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할 일도, 갈 곳도 없는 은퇴 시니어들이 공원이나 바닷가 산으로 몰린다. 해봐야 아무 쓰잘데기도 없는 세상 걱정에 기우나 늘어놓으며 한숨을 내쉰다. 신종 기기의 매뉴얼에 쩔쩔매며 아이들에게 일일이 물어봐야 하는, 뒷전으로 물러난 나이 든 사람들은 말한다. 육이오 난리통 궁핍을 견뎌냈고 IMF 환난까지 겪었으면서도, 우리는 그나마 좋은 세상 살아왔는데 자손들 세대는 어찌 살아갈꼬?
물론 인간은 어떤 조건이나 환경이 주어지더라도 나름껏 개척하고 적응하며 발전해 나가게 마련이다. 허나 삼 년 여의 팬데믹 정국에 무너져내린 게 어디 항공업계나 여행업계 자영업자뿐이던가. 코비드가 물러나고도 나아진 게 없다. 역병 후유증만이 아니다. 정치 사회 그 어느 국면도 신통한 구석이라곤 보이질 않는다. 사방이 콱 막혀버린 듯 깝깝한 세상, 꿈을 좇고 희망을 키워갈 모든 게 사라져 버린 암울함이 팽배해 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없이 모든 게 뒤죽박죽, 혼돈은 점점 가중되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경제가 주저앉다 못해 침몰해 가는 중이니 당장 사회 전반에 긴장감이 감돈다. 현실 판박이가 된 조지 오웰의 1984년이나 동물농장이 눈앞에 펼쳐진 꼴이다. 그까짓 몇 푼 보조금 지급 가지고야 임시변통일 따름이니 반짝 효과나 노린 정책으로 언 발에 오줌누기. 국가 빚이나 늘려 후대들에게 부담만 가중시킨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현재 상황 자체가 얼마나 위중한지, 급박하게 숨길 바짝 조여오는지, 가슴 답답스레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국제문제까지 돌파구나 비상구는 보이지 않으니 사방이 꽉 막혀있는 형국이다. 상상하기조차 싫은 디스토피아가 도래한 것인가.
이런 때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읽을 만한 책이 있다. 근자에 나온 책이 아니라서 거리감이 있긴 하나 일정 부분 대입시켜 볼 만은 하다. 2010년에 나온 <낙관적 이성주의자>는 우선 목소리가 아주 자신만만하고 단호하면서도 명쾌하다. 매트 리들리의 낙관론은 인류가 혁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역사와 철학, 경제학과 생물학을 넘나들며 인류의 삶이 어떻게 지속적으로 발전했는지 10만 년에 걸친 문명사를 집대성하여 인류의 역사는 '번영의 역사'라는 결론을 내린다.
석기시대부터 앞으로 2100년까지 인류 문명과 역사를 꿰뚫는 통찰과 예지로 비관주의를 뒤엎으며, 특유의 저돌성과 자신감으로 낙관주의를 표방한다. 유전과 생명의 영역을 넘어 문명의 미래까지 예리한 필치로 짚어주고 있다. '나는 이성적 낙관주의자다. 이성적이라고 하는 것은 기질이나 본능 때문이 아니라 증거를 살펴본 결과 낙관주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펼치는 페이지들에서 독자들 또한 그렇게 만드는 것이 나의 희망이다.' (본문 26쪽)
혹시 당신이 세상은 점점 좋아져 왔다고 말한다면, 순진해 빠졌고 둔감한 사람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세상이 지금까지와 같이 앞으로도 점점 좋아질 거라고 말한다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할 것이다. 실제로 경제학자 줄리언 사이먼은 1990년대에 이렇게 말했다가 온갖 비난을 받았다.' (본문 419쪽)
1798년 맬서스 인구론에서 인류의 미래는 이미 비관적으로 예측됐는데 곧 식량위기가 닥칠 것이라 점쳤다. 빈곤의 증가, 사막 확대, 악성 전염병, 물 전쟁, 석유 고갈, 정자 수 감소, 엷어지는 오존층, 산성비, 광우병, 지구 온난화, 소행성 충돌… 냉철하고 진지한 엘리트층 지성들이 이 같은 위협들을 지지했고, 언론과 대중매체는 이를 선전해 왔다. 이처럼 인류의 미래에 관한 현대의 담론을 지배해 온 것은 비관주의적 관점이었다.
1960년대엔 인구 폭발과 세계적 기근이, 1970년대엔 자원 고갈이, 1980년대엔 산성비가, 1990년대엔 세계적인 전염병이, 2000년대엔 지구 온난화가 이를 대표했다. 2000년이 시작될 때 매스컴에선 Y2K 버그로 인한 대혼란을 예상하며 주의와 준비를 종용했다. 대처의 덕분이겠지만 새 천년을 맞이하며 전산망의 대혼란은 기우였음이 판명되었다. 전환점 소동에 불과한 것이었다. 리들리는 현재 다른 모든 문제라고 하는 것들 중에 진짜 나빠지는 것은 교통체증과 비만인데 그럼에도 이 둘은 풍요의 산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모든 비관론 앞에 리들리의 낙관론은 막힘이 없고 거침이 없다. 오늘날 지성계를 지배하고 있는 비관주의를 폭넓은 역사적 시야와 방대한 근거를 가지고 조목조목 반박한다. 그는 확고하게 앞으로 100년, 인류는 전례 없는 번영을 누릴 것이라고 진단한다. 2100년에도 인류는 오늘날에 비해 더 잘 살 것이며, 생태환경도 같은 정도로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기우에 불과하길 바라지만 AI는 또 어떤가. 활용하기에 따라 유용하게 부릴 수도 있겠지만 추론능력조차 있는 만능 쳇지피티가 인간 고유의 영역까지 갉아먹지는 않을지.
이 책은 또한 각종 생태주의, 녹색운동을 가차 없이 비판한다. 리들리가 ‘그린’ ‘청정’ ‘재생 가능’ ‘지속 가능성’ 등의 개념을 비판하는 근거는 과학과 경제학, 그리고 인도주의다. 같은 맥락으로 과학적 검증을 거친 유전자조작에 대한 반발을 우려스러워하며 유기농 운동 역시 오류에 빠져있음을 지적한다. 모든 합성비료를 회피하는 행태도 불합리하다고 지적한다. 최근에 관심의 대상인 유기농법에 대해 리들리는 집약농업에 의한 집약 생산만이 90억 명의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위협으로 대두되고 있는 ‘기후 변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급속하고 심각한 기후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 인류가 기후 변화에 전혀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보다, 온난화를 선택함으로써 성장을 만들고 혁신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주장한다. 지구촌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든 비관하든 그것은 각자의 자유의지이겠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랬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모두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