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가뜩이나 귀가 얇은 사람, 한동안 머리가 띵했다. 알파고의 등장은 충격이자 경이이면서 동시에 혼란이었다.
IT 산업이 눈부시게 발달했다 해도 그저 대단한가 보다 짐작이나 할 뿐 솔직히 그 방면엔 까막눈 수준이다.
과학기술의 발전 정도는 상상 이상, 내겐 천지개벽에 가까웠다.
낯선 단어 알파고가 쓰나미 되어 우리 삶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며 두려움과 기대감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공지능 알파고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처리하는 능력을 갖췄으니 계속 기계나 도구로 분류하기도 뭣하다.
명령어 지시어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이 아니라 적절한 수단과 방법으로 대응하는 신경망을 갖춘 인공지능이니까.
속마음을 읽는 친한 친구처럼 대화의 상대가 돼주고, 눈치 빠른 비서처럼 인간의 업무처리를 대행하는 로봇이라니.
인공지능은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눈앞의 현실이다.
놀랍고도 두렵다.
그 충격으로 적잖은 사람들이 'AI 포비아'(인공지능 공포증) 나아가 테크노 포비아(technophobia`과학기술 공포증'을 느꼈으리라.
대변혁을 예고하는 인공지능 산업은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린다.
수력 증기기관에 의한 18세기의 1차 산업혁명, 전기 동력에 의한 대량 생산체계의 19세기 2차 산업혁명이다.
인터넷 등 IT 기술을 통한 20세기 3차 산업혁명에 이은 새로운 흐름이 인공지능 산업이다.
기계의 위협에 대한 인간의 공포 탓에 '러다이트 운동'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우려조차 나온다.
러다이트 운동은 19세기 영국 수공업자들이 공장에 쳐들어가 자동 방직기 등의 기계를 파괴한 사건이다.
'알'면 알수록 '파'워가 되는 '고'수 되기 작전을 펼쳐야 할 시점이라는 우스개가 웃기기는커녕 식은땀 나게 한다.
알파고 이후의 미래에 대한 진단과 전망이 쏟아져 나왔다.
인공지능이 혁신적 진보를 가져다준다기보다는 인류사회의 미래를 그늘지게 하는 먹구름이 될 확률이 높다는 논조가 더 우세했다.
한결같이 비관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가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사실 눈이 핑핑 돌 지경이다.
우물물이 펌프에서 수도로 바뀌는 데는 변화에 적응할만한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광석 라디오가 트랜지스터로, 흑백 TV가 컬러 TV로 대체되기까지, 무리 없이 일상에 안착할 만큼의 기간은 어느 정도 여유 있게 두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고 새면 첨단 기술에 의한 새로운 혁신 제품이 나올 뿐 아니라 기존 제품도 나날이 업그레이드되고 업데이트된다.
빠르게 변하는 기류를 무시하고 필름사업에 집착하던 Kodak은 이제 아날로그 시대의 추억으로 사라져 갔다.
2천 년대까지도 디지털카메라를 출시하며 승승장구하던 코닥의 몰락을 누가 예견이나 하였던가.
그 이전의 문제점들도 있다.
IT 산업 쪽으로 가속화될 자본 집중도 간과해선 안될 것이, 특정 기업의 독식을 막기 위한 대응책은 있는지도 논의해야 한다.
또 하나 사회 변화에 따른 제반 갈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정신이 얼얼하다 못해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해 와 오죽하면 <이성적 낙관주의자>를 다시 꺼내 읽었다.
많은 지식인들이 비관적으로 보는 앞날이지만 오히려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비관론을 뚫고 성공에 이른 새 인류.
따라서 미래 역시 낙관적이라는 매트 리들리의 문명 해설서는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분야를 두루 꿰었다.
수많은 증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인류 삶을 긍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신념이 담겨 있는 그 책은 적잖은 위로가 돼주었다.
70~80년대만 해도 주산학원 속셈학원은 아주 인기가 좋았다.
불과 15년 전 무전기 같은 삐삐를 차고 다니다 휴대폰이 나오자 세상 참 좋아졌다고 경탄했는데 이젠 이동하면서도 화상 통화가 가능한 시대다.
다양한 기능이 집약된 아이폰이 대중화되면서 전화 기능만이 아니다.
인터넷에 카메라, 사전, 계산기, 돋보기, 손전등, GPS며 일정표 등등 온갖 도우미들을 한 손안에 들고 다닌다.
아이폰 하나로 아쉬울 게 없어진 세상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미연방도로교통안전 위원회가 자동차 사고 피해를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는 자동 충돌 방지 시스템(AEB: Autonomous Emergency Brake System) 장착을 2022년부터 의무화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AEB는 충돌 방지를 위한 각종 센서가 부착돼 있어 감지된 정보에 따라 브레이크가 자동으로 조작, 긴급 제동을 걸어 사고를 막아주는 시스템이다.
그로 인한 파급효과가 크기에 이익단체들의 로비가 거세게 펼쳐질 거라고도 했다.
세상은 서로 얽히고설킨 데다 맞물려서 돌아가며 밥을 나눠먹고살게 만들어졌다.
자동차 접촉사고는 당하는 사람에게는 분명 화다.
반면 물리적 피해가 발생하므로 토이 카가 출동하고 정비업체가 일감을 얻고 보험회사가 신나게 뛰고 변호사와 병원이 덩달아 바빠진다.
누군가의 화가 다른 여럿에게 득이 되는 이런 순환시스템이 종료되는가 했는데 그 수준을 훨씬 능가하는 막강한 대안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완벽한 인공지능으로 무장된 무인자동차가 실용화 단계에 들었다고 한다.
무인자동차가 도로주행 실험에서 차선이 지워졌거나 도로가 파손된 곳에 이르면 자율 주행 불가능으로 멈춰 선다 하나 곧 후속 보완 조치가 나올 터.
앗싸~내게는 복음이지만 운전을 업으로 삼는 다수에겐 심각한 얘기다.
21세기 전반에 무인자동차가 상용화돼 택시 버스 운전사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되겠다.
심지어 의학 나노 기술의 발전으로 질병이 정복돼 정교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수술의가 아닌 일반의사도 사라질 거라고 예측하고 있다.
독일 박람회장에서 안내 데스크를 맡은 로봇은 네 가지 외국어를 구사하는 데다 수화까지 한다고 했다.
지금도 구글 도사에게 청하면 서툰 대로 문장 번역은 도와준다.
곧 언어장벽도 옛말이 되고 외국어를 못한다고 주눅 들 일 역시 없어진다.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알아서 각국 말을 동시통역해 준다니, 세태 따라 영어로 몰리고 중국어로 몰리던 외국어 학원도 전업을 고려해야 할 판이다.
물론 전문 통역사야 해당 분야의 목적에 따른 정확한 이중언어 습득을 요하니 어느 시대 없이 필요하겠지만.
어쨌거나 앗싸~ 이 또한 내게는 굿뉴스다.
구태여 안 돌아가는 혀 굴려가며 발음 공부하지 않아도 기계가 척척 알아서 단숨에 내 답답함을 해결해 줄 테니까.
예제로 든 문장에 미래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이 들어있다.
People well wear "smart" clothes with built-in phones and computers.
스마트복을 입은 그가 우주 산책을 하며 지구를 바라본다.
지구에 있는 그의 집은 로봇이 관리한다.
가상현실이 아닌 실제상황이 불원간 열릴 조짐이다.
그런 세상을 내가 맞지는 못한다 해도 아들 대 나아가 손주 세대에는 그렇게 살 게 거의 확실시되어 간다.
설령 거기까진 이르지 못한다 해도 고용 구조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듯 미래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만큼 암울한 일이 있을까.
우리는 살아가되 건강하게 일하며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기를 본능적으로 원한다.
호모 파베르(homo faber) 곧 일하는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데 과연 앞으로는 무슨 일에 종사해야 할 것인가.
현존하는 직업의 40%가 수년 내에 컴퓨터로 교체될 것이란 우울한 분석이 나오고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대량 실업 사태를 우려한다.
인공지능 발달과 로봇 자동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로 제일 먼저 단순 업무가 사라질 전망이다.
힘을 써서 하는 단순노동이나 경리직, 비서직, 사무직, 행정직, 제조 생산직 대다수가 사라지게 된다고.
서비스업과 철밥통으로 불리는 공무원과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도 예외는 아니라 한다.
더구나 십 년 뒤엔 한 가지 직업이 아닌 복수의 직업을 가지게 되며 프리 에이전트가 증가할 거라고 한다.
미래에 살아남을 직업군은 감성과 창의성이 중시되고 인간과 인간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직업이나 컴퓨터 관련 업무와 예술 관련 업종들이었다.
컴퓨터 기술자, 상담 치료사, 건강 관리 전문가, 도시문화 기획자, 예술가, 이처럼 과학자나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들만 살아남는다 한다.
대입을 앞둔 손주의 진로를 놓고 얘기를 하던 중 아들은 "걱정을 사서 한다"며 한마디 훈수를 둔다.
자동차가 나와 마부는 사라졌지만 오히려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났잖느냐고.
앞으로 100년, 인류는 전례 없는 번영을 누릴 것이라고 리들리는 낙관한다.
그의 희망에 찬 격려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좀 복잡하고도 착잡한 심경이다.
기분 좋아 터져 나온 앗싸~가 무색해진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