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한글학교와 인연이 닿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거개가 초등학교 혹은 유치원 교사 출신이다.
신부님이 한글학교 교장선생님. 나처럼 한글강사 노릇이 처음인 사람이 나이 덕에 교감 직함을 받았다.
한글학교 대상 학생들 나이는 8세부터 12세까지다.
단계별로 여러 반이 있는데 한국에서처럼 연령에 따라 학년 혹은 반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한글을 얼마나 잘 쓰고 읽는지에 따라 반을 편성한다.
이곳 교민 2세들의 제1 언어는 당연히 영어, 학교를 다니면 자연히 영어는 능숙한 언어가 된다.
집에서 한국말을 사용하던 아이들도 점점 한글과 멀어지면서 절로 한국어는 자연도태되고 만다.
그러나 교민 아이들이 자라 대학을 나오고 취업을 할 즈음이면 모국어를 아는 것은 큰 힘이 되고 실질적으로도 큰 도움을 준다.
한편 부모 자식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도 한글교육은 필요하나, 오히려 영어를 능숙하게 쓰는 아이가 대견스러운 부모.
일이 바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또는 빨리 현지화시키고 싶은 욕심으로 다수가 한글교육을 도외시한다.
하지만 뒤늦게 후회하고 대학생 자녀를 장, 단기 혹은 방학 기간 동안 한국 대학의 어학당으로 보낸다.
여기선 우리말이 국어가 아닌 한국어다.
한글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듣고 읽고 쓰기를 가르치는데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한글 실력을 습득케 하는 것이 목표.
아이들에게 한글과 함께 한국 문화와 역사를 알게 해주는 한국 문화원 역할을 하는 곳이 한글학교다.
교재는 외교부 문화부 교육부 등에서 펴낸 재외 동포용 한국어 책들을 쓴다.
교민 2세 자녀들에게 왜 한국어 교육이 필요할까.
스탠퍼드 대학에 입학한 한인 학생에게 한 교수가 물었다.
Who are you?
황당스러운 질문이지만 학생은 답했다.
아이 엠 아메리칸.
그러자 옆에 있던 백인 학생이 힐끗 쳐다보며 말하길 아이 엠 프렌치 아메리칸.
넌 민족 정체성도 없느냐는 투로 한심하게 바라보던 눈길이 잊혀지지 않는다는 한국교민 학생.
부모에게 왜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교육시키지 않았느냐고 원망 섞인 불평을 하던 그 학생은, 이후 한국에 관한 책을 찾아 읽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2세 자녀들에게 한국어는 곧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왜 한글교육을 받으려는가? 하는 물음에 아이는 선뜻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모국에서 쓰는 말이니까!
미국 땅에 살며 영어는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자연히 하게 되어 있다.
집 대문만 나서면 만나는 모든 환경이 영어권에 포함되므로.
아이들은 킨더가든까지는 곧잘 한국말을 하다가도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점점 사용빈도가 낮은 한국말을 잊어간다.
한국말은 잘 못해도 불편이 없는 데다 따로이 문제의식도 느끼지 않으므로 한글과는 점차 거리가 멀어지고 만다.
초기 이민생활 때는 의도적으로 한국어를 못 쓰게 하고 영어만 쓰라고 교육시킨 부모가 많았다 한다.
그것만이 자녀들이 전적으로 미국화되는 데 있어서의 지름길이라 여겼으므로.
가까운 필라델피아 제퍼슨 병원 방사선과 교수인 루카는 연대 의대를 마치고 미국에서 인턴쉽을 받았다.
그의 아내는 간호사로 취업이민, 그 후 남편 박사 공부 뒷바라지를 했다.
삼 남매를 둔 그들 부부는 집에서 절대 한국말을 쓰지 않을뿐더러 아이들에게 모국어 따위 굳이 가르치지 않았다.
사목회장 아들인 그 집 늦둥이 막내는 성당 내 우리 한글학교를 다닌다.
뒤늦게 한글교육의 필요성을 깨우친 그들 부부.
큰아들이 한글 공부를 안 시킨 부모를 원망하며 연세대 어학원으로 유학을 가버렸기 때문이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미국인으로 만들겠노라 작정하고 집에서 음식은 물론 언어 등 한국식은 배제시키고 오로지 미국화에 힘썼건만.
그제야 부부는 아차! 하면서 때늦은 후회를 하게 됐다.
동시에 그로 인한 보편적 문제점들을 비로소 알아차리기 시작한 것.
이중 언어권자가 되는 것이 자녀들 사회 진출 시 여러모로 유리한 점도 뒤늦게 자각한 셈이다.
예를 들면 대형 로펌에 들어간 한인은 아무래도 한인 담당업무를 주로 배정받게 된다.
만일 한국어를 전혀 못한다면 통역 없이는 한인 케이스를 처리하지 못하므로 회사에서는?
필요 불급의 요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도태되거나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이중언어를 구사하면 연봉 액수가 차이 나기도 한다.
의사 역시 마찬가지, 한국말이 통하는 한인 의사를 만나면 교민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반가워한다.
이중 언어를 자유롭게 잘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은 그만큼 생업 능력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한국어교육의 중요성은 그 외에도 얼마든지 더 있다.
1세 부모와의 원활한 대화 소통 나아가 한국적 정서를 교감하기 위해서도 당연히 필요하다.
무엇보다 가정교육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도 교민 2세들의 한국어 교육은 중요하기 이를 데 없다.
나이 오십도 넘어 이민을 간 내 경우를 봐도 자명한 일이듯 모든 언어는 나이 들어서 배우려면 무척 어렵다.
우선 굳어진 발음 교정부터가 쉽지 않다.
컴퓨터를 컴퓨러라 하기도, 마징가 제트를 마징거 지라 하기도 힘들고 티(T) 발음은 아무리 신경 써도 안 고쳐진다.
따라서 워터가 워러 되는 것도, 화이트 하우스가 와잇 하우스 되기까지도 한참 걸렸다.
어학교육은 되도록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그리고 꾸준히 익히게 하는 것이 그만큼 효과적이다.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외국어는 조기교육이 아주 중요하다.
한글도 미국에서는 외국어다.
가급적 한국어 배우는데 흥미를 갖게 하려면 먼저 모국에 대한 관심과 자긍심을 심어주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줄 안다.
모국의 역사와 문화 등에 관한 얘기를 자주 들려주어 자신의 뿌리의식을 튼튼하게 심어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모국어에 관심을 키울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에 반해 초창기 교민들은 우격다짐으로 자녀들이 한국말을 쓰지 못하게 단속했다.
지금은 의식이 많이 바뀐 편이지만 오래전에 이민 온 가정의 자녀들은 모국어와 장벽을 치고 살았다.
현재 세계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약 700만 명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들.
그들은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뀔수록 점점 모국어를 잊어가고 있다.
모국어를 잊어가고 있다는 것은 민족혼을 잊어가고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은 자신이 속해 사는 사회 속에서 아이덴티티 문제로 자주 갈등을 겪는다.
또한 가정에서와 집 밖에서 부딪치는 이중언어로 혼란을 느낀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언어는 한국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기억한다면, 일제 강점기의 국어 말살정책을 잊지 않았다면 말이다.
모국어를 소중히 간직해야 하는 까닭은 절로 납득이 될 테고 나아가 설명되고도 남는다.
우리는 550년 전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고유의 말과 글인 소리글자 한글을 가지고 있다.
세계가 인정하는 한글이라는 자부심만으로는 안된다.
실제 생활에 도움을 주는 언어로 활용되어야 한다.
코리안 디아스포라(diaspora) 건, 코리안 노매드(nomad)건, 모든 재외한인들.
그들에게 모국어가 아닌 선택 언어이자 제2 외국어인 한글을 가르치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고 올바른 민족얼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또한 뿌리에 대한 역사적 기반을 이해시키면서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의도이다.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언어적 의사소통 범위를 벗어나 삶에 필요한 자존감을 키워주고자 함은?
미래사회가 필요로 하는 건전한 품성과 덕목을 지닌 지도자로 자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뿌리 인식에 필요한 언어로서의 한국어를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의 사회문화적 유산을 계승시켜 주는 역사 잇기의 한 작업이기도 한 한글교육이다.
전도유망한 재벌그룹인 SK 과장으로 근무하다 동부로 이민을 온 베드로.
그는 단지 자녀 교육을 위해 한국에서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여기 와서 생전 안 해본 육체노동을 한다.
아내 베로니카는 잘 왔다고 하지만 묵묵부답 말이 없는 그의 얼굴엔 항시 그림자가 걷히질 않는다.
자녀들 교육도 그렇다.
아무리 글로벌 시대라 하나 영어 잘하면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다.
영어에 능한 인도나 필리핀인들이 우리보다 잘 산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거기다 조기유학이 성공할 확률은 10% 미만이라고 한다.
그뿐 아니다.
성, 마약에 노출된 채 자유분방하기만 한 고등학생들의 생활을 우리 정서로는 수용하기가 힘들다.
뿐만 아니라 여기도 학원 과외가 성행하며 아이비리그 대학에 보내려면 줄곧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한다.
어려서부터 악기 수영은 기본이고 승마 조정 카누 카약 골프 등등 과외로 특별활동을 시키느라 한인 학부모는 허리가 휜다.
대학 학비도 엄청나다.
아이비리그로 불리는 사립 명문대 한 학기 등록금은 한국 대학 일 년 치를 넘는다.
그전엔 하버드니 프린스턴이니 유명대에 유학 온 사람을 대단한 천재라고 여겼는데 그 많은 학비를 댄 부모 수준부터 가늠이 된다.
국비 장학생 외는 아버지가 얼마나 부호일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더라는 말이다.
하긴 주변에도 하버드 의대 출신 아들을 둔 교민, 예일을 나온 교수 딸을 둔 교민이 있다.
가까운 필라의 제퍼슨 대 병원엔 간암의 세계적 권위자도 있고 필라델피아 교향악단에는 한국인이 여럿이다.
명문 의대 출신도 다수이며 줄리아드에서 기량을 연마한 쟁쟁한 인재들이 많다.
그럼에도 근원적으로 주류사회의 일원이 되어 자연스레 흡수되지 못하는 소수인, 주변인으로 여겨짐은 왜일까.
이탈리안이나 터키인은 미국 공항에 닿는 즉시 미국인으로 동화 가능하나 동양인은 그게 불가능하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처럼 되는 게 가능하질 않은 것은 피부색과 원판불변의 법칙에 따른 곧 태생적 한계 같다.
백인 장벽은 어쩌면 동양인에겐 공격 불가능한 철의 요새일지도 모른다.
높이 올라갈수록 오히려 눈에 안 보이는 인종차별이 심하다고들 한다.
가령, 법조인조차도 로펌 내에서 주로 한인을 대상으로 일하는 경우가 태반이며 특수한 예를 제외한 일반 의사 역시 마찬가지다.
전문직을 갖고도 그래서인지 자기 비즈니스를 열어 전혀 다른 길을 가는 예도 심심찮게 본다.
특히 간호사로 이민 정착한 사람들 중 다수는 체력과 언어로 인한 스트레스에다 텃세가 심한 까닭에 병원을 떠난다.
70년대 간호사 취업이민을 온 케이스 중 일반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 주변에 꽤 많다.
세계는 국경 없는 무한 경쟁시대로 진입했다
글로벌화로 세계의 경제 사회 문화의 벽이 사라지며 급격히 동일화되어 가는 세상이다
그럴수록 자신의 정체성에 새로이 눈뜨게 되고 뿌리 찾기에 관심을 갖게 마련.
역반응으로 자기의 문화가치를 지키려 노력하는 등 또 다른 내셔널리즘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문화의 속성이 판이하게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디아스포라들.
한글교육을 통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한국인의 문화 사회 예절 신앙 세시풍속 민속놀이 등의 이해시켜 한국인의 정신 알리기.
그를 위해 한국의 말과 글 역사 문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정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모국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고 발전적 시각에서 한국어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 주므로 동기유발을 이끌어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리라. 2007
* 이십 년 가까이가 지난 세월. K컬춰가 대세라는 요즘, 교민사회에서의 한글교육은 그새 어떤 형태로 변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