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 이끄심으로 여기에

by 무량화

용두산공원에서 대청동으로 넘어가는 은행나무 길.

맞은편 언덕에는 시비가 여럿 서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다.

은행잎 노랗게 쏟아지는 만추, 시비 앞에서 문우들과 사진을 찍었던 게 어언 삼십 수년 전이다.



그날은 여류문학 회원인 젬마 씨 차남이 성당에서 혼배미사를 거행하는 날이었다.

결혼 축하객인 우린 미리 공원에서 만나 주변 풍경을 사진에 담으며 가을을 즐겼다.

혼사 덕에 그날 처음으로 중앙성당 미사에 참례해 봤다.

젬마 씨 부군은 월남한 가계인 데다 아들만 둘을 두었기에 가족이 단출한 데다 인척마저 별로 없었다.

더구나 장남은 사제가 되어 외국에 나가있었기에 이래저래 혼주인 젬마 씨는 경황이 없었다.

아들 친구가 이날 축의금을 받았는데 식 마치고 가족사진까지 찍은 다음 축의금 가방을 가지러 갔다.

기가 막힌 일이 발생한 바로 뒤였다.

이모님이라는 한복 입은 부인이 와서 어머니가 돈 가방을 챙겨 오라 했다기에 건네주었다는 것.

깜쪽같이 사라져 버린 축의금, 침착한 성품의 젬마 씨도 그때는 무척 당황한 기색 역력했다.

남편이 시청 국장직에 있었고 젬마 씨는 문단 원로였으니 부조받은 금액도 적잖았을 터다.

중앙성당, 하면 경사스러운 결혼식 날 있었던 축의금 편취 사건이 퍼뜩 떠올랐고 근처에 가도 들어가 본 적은 없다.



세월이 흘러 미국에 간 우리 가족은 성당에 나갔다.


성가정을 이루라는 신부님 뜻에 따라 우리는 요셉과 마리아로 세례성사를 받게 되었다.


우리에게 세례를 주신 신부님은, 우리가 부산에서 왔다고 하자 국제시장 가까운 중앙성당에서 피난시절을 보냈다고 하셨다.

원산 교구에서 온 코흘리개 소년은 제의방을 거처 삼아 먹고 자면서 소신학교에 들어가 훗날 사제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클레멘스 신부님보다 젬마 씨 생각부터 나는 중앙성당인데 지나다가 우연히 네 시 미사에 참례하게 됐다.

오..... 우연이라니, 당치도 않다.

우리가 속으로 온갖 계획을 세울지라도 발걸음 이끌어 막상 이루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거늘.



해방 후 미군 군종 신부의 협조로 일본 사찰인 지은사를 인수받아 보수를 거쳐 1948년 축성식을 가진 중앙성당.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한 이명우 야고보 신부님 이래 수많은 사목자가 거쳐가며 어언 74년이 흘렀다.

육이오 전쟁 때는 월남한 피란민들의 피난처가 되어주었고, 전후 구호활동의 본거지로 전쟁미망인과 고아들을 적극 돌본 중앙성당이다.

특히 메리놀 수녀원에서 '나자렛의 집'을 운영하면서 성가 신용협동조합이라는 한국 최초의 신협을 창립시켰다.

1957년 부산교구가 설립되면서 주교좌성당으로 설정되어 90년대 중반까지 부산교구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현재의 대성전은 1973년에 축성되었으나 98년 성당을 증개축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남천성당이 주교좌성당으로 설정되면서 교구의 중심축은 두 곳으로, 여전히 원도심 상권의 중심을 지키는 중앙성당이다.

오후 시간인데 그래도 시내 중심가에 있는 성당이라서인지 미사 참례자 수가 많은 편이었다.

날씨 하도 쾌청해 원도심을 중심으로 한 볼거리 둘러볼 겸 용두산공원에 올랐다가 시비를 사진에 담으며 언덕 내려가던 길.


그런데, 한동안 냉담상태로 길 잃고 방황하던 양 넌지시 발길 이끄신 분 있으니 이것이 바로 시절인연이 닿았음인가.

공원이 끝나는 곳에 중앙성당 정문이 열려있었고 빨려 들듯 저절로 성당에 들어가니 마침 네 시 미사가 막 시작됐다.

덕택에 미사 참례를 할 수 있었으니 오늘도 은총 가득한 하루. 두루 고맙습니다.




















특히 메리놀 수녀원에서 '나자렛의 집'을 운영하면서 성가 신용협동조합이라는 한국 최초의 신협을 창립시켰다.


1957년 부산교구가 설립되면서 주교좌성당으로 설정되어 90년대 중반까지 부산교구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현재의 대성전은 1973년에 축성되었으나 98년 성당을 증개축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남천성당이 주교좌성당으로 설정되면서 교구의 중심축은 두 곳으로, 여전히 원도심 상권의 중심을 지키는 중앙성당이다.


해방 후 미군 군종 신부의 협조로 일본 사찰인 지은사를 인수받아 보수를 거쳐 1948년 축성식을 가진 중앙성당.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한 이명우 야고보 신부님 이래 수많은 사목자가 거쳐가며 어언 74년이 흘렀다.

육이오 전쟁 때는 월남한 피란민들의 피난처가 되어주었고, 전후 구호활동의 본거지로 전쟁미망인과 고아들을 적극 돌본 중앙성당이다.

특히 메리놀 수녀원에서 '나자렛의 집'을 운영하면서 성가 신용협동조합이라는 한국 최초의 신협을 창립시켰다.

1957년 부산교구가 설립되면서 주교좌성당으로 설정되어 90년대 중반까지 부산교구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현재의 대성전은 1973년에 축성되었으나 98년 성당을 증개축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남천성당이 주교좌성당으로 설정되면서 교구의 중심축은 두 곳으로, 여전히 원도심 상권의 중심을 지키는 중앙성당이다.


오후 시간인데 그래도 시내 중심가에 있는 성당이라서인지 미사 참례자 수가 많은 편이었다.

날씨 하도 쾌청해 원도심을 중심으로 한 볼거리 둘러볼 겸 용두산공원에 올랐다가 시비를 사진에 담으며 언덕 내려가던 길.


그러나 한동안 냉담상태로 길 잃고 방황하던 양, 넌지시 발길 이끄셨으니 시절인연이 닿았던가.


공원이 끝나는 곳에 중앙성당 정문이 열려있었고 빨려 들듯 저절로 성당에 들어가니 마침 네 시 미사가 막 시작됐다.

덕택에 미사 참례를 할 수 있었으니 오늘도 은총 가득한 하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