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공항 가는 길을 사전답사하려고 강서구로 향했다.
공항 이용은 번번 아들 차로 이동했는데 일요일 산행 약속이 있으므로 알아서 공항에 가야 한다.
언니네와 제주공항에서 오전에 조인하기로 했으니 일찌감치 서둘러야 할 터.
낙동강 건너 대저 지나자 지하철 저 아래로 핑크 뮬리 단지가 보였다.
앞뒤 생각할 거 없이 강서구청 역에서 무조건 하차했다.
3번 출구로 나와 지상 높직이 뻗어있는 경전선 철도길 아래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꽃길로 가는 벽면에 적힌 '너도 왔으면 좋겠어'란 문구가 정겨이 다가왔다.
몇 년전, 핑크뮬리가 한창이라는 소식 듣고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막상 가보니 빈 벌판이었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몰려들자 방역 문제로 앞전에 몽땅 다 베어버렸다고 했다.
핑크뮬리에 바람맞은 대신 강바람만 폐부 씨원하도록 쐬고 왔다.
먼 길 헛걸음하게 한 그때 벌충인가, 뜻밖의 핑크뮬리 축제라니 기대하지도 않았던 초대라 더 반가웠다.
제철 맞은 핑크뮬리는 들녘 가득 펼쳐놓은 주아사 피륙처럼 아른아른 고왔다.
들판 가득, 적당히 이스트 넣어 반죽한 핑크빛 빵이 오븐에서 포슬포슬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무더기 무더기 솜사탕 나무막대에 휘감기던 운동회날,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청백전 열리며 함성 소리 들리는 듯 하여씨다.
감성파 소녀의 파스텔화를 보듯 부드러우면서도 몽환적인 느낌도 들었다.
갈대, 억새, 핑크뮬리로 불리는 분홍 쥐꼬리새, 다들 벼과 식물로 군락을 이루어서, 대저 생태공원에는 핑크 뮬리 외에도 갈대 억새 무리 져 바람 따라 서걱거렸다.
늪가에는 부들과 골풀 고랭이도 이삭 맺어 제법 알뜰하게 어우러졌다.
언덕길엔 가을 야생화인 쑥부쟁이 구절초 환삼덩굴 도깨비바늘도 꽃 함빡 피워 종류별로 흐드러졌다.
한층 더 까칠해진 환삼덩굴이 억새 줄기 휘감아 오르다 지나는 옷깃 설핏만 스쳐도 닥치는 대로 잽싸게 엉겼다.
이 풀은 하천변이나 빈터 어디든 뿌리내리면 그악스레 자리 넓혀가는데 보푸라기같이 피는 흰 꽃은 지독한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어릴 적 악연으로 멀찍이서 환삼덩굴이 보이기만 해도 길을 돌아갈 만큼 기피하는 이유는 알레르기 때문이 아니다.
언니가 내 그네를 밀어주다가 너무 세게 미는 바람에 언덕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때 하필이면 환삼 덤불에 넘어져 무릎을 여러 곳 긁혔다.
덩굴에는 미늘 같은 잔 가시가 촘촘 박혀있어서 덩굴을 거슬렸다 하면 당장 오돌도톨 성 나 붉어졌다.
오뉴월이라 아직 잡초 무성하지도 않은 철, 그러나 한삼 가시에 긁힌 무릎 상처가 덧나 병원 치료를 다 받았다.
엎친 데 덮친다고 주사를 맞으려 알콜 약솜을 문지르자 앗 쓰라려, 싶더니 간호사가 그 순간 몹시 당황했다.
실수로 약솜에 주사약병 유리가 튀어 들어갔고 그걸 모르고 문대 더 큰 상처가 생겼던 것.
아마 지금 같으면 의료사고로 난리 치르겠지만 50년대 인심이야 쉬쉬하곤 대신 치료비 받지 않는 걸로 에꼈지 싶다.
도깨비바늘은 멍이를 데리고 산행이라도 할라치면 녀석 온 전신에 가시 갑옷을 입히곤 해 떼주느라 한참 실랑이질을 해야 했다.
이 식물 역시 마뜩잖은 게, 씨앗 끝에 미늘 같은 거스름이 있어 한번 붙으면 저절로는 떨어져 나가질 않는 독종.
귀가해서 옷을 털다 보니 오늘도 도깨비바늘 몇 개가 소문 없이 날 따라왔지만 밉지 않았다.
핑크뮬리 구경하다 주변에 흔한 잡풀들 속에서 지난 추억 떠올려 보는 재미도 미상불 나쁘진 않았으니까.
티 없이 깊고 푸른 하늘에 흰 구름 높이 흐르고 바람결 삽상한 오후.
예상치 않았는데 생광스럽게도 꽃놀이패 되어 잘 놀다가 공항 들러서 늦게야 돌아왔다.
생태계 교란식물들/가시가 지독하게 엉기는 환삼덩굴/미국 산야에 흔한 외래종 가을꽃 양미역취/꽃은 청순한데 씨앗 여물면 마구 달라붙는 도깨비바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