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각과 부각

2015

by 무량화

캘리포니아에 이사를 오니 날씨 한번 끝내주데요.

지중해로 여행이라도 온 듯 청남빛 하늘에 늘 화창한 태양이 눈부시고요.

매우 건조한 사막기후라 바람 맑은 날은 무엇이든 밖에 내놓으면 금세 잘 마르더라고요.

굳이 건조기 가동할 필요 없이 빨래도 잠깐만에 마르고 이불을 세탁해도 하루 만에 덮을 수 있더군요

비가 잦은 뉴저지에서는 자칫 퀴퀴한 냄새가 나기 쉬운 타월도 뽀송뽀송 잘 말라 햇살 냄새를 풍기고요.

뒤란으로 난 담장에다 이부자리를 걸쳐두고 거풍 겸 햇빛을 쐬어주면 폭신한 잠자리를 만들어 주지요.



처음 이사 와서는 하도 볕이 좋아 버섯, 무청, 비트, 생강, 당근, 대파, 사과까지 별 걸 다 말렸답니다.

남는 과일이나 채소를 냉장고에 넣어두느니 얇게 썰거나 보기 좋게 채쳐서 말이지요.

라면에 동봉된 수프 하나엔 건고추, 파, 당근, 버섯 조각이 보이잖아요, 그 식으로요.

덕분에 시장 볼 겨를 없이 갑작스레 생강이나 당근이 필요할 경우 아주 요긴히 꺼내 쓸 수 있었네요.

한국에서 볕 좋은 가을날 무말랭이, 고구마 줄기, 호박고지, 고춧잎, 토란대, 산채를 햇살에 널어 말리던 생각이 나더군요.

갈무려 두었다 알뜰살뜰 밑반찬으로 활용하려 한다기보다 그저 살림 '재미'를 즐겨보고 싶었던 거지요.

이 기막히게 좋은 날씨를 그냥 보내기 아까우니 무언가 적절한 일을 벌이고 싶더라고요.

순간 전깃불 반짝 켜지듯 불현듯 떠오른 것이 있었어요.

냉동실에서 해를 넘길 판인 김을 이용해 부각을 만들어보기로 한 거지요.


한국을 다녀온 친지들의 선물, 한국에서 오는 친척들이 사 온 김이 냉동실에 그럭저럭 여러 톳.

생김으로 구워 먹고 김밥을 말고 그렇게 하다 하다 김 무침으로 왕창 소비를 시켜도 냉동실에 아직 많거든요.

이왕 펼친 판인데 김 한 종류만 만들기가 심심해 다시마도 꺼내놓고 들깻잎도 씻어놓았고요.

거기다 한 가지 더 생각난 것이 쑥, 이른 봄에 쑥국 한번 끓여 먹고 놔둔 뒤란의 쑥도 뜯어왔어요.

재료는 바다 향기 품은 해조류인 김과 다시마, 대지의 봄기운이 스민 쑥과 깻잎이라 구색도 그럴 듯 잘 맞네요.

내친김에 부각도 만들고 튀각도 만들 참이에요.

부각은 다시마나 깻잎 등에 찹쌀 풀을 발라 말려두었다가 기름에 튀긴 것인데요.

채소나 해조류 등의 식품을 손질하여 찹쌀 풀을 고루 묻힌 후 말려서 기름에 튀긴 음식이지요.

한국 전통의 튀김류 저장음식인 부각은 예전엔 궁중에서나 먹던 귀한 음식이었대요.

이후 고기를 먹지 않는 절에서 식물성 지방으로 열량을 보충하기 위해 즐겨 만든 사찰음식의 대표적인 조리법이랍니다.

마침 절기상 추분이 가까워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며 가을 햇살 충만하여 한나절만 말리면 부각 거리가 짱짱하게 마르더군요.



튀각은 얇게 썬 감자나 미역귀 또는 뱅어포 등을 그대로 기름에 튀긴 것인데요.

즉 옷을 입혀 튀겼느냐, 튀김옷을 입히지 않고 튀겼느냐에 따라 부각과 튀각으로 나눠진답니다.

조선시대 요리서에 튀각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765년 영조 42년에 발간된 <증보산림경제> 이더군요.

1809년 순조 9년에 빙허각 이 씨가 아녀자를 위해 가정 살림에 관한 내용을 엮은 <규합총서>에는
파래와 김의 튀김 설명이 나온답니다.

부각이나 튀각은 요즘 들어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웰빙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원래의 밑반찬 용도 외에 술안주로도 일품이지만 어린이의 영양 간식으로 인기라네요.

이제 부각과 튀각을 종류별로 만들어 볼까요.



재료: 파래가 섞인 향긋한 돌김, 두툼한 건다시마, 뱅어포, 싱싱한 쑥과 깻잎입니다.

내식대로 레시피,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먼저 찹쌀풀을 너무 묽지도 되직하지도 않게 쑤어 식힘.(간이 될 정도로 천일염 살짝 첨가)

2, 냉동실의 김 중 두툼하고 향긋한 돌김과 다시마를 준비해 놓고 깻잎과 쑥은 깨끗이 씻어서 물기 뺌.

3, 김을 펼친 다음 위의 반쪽에만 수저로 찹쌀 풀을 고르게 바른 뒤 반으로 접어 위에 다시 찹쌀 풀을 바름.(김이 오그라들므로 빠르게 바름)

4, 그 위에 통깨를 보기 좋게 뿌려줌.

5, 채반에 올린 다음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통하는 곳에서 말리다가 꾸덕꾸덕한 상태로 마르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바싹 말림.

6, 튀김기름이 너무 뜨거우면 부각이 금세 타버리니 튀길 때는 160℃ 정도의 기름에 재빨리 튀겨냄. 뱅어포 튀각도 동시에 몇 조각.



7, 찹쌀풀이 익으면서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맛을 내는 부각도 완성됨.
시식해 보니 바삭거리는 식감, 향도 좋으며 맛으로도 성공!

튀각과 부각 안주삼을 요량으로 작년에 담근 개복숭아주 따른 뒤 하늘을 보니 눈썹 같은 초승달이 총총 별 거느리고 있네요.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