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도 중순이 지났으나 한낮 뙤약볕은 따가웠다.
지인 댁 농장에서 고춧대 정리를 돕고 오는 길.
너무 더워 폭포맞이를 하러 가기로 했다.
도중에 이마트 들러 비옷을 샀다.
아마도 올해 마지막 물놀이가 될 터였다.
처음 가보는 샛길은 아열대 밀림 속 터널같이 무성히 숲 우거져, 덩굴식물인 사위질빵꽃과 칡꽃 얼크러 설크러 향그러웠다.
새 신부의 사틴 면사포처럼 아른거리는 새하얀 꽃 사위질빵꽃.
옛적 어느 집 장모님의 사위사랑이 스며든 여리여리 여린 꽃 사위질빵꽃이다.
가을걷이 도와주러 온 사위가 무거운 짐을 지지 않게 하려고 연약한 이 식물의 덩굴로 지게의 질빵을 엮어 주었다는 전설이 깃든 대로다.
요즘 숲길을 걷다 보면 달큰하게 번지는 향이 후각을 매료시키는데 그 향의 진원지가 바로 칡꽃이다.
향기가 진하고 멀리 가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아주 싱그럽고 달콤하게 번지는 내음이 칡꽃향이다.
누군가는 신비로운 와인향처럼 좋은 향이 칡꽃 내음이라 평하기도 했다지.
칡꽃향을 머금은 와인이 문득 마시고 싶어 지네.
술 땡기는 시간도 아닌데.
소정방폭포에 닿으니 외국인 커플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몰아치는 해풍은 무척 상쾌했다.
만조인 듯 몽돌해안 깊숙이 밀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파도.
서귀포 앞바다 빛깔은 눈부시게 푸르렀다.
수평선 저 멀리 대형 화물선이 지나가고 있었다.
밤새 뇌성 요란스레 폭우를 쏟아붓더니만 이 날따라 폭포수 물줄기가 유독 푸짐했다.
다른 때처럼 바위에 올라 물맞이를 하기엔 버거운 수량이었다.
우리는 폭포 우러러 삼가 오체투지하듯 바위에 엎드려
상반신을 난타하는 폭포세례를 거듭 받았다.
새로이 태어나라.
새로이 태어나라! 지엄한 명령이 들렸다.
하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위험한 놀이는 그만 멈춰.
그만 멈추란 말이야!
끝간데 모르게 창창한 저 하늘처럼 티 없이 살려면 가벼이 감정에 휘둘려선 곤란해.
두둥실 흘러가는 저 구름처럼 매인 데 없이 자유롭게 살려면 인연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해.
소정방폭포 발치에 어룽지는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순간순간 찬란하게 살다 가려면 더더욱 투명해져야 해.
수묵은 번진다
너와 나를 이으며,
누군들 수묵의 생을 살고 싶지 않을까만
번짐에는 망설임이 있다
주저함이 있다
네가 곧 내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니
경계를 넘어가면서도 수묵은
숫저운 성격, 물과 몸을 섞던
첫 마음 그대로 저를 풀어헤치긴 하였으나
이대로 굳어질 순 없지
설렘을 잃어버릴 순 없지
손택수의 시, 수묵의 사랑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