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을 사러 중문에 있는 농협마트에 가는 도중이었다.
중문보건소 맞은편 서귀포국민체육센터이자 도서관 건물 초입에서다.
차를 타고 스쳐 지나는데 돌담 아래가 진다홍으로 물들어 있는 게 홀깃 보였다.
아, 꽃무릇이구나.
돌아가는 길에 꼭 둘러보고 가야지.
한산한 마트 안, 아직 추석 대목장 분위기는 아니었다.
얼른 과일만 사들고 아까 꽃 빛깔에 홀린 장소로 걸어갔다.
요사스러운 불꽃 붉게 번지는 틀림없는 꽃무릇이었다.
꽃과 잎이 서로 다른 시기에 피어나기에, 만날 수 없는 연인에 빗대어지는 꽃무릇은 석산화로도 불린다.
전에는 고창 선운사를 가거나 영광 불갑사를 찾아야 만나던 꽃, 석산화.
이제는 공원과 도로변에 무리 져 핀 석산화를 전국 어디서나 볼 수가 있다.
불꽃 이글거리듯 특이한 화형과 요염을 넘어 요기 띤 꽃 색깔로, 굄을 받는 조경용 화훼 되어 널리 식재하는 까닭이다.
꽃무릇, 석산화를 더러들 상사화라고도 부르는데 둘 다 사찰에 흔하고 기다란 꽃대궁을 가진 외엔 외양부터가 전혀 다르다.
아무리 군락 이뤄 펴있어도 상사화는 촌 아낙처럼 소박하고 수수한데 비해 석산 꽃은 화려하다 못해 고혹적이기조차 하다.
석산은 왠지 천경자의 똬리 튼 초록뱀 그림 옆에 배치하면 알맞을듯한 꽃.
상사화는 사임당의 '초충도' 구석에 끼어있어도 무방할듯싶다.
무엇보다 상사화는 잎이 진 다음에 꽃대 올라오나, 반대로 석산은 꽃 지고 나서야 잎이 올라온다.
상사화나 석산 꽃이나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둘의 공통분모는 찾을 수 있겠다.
꽃무릇이 피었으니 머잖아 설악에서부터 단풍소식도 들려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