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산책 3

서귀포자연휴양림

by 무량화


천백고지 습지에서는 쾌청한 날씨였다.

같은 천백 도로상인데 금세 심술궂게 변해버린 하늘.

서귀포 자연휴양림에서도 역시 엄청난 국지성 소나기를 만났다.

예측불허로 급변하는 기상도.

요사이 제주 날씨는 이리 들쑥날쑥 제멋대로다.

말짱하다가도 수시로 하늘이 변하며 으르렁거리다 쏴아! 퍼부어대니 한마디로 변덕이 팥죽 끓듯 했다.

자연휴양림 초입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비가 올 낌새 같은 건 거의 느끼지 못했다.

숲 공기는 마냥 청량하니 쾌적했다.

웰빙(well-being)과 행복(happiness), 건강(fitness) 의미대로 웰니스 휴양림인 이곳.

늘 가던 생태관찰 데크길 지나 건강산책로를 걷는 도중에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졌다.

법정악 전망대에 올라 서귀포 앞바다를 조망하려던 계획이었으나 가나 마나 하게 생겼다.

우산은 챙겨 왔지만 강풍을 동반한 소나기라 길가 정자에 들어 비바람부터 피했다.

잡목숲이 거칠게 요동질 쳐댔다.

생나무가지가 찢겨 뒹굴고 이리저리 푸른 낙엽들이 휘날렸다.

자잘한 몽돌이 박힌 건강 지압길에 깔려있는 생이파리 위로 비는 연신 쏟아졌다.

종잡을 수도 없이 날씨는 이렇듯 조화를 부렸다.

그 빗속에도 보행 불편한 다리 이끌고 걷는 이가 있었다.

우산도 안 쓰고 비를 쫄딱 맞은 채로 앞만 보고 어설픈 걸음을 떼어 놓는 중년 남자.

뇌졸중 후유증으로 편측 마비가 왔던 듯, 재활운동 통해 이를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가 뒷모습에 새겨져 있었다.

누구라도 장애우가 될 수 있다는 광고 카피대로 오늘 건강하다 할지라도 그 누구도 자신 있게 장담할 수 없는 게 건강이며 미래다.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 하였듯 나이와 무관하게 죽는 데는 순서가 없다.

싱싱한 초록잎새가 졸지에 낙엽 되어 길바닥에 깔리리라고 상상이나 했으랴.

그처럼 모든 생명 있는 존재의 숙명인 유한성에 생각이 미치자 문득 살아있는 존재 모두에 짙어지는 연민.

결국은 춘하추동 사계의 순환에 다름 아닌 나이듦이다.

고로 늙어가는 일이 무에 그리 안타까워할 일인가 싶어진다.

그야말로 어리석은 애집일 따름이거늘.

상념에서 벗어나라는 듯 번하게 하늘이 든다.

이대로 돌아가기 미진해 이번엔 '숲길 산책로' 흙길로 길머리를 잡는다.

산책로에 들어 겨우 오백 미터나 걸었을까.

숲 울창한 오솔길을 걷는데 갑작스레 양동이로 들이붓듯 엄청난 폭우가 뿌옇게 시야를 가렸다.

도무지 아무리 뜬금없대도 이럴 수가.

마침 도반이 차를 갖고 왔기에 파킹장으로 힘껏 내달았다.

이제 볼장 다 봤으니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미처 몰랐던 길, 차량순환로가 숲을 따라 나있었을 줄이야.

물론 나로선 처음 가보는 길이다.

휴양림에는 각종 편의시설이 완비된 데다 숲해설사가 상시 대기 중이며 편백숲 야영장, 유아숲 체험원이 운영되는 건 알았으나 차량순환로까지.

덕택에 우중 숲 속 산책이 우중 숲 속 드라이브로 멋지게 변환되며 일방통행로인 숲길 이리저리 누비고 다녔다.

이때야말로 쏟아지는 호우로 인해 와이퍼가 정신없이 움직였지만 나는 와우~얏호! 를 연발했다.

신경 쓰며 조심조심 우중 운전하는 도반 정신 상그럽거나 말거나 고양된 기분 멈출 길 없어서.

우중산책의 피날레는 아이처럼 이리 신명이 났더라는.


같은 날 천백고지 습지는 전혀 다른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