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 시대 단상

by 무량화

배려심

한 가게의 단골 고객이 된다는 것은 상호 간에 신뢰관계가 공고히 성립됐다는 의미인 것 같다. 처음 한동안 낯익을 때까지는 컴퓨터에서 찍혀 나오는 물품 내역과 금액이 명시된 영수증을 반드시 챙기던 손님들이 이제는 그냥 물건을 놔두고 간다. 초기엔 가격도 꼼꼼히 살폈는데 완전히 믿고 맡기는 셈이다.
나가면서 사흘 후에 올게, 한마디를 남긴다. 삼일이란 기간은 스페셜이 아닌 경우 공장에 보내 세탁과정 거친 다음 되돌아와 완전 정리되는데 필요한 시간으로 통상 사흘 걸린다.


낮에 들른 사람은 안면이 익숙지 않은 새손님. 물건을 찾으러 왔다. 영수증을 꺼내 정중히 내 앞으로 돌려놓는다. 내가 읽기 편하도록 하려는 배려심에서다. 옷을 들고나가며 동양식으로 고개 숙여 인사까지 한다. 많은 사람들을 대하지만 그들 미국인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입에 밴 땡큐! 매사 감사할 일 천지인 사람들 같다. 이래도 댕큐, 저래도 댕큐, 너무 흔해 식상할 것 같지만 들을 적마다 맑은 물방울이 튕기는 것 같은 발음이라 기분 좋게 만든다.


또 하나는 상대 칭찬하기다. 평범한 일상사에서 용케도 칭찬거리를 찾아낸다. 클래식이 흐르니 카페 같군, 재킷이 멋져, 꽃꽂이가 근사해, 브로치 디자인이 세련됐네, 화분을 잘 가꾸는구나, 네 솜씨가 최고야, 굿 쟙.... 나이스... 판타스틱... 그다음은 철저히 지켜지는 질서의식이다. 가게 안에서도 일단 앞사람이 있으면 그 뒤로 가서 선다. 여러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꼭 순서를 지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아무튼 단 두 사람만 있어도 줄을 서는 것이다. 비록 차를 주차장에 세우지 않고 코앞에 임시주차할만치 성미 급한 사람도 이건 반드시 지킨다. 무조건이고 누구라도 예외 없다.


끝으로 위의 손님이 그러하듯 남에 대한 따뜻한 배려심이다. 단정히 접어 지갑 안에 넣어두었던 영수증을 바르게 편 다음 내쪽으로 돌려놓아주는 사소한 동작이지만 상대가 보기 쉽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별일 아닌 것 같으나 이처럼 사소한 일에서부터 매사가 자연스럽게 그러하다. 한번은 가게에서 급히 움직이다 넘어질 뻔한 일이 있다. 넘어진 것도 아닌데 손님이 더 질겁을 한다. 테이크잇 타임! 급할 것 없으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를 연발하며 괜찮냐? 괜찮아? 걱정이 지나쳐 아예 호들갑이다. 그리곤 눈이 휘둥그레져서 안으로 쫓아 들어왔다가 옷걸이 기둥에 세게 머리를 부딪혀 되레 내가 더 미안했던 적도 있다. 배려가 지나치다 보니 아! 다정도 병이어라.


지레짐작


사람을 외형만으로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는 말대로다. 오래전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을 야기시켰던 단초가 그러하듯 외견상 검다는 이유로 흑인들은 많은 차별대우는 물론 심지어 동양인에게조차 백안시당하기도 한다. 만민평등을 주창하는 미국이지만 눈에 띄게 흑인들은 백인에 비해 여러모로 좋지 않은 인식 속에 갖가지 불합리한 대우를 받곤 한다.


하지만 실제 뉴욕이나 필라델피아의 범죄율이 높은 것도 흑인 빈민층이 두꺼운 까닭이고 보면 흑인들의 삶의 태도에 문제가 아주 없는 건 아닌 듯하다
어릴 적부터 쉽게 절도나 성범죄 마약 폭력 등등에 노출되어 문제를 일으키곤 하는 흑인들이지만 요즘 들어서는 깨인 흑인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들도 학력이 높아지며 사회진출이 활발하여 주류사회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많긴 하다. 직위가 높게는 독수리 눈 매서운 여성 국무장관까지 나왔으니까.


레이니에 씨는 흑인 손님 중의 한 명이다. 아직 40대 초인 그는 나이 든 이처럼 퍽 점잖고 말수도 적다.
태도가 너무 조용하다 못해 조심스런 것은 물론 모든 행동거지가 도무지 흑인답지 않다. 대체로 흑인들은 차에다 음악을 크게 틀고 다니기에 차가 쾅쾅 울릴 지경이며 걸음걸이가 아주 리드미컬한 편이다.
흑인들은 대개가 레게 음악에 걸맞은 머리 스타일에다 평소 걸을 때도 독특하게 리듬을 타 춤을 추듯 어깨와 허리를 흔들며 걷는다.


그런데 레이니에 씨는 전혀 아니다. 도무지 저 사람은 무얼 하는 사람일까? 손님들의 직업은 대강 갖고 오는 세탁물로도 하는 일을 구분할 수 있는데 그는 특별한 게 없다, 즉 특색이 없다. 그런 그가 음악회 팸플릿을 내놓으며 자신은 뉴저지 교향악단에서 호른을 맡고 있다며 한번 기회가 되면 음악회에 오라고 한다. 말은 없었으나 우리 가게에 항시 클래식이 잔잔히 흐르는 걸 귀담아 들었던 모양이다.


그가 순수 음악을… 의외다. 놀랍다. 흑인이라면 권투나 농구선수 아니면 요란스러운 팝뮤직에 종사하는 게 일반적이라서 의외라는 거다. 필라 교향악단의 악장은 한국인이다. 그 외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하는 한국인이 다수 그 교향악단에 있으나 흑인은 단 한 명, 백발 노인인 바이얼리니스트뿐이었다. 그만큼 순수음악을 하는 흑인이 드문 까닭에 그가 교향악단 단원이라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그가 두고 간 10월 26일 밤 8시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를 전면 윈도에 붙이며 혼자 고개를 끄덕여본다. 하긴 그래, 누군가 다른 이들은 여기서 이러고 서있는 날 어찌 판단할까….. 새삼 생각이 분다워진다.



휴가 여행

직장인인 한나 할머니는 언제나 미소가 상냥하고 종달새처럼 목소리가 쾌활하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나 대충 일흔은 훨씬 넘은 듯 한 그녀는 항시 단정한 정장차림에 다이애나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다녀서 인상적인 분이다. 지난 주말 세탁한 옷을 찾아가면서 일 주간 휴가야, 다음 주에 봐, 하더니 캬라비안으로 크루즈 여행을 간다고 한마디 슬쩍 자랑을 남기고 갔다.


여름내 휴가와 관련된 타령 참 많이도 들었다. 휴가 언제부터니? 어디로 떠날 예정이니? 반드시 어딜 다녀와야 될 모양, 아마도 와잇 마운틴이나 천섬쯤 갈 것 같아. 며칠간 쉬니? 작년에 일주일 쉬어보니 너무 지루한 듯 해 올해는 나흘간만 휴가를 갖기로 했지.
너흰 열심히 일했으니 휴가기간이 그보단 길어야 해.
마치 자기네들이 휴가 여행이라도 보내줄 듯이 성화였다.


하지만 여행사 관광상품을 뒤적여봐도 일정이 안 맞거나 마땅한 곳이 없는 데다 너무 더운 날씨니 그냥 집에서 쉬기로 한 휴가였다. 이후 여름이 끝나가도록 휴가얘기는 끊이지 않고 넘쳐났다. 난 보름 동안 하와이 갔다 왔어. 우린 알래스카 갔었지. 애들이랑 이탈리아 다녀왔어. 플로리다에서 지내며 악어도 봤지. 그중 한집만 휴가 중에 집 안팎 페인팅을 손수 했다나. 저마다 보기 좋게 갈색으로 선탠을 한 피부가 반들반들 매력적이다.



오늘 한나 할머니가 돌아왔다. 크루즈 즐거웠냐고 물으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말도 마, 배를 타고 하룻만에 허리케인을 만났어. 그 큰 배가 마구 흔들리는 바람에 접시가 떨어져 깨지고 여기저기서 비명소리, 어휴! 난리였어. 바다 한가운데서 만난 태풍이니 과연 혼비백산할 노릇. 그래서인지 볼이 좀 야윈듯하다. 짧은 영어에 할 말이 뭐 더 있겠나, 해서... 특별한 경험을 했네요. 위로인지 격려인지 한마디 보탰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동서양은 달라

리사는 마치 서양인형 같다. 물결치듯 굼실대는 금발에 눈동자가 유리알처럼 파란 데다 볼이 통통한 세 살짜리 귀엽고 예쁜 아기다. 하는 짓이 이쁘다 못해 거의 야시 같은데 어느 땐 치맛자락 한들거리며 제 드레스 자랑을 하고 어느 땐 꽃장식 달린 구두를 쏙 내밀며 자랑이다. 안고 온 곰 인형도 자랑감이고 분홍 가방도 살랑거리며 자랑한다.


리사 손을 잡고 월요일에 옷을 맡기며 배가 남산만큼 부른 리사엄마는 수요일에 오라니까 그날이 출산일이라 옷은 아기 아빠가 찾으러 올 거라 한다.
우리말이 통하면 리사엄마, 건강한 아기 순산하길 바래요. 인사라도 하련만 안타깝게도 기도하는 시늉만 할 뿐 그저 꿀 먹은 벙어리 격. 수요일엔 늦가을비가 억수로 왔다. 하루 종일 추적추적 비가 내리며 히터를 켜야 할 정도로 기온이 쑥 내려가니 숲의 단풍은 한결 울긋불긋해졌다.


그 이튿날인 목요일, 오후였다. 리사가 아빠손을 이끌고 사뭇 신이 나서 달려왔다. 쪼끄만 아기 왔어!
그러면서 주차장의 자기 집 차를 가리킨다.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 병원에서 퇴원하는 길이라 하기에 딸인가 아들인가를 물으니 딸이야, 시큰둥하니 대답한다. 딸을 하나 키워봤으니 아들이면 공평할 텐데... 투덜거리는 품이 아마도 자기 닮은 씩씩한 아들을 원했던가보다. 딸 아들 구별하지 않는 미국이라 해도 내심 아들을 바라온 마음이 확연하다.
딸이면 어떻고 아들이면 또 대수랴만 아들 키우는 재미도 갖고 싶은지 모를 일.


얼른 나가서 차 쪽으로 가니 리사엄마는 차창을 내리며 뒤편 좌석의 아기를 자랑스레 보라고 손짓한다.
부석부석한 우리네 산모와는 달리 약간 파리해진 산모를 향해 두 손을 모아 축하한다는 사인을 보내며 새 아기를 바라본다. 강보 대신 우주복에 싸여 곤히 자고 있는 아기. 새근대는 숨결이 보드라이 느껴진다.
바람이 있으니 얼른 차창을 올리라는 신호를 보내고 돌아서는데 리사 아빠가 옆 피자집에서 피자 한 판을 사들고 나온다, 당연히 콜라 댓병은 서비스로 따르고.
아기 낳고 집에 온 산모에게 주어질 저녁 메뉴가 피자인 모양이다.


우리 식으로야 당연히 산모를 위해 끓인 미역국 내음이 온 집안에 감돌련만 이들은 피자로 싱거운 저녁식사다. 문화의 차이란 이런 것, 만일 한국여성이 미국에 시집와 출산을 한 다음 뜨끈뜨끈한 미역국은커녕 덩실 피자 한 판을 사다 안겨준다면 핑그르르~ 눈물이 고이지 않을까 싶다. 산모는 바람을 쐬도 안되고 단단한 동치미를 먹어도 안되고 시원한 음료수를 마셔도 안되고... 금기사항이 많은 우리와는 달리 이들은 가리는 게 거의 없는가 보다. 하긴 내가 아직 그들의 문화를 제대로 모르고 있긴 하니..


사람 사는 것 어디나 같다지만 미국식 출산은 우리와 여러모로 차이나는 점이 있는데 출산 시 남편이 보조자 역할을 하는 거라든지 아기 낳는 자세 또한 바로 누운 자세가 아닌 비스듬 앉은 자세이고 의사와 계속 대화를 주고받는 방식도 특이하다. 아기 낳은 다음에 우리처럼 따뜻하게 조섭 하는 게 아니라 찬물에도 샤워하고 맨발도 예사라 우리와는 많이 틀리더라는.
삼칠일을 지키고 삼신할미께 정화수 소반에 얹어 비손을 하는 우리네 출산 풍속도를 문득 떠올려보게 한 리사네가 돌아간 뒤. 노을 고운 하늘 보며 새 아기 건강하고 예쁘게 무럭무럭 잘 자라기를 기원드렸다.



타이타닉 부부

타이타닉이란 닉 네임으로 불리는 부부 손님이 있다.
대서양에서 침몰한 호화 여객선인 타이타닉호.
그보다는 얼마 전의 영화 타이타닉에서 두 남녀의 죽음을 넘어선 사랑의 힘을 떠올리며 지은 이름이다.
즉각 그 이름을 붙이게 된 건 남편의 이름이 잭으로 불려지기에 (영화 남주인공 이름도 잭) 더구나 주저 없이 타이타닉이 된 것이다.


그들이 유대인인 줄 알게 된 것은 지난 크리스마스 때 일로 크리스마스 장식인 리스를 선물했더니 노댕큐! 하며 사양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쥬이시라고 일러준다. 대신 연말에 해피뉴이어! 하며 건네준 꽃바구니는 얼마나 좋아하던지 남자분이 허그해도 괜찮냐고 묻는다.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그들식 인사니까 응당 오케이~


이 댁 선물에 유달리 신경 쓴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여름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오면서 그곳 미술관에 한국관 개관 기념으로 전시회가 열렸더라며 거기서 훈민정음 목판본 탁본한 걸 구해다 주어 감격케 했던데 대한 답례로서다. 교사였다는 부인과 회계사에서 지금은 은퇴하여 안락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남편은 항시 어디든 함께 다닌다. 우리집에 올 때도 마찬가지다,


차에서 내리는 아내를 마치 왕비 모시듯 보필한다.
자신이 먼저 차에서 내려 아내 쪽 차 문을 열어준 뒤 아내가 나오도록 도와주는데 젊은애들 데이트하듯 아니면 서양 영화에서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는 신사 같다. 아주 자연스레 몸에 밴 행동을 보이는 그.
윗옷을 입을 때도 거들어 받쳐주며 마치 시종처럼 일일이 챙겨주는 알뜰한 아내 사랑. 나갈 때도 마찬가지, 얼른 문을 열고는 아내가 나가기 편하도록 문을 잡고 서있다가 다시 차문을 열기 위해 먼저 차로 향한다.


여왕 대접을 받는 아내도 상냥하고 정겹기 그지없다.
옷기장을 고칠 때도 남편에게”잭, 이 길이가 적당해요?” 혹은 “보기 괜찮아요?” 뒤돌아보며 묻고는 한다. 그러면 남편은 언제나 으음, 좋아~ 한마디뿐 얼굴 가득 미소를 담은 채로 넌지시 건너다본다. 바라보는 눈가에 가득 고인 은근하고도 깊은 사랑. 오래 산 부부 사이라기보다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연인들처럼 다정한 그들. 칠십이 훨씬 넘은 노부부는 어찌나 정이 좋은 잉꼬부부인지 곁에서 보기에도 참 좋다. 하느님이 사람을 지어놓고 ‘보기에 좋았더라’ 하셨다듯. 사람들마다 부부마다 이쁘고 아기자기하게 살면 역시 보기 좋은 그림 한틀인 것을.



무면허 손님

미국에서 살아가려면 운전은 필수다. 차는 곧 신발이기 때문이다. 대중교통편이 빈번한 대도시는 운전을 못해도 별 문제가 없다 하나 이런 전원지역은 차가 없으면 당장 발이 묶이게 된다. 차라는 발통이 없으면 보통 답답한 게 아니다. 아니 생활이 안된다. 여기 애들은 16세만 되면 차를 몰게 돼있다.(16세까지는 보호자 동승, 정식은 18세) 고등학교 정규과정으로 운전시간이 있어 학교에서 운전을 다들 배운다고 한다.

차 없이는 즉 차로 이동하지 않으면 우유 한통, 빵 하나도 살 수가 없으니 말해서 무엇하랴. 버스가 있긴 하나 예전 시골버스처럼 버스운행시간표가 있을 정도니 버스 편 이용은 아예 생각을 말아야 한다. 언젠가 한번 필라엘 가면서 버스를 탄 적이 있다. 30분 거리가 이 골목 저 동네 돌아서 손님 태워 가느라 꼭 두 시간이나 걸렸다. 버스를 타도 손님이라곤 한 두 명이 고작. 거의가 흑인이거나 유색인들이다.

그렇다면 택시라도 자주 다니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고속버스 터미널에 가면 두서너 대 대기하곤 있다 하나 손님 찾아 거리를 돌아다니는 택시는 없고 전부 다 필요시 전화로 불러야 하는 콜택시다. 그만큼 각자가 다 제각금 차를 가지고 다닌다는 얘기다. 남녀노(소만 빼고) 누구나가 운전을 하는 건 당연지사, 장애인은 물론이고 걷기도 힘겨운 할머니조차 손수운전이다.

그런 미국에서 운전을 안 하는 사람이 있다. 손님 중에 인상은 헐크 같고 덩치는 오백 평이 넘는 거구의 남자가 바로 무면허 깡패로 불리는 그 사람이다. 40대의 백인인 그는 인상도 험한 데다 팔이며 어깨 손등에도 문신을 새겨 조폭깡패 보스 같아 보이는 인물이다. 마피아의 행동대원쯤 되어 보이는 고약한 인상의 그가 무면허인 이유는 교통단속 중이던 교통순경을 마구 폭행해 운전면허가 영구정지되었다는 소문이다. 대단해 뵈는 성질머리를 경찰에게 못되게 부린 모양이다. 폭력행사가 첫 번째 그다음은 공무집행 방해에다 집기 파손... 뭐 그런 거겠지.

하여간 그런 연유로 면허가 없다 보니 늘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닌다.(절대 전용 운전기사가 아닌 친구 도움받는 케이스) 무섭게 생긴 탓에 괜히 겁이 나는 그가 한번은 가게에 와서 자신이 원한대로 물건이 잘 안 나왔다며 다시 해달라는 것. 내가 보기엔 괜찮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생트집이다. 하자 없이 말끔한 새 옷도 아닌 것을 그냥저냥 입으면 되련만. 순간 나도 모르게 C이~하는 불만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국말로야 욕설의 앞문자이지만 그가 무슨 소린지 알 턱 있으랴 싶었는데 얼씨구 담박 안 좋은 대꾸로구나 눈치를 챘다. 그런데 의외로 목소리가 졸아들며 아니 됐어.... 하고는 그대로 갖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다음부터는 가게에 오면 내 눈치를 슬슬 살핀다. 또 무슨 욕이나 들어 먹지 않을까 싶은 듯이.

감히 그 덩치에 그 인상에 그 행색에 동양의 쪼끄맣고 빼빼하니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여자가 대들다니...

이건 보통 적수가 아닌 모양이다,라고 혼자 지레짐작이라도 했는지. 동양무술 유단자 같은 대단한 파워를 숨기고 있지 않고서야 어찌 내게 언감생심 대적하랴, 싶었으리라. 아마도 나를 동양의 쿵후 유단자나 무슨 비술을 쓰는 사람으로 안 건 아닌가도 싶다. 요새도 그가 오면 나는 속으로 혼자 웃는다. 그래, 나는 조폭 대모다.



모자 벗고

인디언들은 아기가 태어나 그의 이름을 지을 때 우리처럼 육십갑자를 짚는 게 아니라 거의가 직감적으로 떠오르는 영감에 따른다고 한다. 또는 그 당시 눈에 띈 자연현상을 이름에 그대로 차용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전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 에서 본 바대로다.

여식에게도 필히 항렬을 따르게 하거나 일제치하의 순자 영자 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요즘은 한글이름을 선호하는 것이 유행인 우리. 이처럼 이름 짓는데도 시대 따라 유행이랄까, 일종의 흐름이 있는 것 같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로 1900년대 초에는 남자 이름은 보편적으로 죤, 여자는 메리가 유행이었다. 이후 남자는 로버트 제임스 마이클이 1900년대 중후반을 풍미하다가 요샌 야곱이 인기 있는 반면 여자는 오랜 기간 동안의 메리시대를 거쳐 리사 제니퍼 제시카 애슬리 에밀리가 인기를 탄단다. 그러고 보니 그 이름들은 영화배우 이름이나 소설의 주인공으로 한두 번씩은 들어본 이름들이라 낯이 익다.

미국인들은 특이하게도 조상의 직업을 그대로 성에 사용하기도 한다, 카펜터니 테일러니 스미스라 칭하는 게 흔한 데다 색깔을 이름에 넣기도 퍽 즐긴다. 브라운이니 그린이니 와잇이니 블랙도 있다. 흑인이 블랙이라면 또 모를까 허여멀쑥한 백인 신사가 블랙이란 성을 쓰니 좀 우습게도 여겨진다. 하긴 검다는데 태생적으로 주눅들은데다 색에 대한 컴플랙스 내지는 근원적인 자격지심이 있는지라 흑인이라면 성에 굳이 블랙을 쓰지도 않겠지만.

오늘 일터에서 한 손님의 이름을 컴퓨터에 입력시키다가 혼잣웃음을 지었다. Hats off라니. 하긴 천연덕스럽게 여우라 불리는 이름도 있고 늑대도 있고 나무도 있는 등 별 희한한 성명들 소유자가 많긴 하지만. 그녀는 맨날천날 모자를 쓰고 다니던 부모라도 두었는지 햇어프란다. '모자 벗고'라는 성이니 이건 정말이지 태어날 때 주먹 쥐고 나왔대서 '주먹 쥐고' 하는 인디언 식 이름이나 막상막하 수준이다. 그녀를 다시 보니 틀림없는 백인이나 윤기 나는 흑발로 미루어 어쩐지 인디언 혈통 같기도 하다. 물론 혼혈에 혼혈인 사람들이니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쌍꺼풀진 눈은 동그라나 검은 눈동자인 데다 예리하지 않은 콧날이며.... 어찌 보면 남미계 같기도 하나 남미인들은 대부분 큰 눈에 콧대가 특히 높고 윤곽선이 분명하다

동양인과 백인의 결혼에서도 흔히 알고 있듯 백인이 우성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거의 동양계로 밖에는 분류될 수 없는 의아한 2세가 태어나긴 하더라만. 한국인 손님 중에 국제결혼을 한 케이스인데 그녀의 딸내미는 틀림없는 한국애, 그래서 속으로 소설 한편을 쓰며 아마도 전실자녀를 데리고 재혼해 왔나 보다 했으나 무슨 말끝에 나온 얘기지만 미국인이 틀림없는 아빠란다. 그다음 유심히 살펴보니 현재 제 아빠의 모습이며 분위기가 많이 엿보이긴 한다. 그런 반면 한국에 파견 나온 선교사와 결혼을 해서 자녀 셋을 둔 테레사 씨는 자녀가 다 영락없는 서양사람들이다. 어디에서도 동양인 피가 섞였음을 감지 못할 정도다. 2세가 그러하니 3세쯤 되면 한국인 할머니의 존재는 완전히 묻혀 그야말로 전설감이 아니 될지.

역시 미국은 뭇 인종이 한데 녹은 용광로 안이며 인종 전시장이라는 말처럼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산다. 처음엔 다 백인은 그 사람이 그 사람 같더니 이제는 영국계 독일계 이태리계 러시아계 터키계 그리스계 대충 구분이 간다. 억양에서도 그러하지만 윤곽이 각자 조금씩 다르다. 하긴 그래서 게르만 족과 유태인을 구별한다고 영화 '25시'며 '신들러 리스트'에선 얼굴에다 일정 틀을 갖다 대고 재며 야단 아니던가. 세계사 어디를 뒤져도 우리처럼 선명한 단일민족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더니 이건 분명 자긍심을 지닐만한 일이 아닐까도 싶다. 혹자는 그러한 편벽된 민족주의가 위험하다고도 하지만 요새 들어 용광로 속 미국의 불안스러운 사태들과 마주하고 보니 여러 생각이 겹친다.



일일일선


삼각 스카프를 맨 짙은 초록색 단복. 예전 학창 시절 걸스카우트 때의 단복은 그랬다. 걸 스카웃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만리포에 가서 콩밭을 매 주던 어느 뜨겁던 여름. 휴식 시간에 해당화 향기로운 모랫벌을 지나 해수욕장에 가서 물놀이를 하다가 다들 등이 햇볕에 심하게 타 밤새 눕지도 못하고 끙끙대던 아스라한 기억이며…


지금도 여전한 지 모르겠으나 준비!라는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하듯 손가락 셋을 이마로 올리던 인사.
그리고 一日一善을 모토로 한 걸 스카우트 정신만은 아직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며칠 전. 초등학교 저학년쯤인 백인 소녀를 데리고 한 엄마가 와서 스카우트 단복인 조끼에 기능장을 붙여달라는 부탁을 했다. 간단한 일이라 나도 할 수가 있기에 성의껏 마무리를 해서 그 아빠 편에 보내주었다. 수고료는 포함시키지 않은 채로.


어제 조용하고 차분한 부인인 소녀 엄마가 오면서 천사 그림이 든 땡큐카드를 건넸다. 더불어 <친구>란 글씨가 새겨진 스카우트회에서 만든 과자를 선물로 들고 왔다. 카드 안에는 어린아이다운 서툰 글씨로 또박또박 쓴 고맙다는 인사와 귀염성스러운 스마일 그림이 싸인처럼 들어 있었다. 정성 어린 선물에 고마움을 표하고는 나도 오래전에 걸 스카우트 단원이었노라 했다. 하여 그 정도의 봉사는 당연한 일이라 하니 더욱 반가운 듯 활짝 웃으며 우정의 악수를 청하던 그녀.


포장지 속의 과자 상자에는 걸스카웃 소녀들이 둥글게 스크럼을 짜고 있는 사진이 보였다. 과자마다 표면에 각국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우연일까, 첫머리에 들어있는 것이 한글의 '친구'다. 무슨 부호 같은 그리스어의 친구, 아보키는 말레이 어로 친구요 아미카는 이태리어로 친구다. 한문으로 붕우라 쓰인 중국어 친구에 스페인어로 아미고라 쓰인 친구는 물론 영어로도 프랜드라는 단어가 돋을새김으로 들어가 있는 특별한 비스켓.


입안에서 살살 녹는 쵸코맛도 좋지만 그 가족의 살뜰한 마음씀이 더욱 달디달았다. 카드는 창틀 위 우리 가족사진 옆에 세워 두었다. 분홍빛 천사가 나에게 날아와 안기는 기분이 드는 그 카드 선물은 어쩌면 항시 잊지 말고 걸스카웃의 봉사정신을 실천하라는 일깨움인 듯하다.



아름다운 노년


오래 살면 부부는 닮는다더니 참 분위기가 많이도 닮았다. 웃는 얼굴이며 생활처럼 자연스레 구사하는 유모어도 그렇고 장난질 치는 것도 비슷하다. 계속 농을 주고받지만 어디까지나 서로에 대한 존경을 바탕에 깐 채다. 남편의 양복 치수를 재는 도중 계속되는 아내의 참견과 잔소리에 우리 엄마야, 하자 아내는 우리 집 말 안 듣는 개구쟁이 아들이야, 응수한다.


가게에 꽂아놓은 장미와 안개꽃이 예쁘다고 호들갑인 아내를 보며 17세 소녀라고 나이를 거꾸로 (실제는 71세) 말하는 남편의 기지도 빛난다. 둘이 함께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다는 얘기를 할 적에도 신이 났지만 할머니는 그래도 친구들이랑 오붓이 다녀온 멕시코 여행이 더 좋았다며 눙을 친다. 다음번에도 남편 떼버리고 여자들끼리 가야겠다고 하니 남편이 짓궂게 한마디 보탠다, 할멈 없으니 집안이 천국이더라고. 이쁘게 티격태격 아옹다옹하며 서로 장난질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정겹게 두 분 사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노부인이 첨 왔을 때 자기 목걸이를 내보이며 자랑을 했었다. 이게 무슨 글자인지 아느냐면서 18금 동그란 메달에 한자로 사랑 애(愛) 자를 양각한 목걸이를 내게 자랑했다. 오랫동안 그 글자를 자기 이름으로 알았다는 그녀.(남편이 그 선물을 주며 거기에 아내 이름을 동양식으로 새겼다고 했단다)


남편이 홍콩 출장 가서 사다 준 것으로 40년도 더 된 목걸이라며 자랑하던 그녀 얼굴에 소녀 같은 미소가 어렸다. 그러면서 보여주던 패스포트 안의 흑백사진 두 장. 한 장은 결혼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승마를 즐기는 아름다운 처녀 사진인데 젊은 날의 자신이란다. 나부끼던 금발은 은발로 변했고 미소 곱던 그 아내는 지금 약간의 수전증에 쳇머리를 심하게 흔든다.


반면 남편은 큰 키에 여전히 체구 꼿꼿하고 은발을 단정히 빗어 넘긴 아주 핸섬한 신사다. 가게를 나서며 아내손을 꼭 잡고는 차로 안내해 주는 자상한 남편.
아내는 슬그머니 손을 빼더니 허리춤에 끼어든 남편의 윗옷자락을 바로잡아 준다. 내년 금혼식날을 내게도 통보해 주면 한아름 장미꽃바구니를 선물하고 싶게 하는 분들이다. 나이 들어도 여전히 관심과 사랑 보내며 변함없는 친구 사이처럼 서로 신뢰하고 존경하며 사는 그분들,


이혼울이 높다지만 제대로 해로하며 사는 미국의 전형적인 부부상을 보여주는 두 분이다. 동부라는 보수적인 지역이라서 만도 아닌 대부분의 중산층 부부들은 교회를 섬기며 착실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화목하게 살아들 간다. 아주 고요하고 잔잔한 일상 속에서 단란한 가정을 가꿔가면서. 실제 이들과 가까이서 지내보니 통상 듣던 것처럼 이혼 가정이 많은 편도 아니고 서로 아끼고 평생을 사랑하며 사는 부부들이 훨씬 많은 건강한 미국사회였다. 긍정적인 면에만 굳이 귀 기울인 것도 아닌데 꽃향기처럼 은은히 번져 나를 미소 짓게 하는 사람들. 좋은 사람들이 따뜻하게 엮어가는 삶의 이야기는 아직도 더 남아있다.



풍경소리


한국을 떠날 때 인터넷 산행 동호회에서 풍경을 선물했다. 다 두고 떠나며 간단히 꾸린 행장 속에 그 풍경을 넣어왔는데, 처음 입주한 아파트 현관에 매달았었다. 대륙의 거칠 것 없는 바람이라니. 그 자유분방함과 호방함이라니.


밤새 바람 거칠던 이튿날 아침. 풍경에 달린 물고기에 하얀 메모지가 붙어있었다. 수인사를 나눈 바 있는 이층에 사는 노르웨이인의 짧은 메모 내용인즉...
땡그랑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쳤으니 선처 바란다는 정중한 글이다. 풍경에 관한 내 사연을 알리 없는 그들이다. 풍경을 당장 철수시켰다.


그 이후 풍경소리를 그냥 잠재워 둘 수 없어 내 놀일터(재밌게 노는 내 일터) 뒷문에 달아놓았다 안성맞춤이었다. 풍경은 창공에다 물고기를 풀어놓아 주었다. 배경 역시 더없이 훌륭하다. 푸르게 펼쳐진 숲과 하늘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는 물고기. 여기서라면 풍경소리에 잠 설칠 사람도 없고 문제 될 하등의 요소가 없으므로 대자유를 누릴 수 있다!


에어컨이나 히터를 별로 탐탁해하지 않는 체질이라 가능하면 가게 앞뒷문을 열어두고 산다. 자동차 소음도 과히 없고 매연 따위 염려 없는 장소라 문을 열어놓으면 나비도 들랑날랑, 다람쥐도 기웃기웃, 멧새도 더러 포르릉 날아든다. 이참저참 그처럼 환기를 위해서도 문을 자주 열어두는 편인데 맞바람이 치면 공기유통이 절로 될 뿐 아니라 그때마다 풍경이 내게 맑은 목소리로 신호를 보낸다. 댕그랑 댕댕~


그 소리에 찌뿌드드한 심신에 생기가 되살아나고 충혈된 눈의 피로도 좀 가시는 듯하다. 자연스레 일조차 버겁게 느껴지지 않으니 쉬 지치지도 않는다. 어거지로 해내야 하는 노역이 아니라 이런 과정도 겪고 지나가야 하는 거라면 쾌히 하는 거다. 살다 보면 이 또한 생길 수 있는 변수의 하나일 따름이니까. 어찌 좋은 몫만 바라랴. 주시는 대로 받을 밖에는. 밖엔 싱그러운 신록의 숲에서 새들 노래하고 온데 인동초 향이 퍼지는 가운데 풍경소리와 더불어 그렇게 사는 나의 하루하루.


2001~2014 그 사이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