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삽니다

2006

by 무량화

애틀랜틱시티는 동부의 라스베이거스다.

물론 화려함이나 명성이나 규모 면에서 택도 없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대서양을 끼고 있는 뉴저지 한적한 해안가가 어느 날부터인가 불야성을 이루기 시작했다.

서부 관광하는 사람들의 코스에 필히 라스베이거스가 들어가듯 처음 동부에 오는 사람들에게 눈요기 접대지 비슷한 곳이 여기다.

여기 들러서 카지노장 구경도 하고 호텔 식당에서 착한 가격의 정식 코스요리 맛보며 이것저것 눈요기한 후 바닷가 좀 거닐다가 오면 대접 그럴듯 하다.

몇 년 전 첨으로 구경 왔을 때 라스베이거스를 이미 본 후라 뭐 대단할 것은 없었으나, 어떤 기막힌 광고문구를 접하고는 눈쌀을 찌푸렸다.



<금 삽니다> 어느 주얼리 가게 앞에 조악한 필체의 한글로 이렇게 쓰여있는 게 아닌가.

한글로 그 글씨를 써 붙였을 경우, 미국인이 해당될 리 만무이고 결국 타깃은 한인이다.

한국 속담에 노름에 미치면 막판엔 귀금속뿐만 아니라 마누라도 판다지 않던가.


오죽하면 도박에 중독된 사람 손을 자르면 발로라도 한다는 말까지 있겠나.

애틀랜틱시티에서는 행색 멀쩡한 거지가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인다.


걸친 옷 외엔 더 이상 팔 게 없는 중증 도박꾼은 구걸한 푼돈을 들고 다시 도박장에 간다니 구제불능인가, 자포자기인가.




그처럼 동부 인근 교민 중에도 이곳에서 도박에 빠져 힘들여 번 돈 탕진하고 패가망신 정도가 아니라 알거지 된 자가 더러 있다는 소문이다.

알코올이나 히로뽕만이 중독되는 게 아니라 도박도 중독 증세를 보이는 것 중의 하나.

마카오 도박 사건으로 한국을 등져야 했던 서세원이 모자 푹 눌러쓴 채 사진 찍히며 매스컴에 오르내린 지명이 이곳이기도 하다.

당시는 쯧쯧! 도망 다니는 처지에도 해외 원정 도박이냐, 그저 연예인들 하는 짓거리라고는...

혀를 찼더랬는데 안드레아 보첼리 콘서트를 다녀온 후 그를 좀 두둔할 명분이 생겼다.ㅎ

그럼 그렇지, 대중들이 재미있게 즐기는 흥행물을 짜내는 엔터테인먼트인 그다.

종사하는 일이 그럴진대 실리콘밸리에 들리겠나, 생화학연구소를 가겠나.

현장에서 폭넓게 배우는 현지학습의 일종?


무대장치며 조명이며 시야를 넓히는 의미도 있긴 있겠구나 싶긴 하다.

보첼리 공연이 있던 축구장 만한 홀에선 다음 공연이 마돈나, 그다음은 카퍼필드인가 뭐라던가 그 재간꾼 공연이 연중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튼 이곳엔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가 지은 타지마할 등 여러 도박장이 밀집해있다.

낮엔 대서양을 낀 해변 동네로 좀 황량한듯싶은 도시가 역시 밤이 되면서 휘황하게 변신을 한다.

성장을 한 남녀들, 거리엔 길쭉한 캐딜락이 즐비하고 롤스로이스도 흔하다.



캐딜락, 하니 생각난다.

일찌감치 해외로 나간 외사촌 언니네는 브라질에서 돈 벌어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이민 와 세탁공장을 차렸다.

외국어는 젊거나 어릴수록 습득이 빠른 법, 당연히 큰아들이 앞장서 공장을 운영했다.

온 가족 똘똘 뭉쳐 애쓴 보람이 있어 몇 년 만에 돈푼께 나 차지게 모았던 모양, 그때 사단이 터졌다.

큰아들이 살살 애틀랜틱시티 맛을 들이며 도박에 깊숙이 빠져버린 것,


그때껏 부모는 깜쪽같이 그 사실을 몰랐다.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언니 내외는 주말이면 기다란 캐딜락이 대기하고 있다가 아들을 '모셔'가곤 하는 걸 의아해하기보다 자랑스러이 여겼다.

그 세계를 알턱없는 순진한 부모라 속 사정에 어두울밖에...

일이 터진 후 알고 보니, 카지노장에서 VIP급을 기분 좋게 배려해 주는 이 상술에 취해 큰아들은 지가 뭐라도 된 양 우쭐해 있었고.

최고의 예우를 하며 모셔갈 정도로, 이 어수룩한 한인 젊은이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것.

그렇게 반년 만에 30만 불을 탕진하고 어깨 늘어뜨린 채 탕자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나마 공장은 안 날려 다시 부모와 함께 새벽부터 뼈 빠지게 일해야 했다.




캐딜락이 아니라도 노인들이 받는 알량한 몇 푼 싹싹 알겨낼 심산으로 카지노장에서 운영하는 공짜 버스가 일정 장소에서 날마다 기다린다.

무료해 미칠 지경인 한인 노인들 심심풀이 삼아 이 버스를 탔다 하면 정부 지원금은 물론 자녀들로부터 받은 용돈까지 알뜰히 뺏기고 만다.

물론 처음부터 주머니 털리는 건 아니고 일단 밑밥부터 던져 재미를 보게 한 다음 서서히...

직접 경험해 본 바는 없으니 들은 얘기지만 그 버스에 타면 우선 하루 즐기라며 몇십 불을 찔러준다고.

특히 주말이면 이 동네와 연결된 대로변 양 가엔 경찰차가 깔리다시피 한다는데 사유가 과연 그럴싸하다.

두툼한 지갑 넣고 한판 거하게 벌이러 도박장으로 달려가는 길, 마음은 일분일초가 급해서 과속운전!

돈 깡그리 잃고 홧김에 술이든 약이든 들이켜 취한 채로 해롱거리며 갈지자 운전하다 걸려 벌금 딱지야 당연지사에 자칫 은팔찌 선물!




한참 전에 라스베이거스 여행 중 들은 얘기다.

도박장엔 시계가 없고 로비엔 의자가 없다던가.

이유야 뻔하다, 오직 주머니 탈탈 긁어내자는 수작이니.

카지노장을 스치고 포커장을 지나며 슬쩍 들여다본 실내, 담배연기 자욱하다.

다들 정신없이 몰두해 있다.

옆에서 사진을 찍어도 꿈쩍 않는다.

다빈치 코드 한 장면, 거기서 올리는 오프스데이의 종교의식도 저리 몰입된 상태 아닐까 싶다.

그렇게 재미 진진한지?

도박을 안 해봐서 그 심정 알지 못하나 '꾼'들이여!

따는 재미가 있으면 잃을 때도 있게 마련.

특히 도박장에서 일확천금을 땄다손 쳐도 그 돈으로 농장 산다거나 사업 확장했다는 소린 못 들어봤다.

결국 기다리는 건 패가망신 뿐, 도박장에다 왕창 다 쏟아붓고서야 손 털기 십상이라는데......... 2006

사진: 픽사 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