면 재벌 됐으련.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