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읍마을은 완연한 초추 분위기

by 무량화


밤새 흩뿌리던 빗줄기가 오전 늦게 멈췄다.

언제 비가 왔나 싶게 하늘 푸르고 삽상하니 청량한 기운이 감도는 대기.

성읍민속마을에서 주말 이틀간 민속재현축제를 열고 있기에 일요일 느지막하게 성읍으로 향했다.

여태껏 과는 달리 어쩌다 보니 낯선 서문 앞에 서게 됐다.

양 가에서 마중해 주는 정의현 고유의 다소곳 투박한 돌하르방이 아프리카 아이처럼 순박해 보였다.

처음 와본 길, 생소하지만 주춤대지 않고 걸었다.

두터운 돌담을 두르고 장엄하게 솟아있는 서문을 통해 성내로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바로 앞 건물은 정의현 향교였다.

코 앞 바투게 서있는 향교는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여러 차례 성읍마을을 찾아 향교 앞에서 서성댔지만 늘 향교 정문은 잠긴 채였다.

담 너머로 기와지붕 이마나 치어다볼 뿐 문틈으로도 내부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 하루 단 한번 웬일로 향교 문이 열렸길래 안으로 들어가 봤다.

그렇지만 끝내 은거를 풀지 않는 마지막 최고존엄이 있었으니 바로 대성전.

대성전 대문만은 자물쇠로 견고하게 잠겨 있었다.



이번엔 대성전도 빗장을 열고 내밀한 품속을 아주 아주 허심탄회하게 내보였다.

유학의 상징 같은 여러 그루의 은행나무 고목이 지키는 뜨락.

푸른 향을 풀어내는 향나무가 꽃 져가는 배롱나무와 함께 풀밭에 시립하고 서서 묵언정진 중이었다.

공자의 위패와 유교의 성현들을 모시고 제사를 올리며 그들의 덕을 기리는 문묘 격인 대성전이다.

여러 해 전, 부산 동래향교에서 춘추대전이 열린다기에 지인을 통해 유림에 참관 청을 넣어봤다.

TV화면이 아니라 실제로 눈앞에서 거행되는 전 과정을 영혼 깊이 스며들게 하고 싶었으나 때가 아니었던 듯.

그렇게 정중히 퇴짜를 맞았다.

여성들은 원천적으로 열외라는 답이었다.

단지 조용히 구경만 하겠다는 것도 불가, 이는 치맛단 얼씬대서도 아니 된다는 뜻이다.

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20세기에도 그러하였으니.

초헌관(初獻官)들이 영신례, 전폐례, 초헌례, 공악, 아헌례, 종헌례, 음복례, 철변두, 송신례, 망료의 순서로 진행하는 의식이 매우 엄숙하고도 정중하다던데.

이에 더해 문묘 제례악이 연주되며 기악과 춤이 펼쳐져 종합예술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데.

장엄한 전례를 직접 보고 싶었지만 다가갈 수 없는 금녀의 공간인 향교.

전국 234개 향교(鄕校)에서 동시에 석전(釋奠)이 봉행된다면 그러나 제주땅에선 혹시 가능할 지도.

여자라도 적극적이라서 남자 못지않은 활동상을 보이는 제주이니 어쩌면 기회가 닿을지도 모르겠다.

명년 봄 석전대제 때 다시 시도해 보기로 한다.

공자의 위패와 유교의 성현들을 모시고 제사를 올리며 그들의 덕을 기리는 문묘 격인 대성전이다.

조선의 건국이념이자 학문과 사상체계를 관통한 유학이 아닌가.

여성들을 남존여비와 칠거지악이라는 강고한 틀 속에

가둔 유교사상은 이제 시대를 역행할 수 없어 퇴조를 보이고 있다.

삼강오륜 같은 위계적 질서와 가부장적 문화에서 파생된 경직된 사고란 현대 사회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공자가 죽어야 한국이 산다, 란 책 제목이 다 나왔을까.

우리 바로 앞 전 세대, 아니 내 경우만 해도 마친가지였고 엄마의 무조건적인 희생과 순종적 삶을 보며 얼마나 내출혈의 통고를 겪었던가

향교를 뒤로 한 채 초가 한옥 즐비한 아랫마을로 묵묵히 내려왔다.



해마다 봄이면 초가에 새로이 이엉 얹는 현장과 만나려

찾곤 한 성읍마을이다.

그즈음엔 샛노란 유채꽃이 만발해 있었다.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계절에 방문해 보긴 첨이다.

전과 달리 성읍마을이 묵직하니 철이 든 듯 새롭게 보였다.

이틀거리로 내린 폭우에 못 이겨 때 이른 낙엽 수북이 떨어져 쌓인 가로. 황톳길은 질퍽거렸다.

바람결에 묻어나는 선들한 가을 기운, 갸웃하니 내다보는 돌담가 풋감 정겨이 익어가고 있었다.

그보다 더 반가운 건 박덩이였다.

반세기를 훌쩍 넘기고도 이십여 년 세월 저편, 유년기 적 기억이 되살아 난다.

너무도 오래전 일이라 감동에 겨워 눈가 뜨거워질 정도로 감개무량하다.

한국으로 리턴한 다음 해 박꽃과 조우한 적은 있었지만 저리 허여멀건 잘 빠진 박덩이라니 어찌 감격지 않으랴.

외갓집 초가지붕에 둥실 떠오르는 보름달처럼 훤한 박들이 상기도 선연히 떠오른다.

여름내 무성히 줄기 벋어 밤마다 지붕 위에 흰 별꽃 피어나게 하던 박꽃의 청순한 모습이며 곧이어 둥글게 부풀어 오르던 박.

다리 다친 제비를 치료해 준 맘씨 좋은 흥부에게 씨를 물어다 주자 착한 흥부는 씨앗을 묻어준다.

박씨가 싹을 틔워 보화 가득한 열매를 맺게 해 마침내 인생 역전 드라마를 쓰게 한 그 박이다.

인과의 법칙을 가르치고 권선징악을 설한 흥부의 박씨는 아니라도 잘 영근 박 속을 긁어 추석이면 정갈한 차례나물 올렸다.

속을 파낸 박은 가마솥에 쪄서 잘 말렸다가 살림도구로

사용했다.

농가에서는 단단한 대형 박은 곡물 저장그릇으로 썼으며 중형은 우물이나 두멍 물을 푸는 바가지로 썼고 소형은 절간 약수터 쪽박이나 간장 쪽지로 유용히 쓰였다.

플라스틱이 세상에 나오기 전 얘기다.

감동 먹게 한 정경은 또 있었다.

길쭘한 수세미가 노란 꽃과 함께 내게 아는 체하며 손을 흔든다.

돌담을 타고 얼크러 설크러진 수세미 덩굴을 보자 그만 콧등이 찡해진다.

젊은 날의 엄마가 생각나서다.

엄마는 봄이면 화단을 손질해 꽃씨를 골고루 뿌렸다.

맨 앞엔 채송화, 그다음 줄엔 키대로 금송화 봉숭아꽃, 그 뒤로는 과꽃 백일홍 깨꽃, 접시꽃 코스모스 해바라기 꽃씨도 심었다.

맨 뒤 편엔 덩굴뿌리로 번식시키는 달리아 칸나 뿌리를 나눠 심었다

끝자리에는, 송판담장을 타고 오르라며 덩굴삭물인 나팔꽃 풍선초 여주 수세미 씨앗도 묻어주었다.

서로 뒤엉켜 왕성히 꽃 피고 지던 여름 지나 가을녘에 이르면 화단은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여주 열매가 농익어 벌어지고 수세미는 누렇게 변해갔다.

이 무렵 수세미 열매를 거두어 빨래방망이를 들고 샘터로 나간다.

방망이로 전신을 질근잘근 두드리면 수세미는 껍질과 씨앗을 분리시켜 명실상부한 '쑤세미'로 거듭났다.

미끈덕대는 속심을 물로 말갛게 휑궈내고 볕에 말리면 저장해 두고 쓸 수 있는 질 좋은 천연 수세미가 됐다.

지난겨울 미국 집에 다니러 갔다가 놀랍게도 딸내미 주방에서 그 수세미를 만났다.

이 귀한 걸 어디서 구했냐고 신기해서 물었더니 아마존에 주문해서 써왔다며 나머지 반이라도 가지고 가란다.

그때 가져온 걸 세 등분해 쓰다가, 이제 남은 동가리 하나만 개수대 위에 다소곳 앉아 있다.

내달 말에 손녀 결혼식이 있어 가족들이 한국 나오는데 그 편에 천연 수세미도 부탁해 놨다.

현재 공산품으로 판매되는 수세미마다 원 재질이 플라스틱, 생활용품 거의가 플라스틱 아닌 게 없으니 미세 플라스틱을 날마다 바다로 흘려보내는 우리다.

인간을 향해 역습해 오는 재앙적인 미세플라스틱의 폐해를 생각하니 끔찍스럽다.

혼자 끌탕을 해봤자 무슨 소용, 죄다 들 일상의 편리를 위해 플라스틱을 멀리하지 못하는데야.



놀이마당 풍악에 취해서 어깨 둥싯거리다 문득 하늘을 보니 다시 구름장이 몰려들고 있었다.

우산은 준비해 왔으나 갈 길이 멀다.

그쯤에서 귀가하기로 한다.

늘 다니던 길로 돌아 나오노라면 노거수 군락지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가 번번 감탄사 터트리게 만든다.

굴무기낭이라고 하는 느티나무와 퐁낭이라 부르는 팽나무는 6백 년생으로 추정되며 천연기념물 제161호로 지정해 보호받고 있다.

연륜 이러하니 풍모 그 얼마나 장관이겠는가.

정의마을 현청이었던 근민헌 주위에는 그 외에도 유독 노거수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고려 충열왕 3년(1277년)에 천연 노거수림이 우거져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이곳이다.

이 터에 뿌리내린 지 천년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유구한 역사를 지켜본 노거수들.

숲 밀밀했다는 거목들 태반이 스러져 지금 남은 고목나무는 몇 그루 안 된다.

콩짜개덩굴이나 풍란 등의 착생식물이 녹둣빛 이끼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나 정작 늙어 노쇠한 나무는 태풍에 할퀴고 인재 피해로 시난고난 중이다.

외과수술에 이어 가지를 보강해 주는 철근 기둥이 곳곳에서 힘겨워하는 노구를 받쳐줘 연명하고 있다

유한한 생명체라 언제이고 사라질 운명이지만 그래도 시절인연 닿아 웅자 마주했음이 다행이랄까.

마을사람들이 축제 열기에 휩싸인 채 집을 비워 텅 빈 거리 한편에서 징징징~푸닥거리 소리가 들린다..

관청할망당이 있는 쪽에서다.

성읍사람들은 관청할망, 안할망, 수호신이라 부르는 데 마을의 안녕과 가족들의 신수를 관장하고 풍요를 갖다 주는 신으로 모신다.

한 차례 당집 탐방팀을 따라나선 적이 있다.

제주에는 1만 8천 신들이 산다고 하듯 처처에 신당이 숱하게 모셔져 있다.

설문대할망은 제주를 만든 거구의 여신, 해상 안전을 지켜주는 바람신인 영등할망, 부와 명줄을 관장하는 칠성신 외에 지신, 성주신, 조왕신등 다양하기도 하다.

비가 실실 내리는 오후. 여기 이르러서 해설사 설명을 듣던 우리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할망신인데도 소저처럼 은비녀, 옥구슬, 거울 선물을 매우 좋아한다니 귀엽지 않은가.

하긴 ‘할망’은 할머니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이 경우 여신을 뜻한다.

3년에 한 번씩 마을에서 소를 잡아 치성을 바쳐서인지 성읍은 제주 4·3 사건도 무사히 피해 갔더라는 영검스러운 여신이다.

정초가 되면 제각금 찾지만 정성을 들일 문제가 생기면 언제이고 찾아오는 위안처인 이곳.

보통은 집안의 액운을 막고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때마다 꼭 안할망당을 찾는다.

특히 공무원이나 정치인 아내들이 취직이나 진급 문제 또는 소송사건이 생길 때 안할망을 찾게 된다고.

귀에 쟁쟁 울리는 징소리.

흐린 날씨라서 인지 굿을 하는 심방 목소리에 신기가 한 겹 더 실린 듯하다.

열심으로 절을 올리는 젊은 여인은 어떤 답답한 사연을 안고 찾아와 절절히 무얼 청하는 걸까.

곧 비가 올듯 음습한 기운, 옆으로 난 길을 통해 근민헌으로 내닫는다.

바로 지근거리에 있는 성읍의 동헌인 근민헌은 전면 4칸, 측면 2칸의 자그마한 건물이다.

근민헌 외에 향교 객사를 품고 있는 성읍민속마을은 국가 민속 문화재 제188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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