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눈여겨봐 뒀던 코스다.
감산 2리 찻길에서 산책로 따라 굴메오름으로 향했다.
청량한 날씨, 바람결도 부드러웠다.
왕자암 초입에서는 한들거리는 쑥부쟁이 꽃 무리도 만났다.
그런가 하면 산자락 여기저기 나부끼는 햇 억새 지천이었다.
이번엔, 군산이 첫 산행이라는 친구의 길라잡이로 앞장섰다.
군산(軍山), 군뫼, 굴메로 불리는 원추형 이 오름은 안덕면 창천리 산 3-1번지에 위치했다.
군산은 서산(瑞山)으로도 불리는 오름이니, 이름에도 상서로울 서(瑞)가 붙었듯 아무 데나 길하고 경사스럽다는 글자 넣을까.
예로부터 명당자리로 소문난 곳이자 산남 지방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눈 맛 시원한 조망권이 압권이기도 하다.
전망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오름인 바, 실지로 난드르(대평리) 넓은 들과 예래 포구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북동 방향에 의연스러운 한라산 웅자마저 이날은 눈높이가 엇비슷해 자세 나지막했다.
군산 오르다가 숨 돌릴 겸 잠깐씩 멈춰 뒤돌아보면 한라산과 마주하기 일쑤, 한라산은 언제나 저만치서 의연스레 그 자리를 지켰다.
이처럼 한낮임에도 한라산이 자태 명료하게 드러내기 쉽지 않은데 금방 세수한 얼굴 같이 말간 백록 봉우리 육안으로 또렷이 보였다.
산정 가까워지자 수시로 접하게 되는 한라산, 과연 제주섬 그 자체인 한라산이다.
전면 난드르 바다는 은쟁반같이 뽀얗게 빛났고 박수기정 수직절벽도 선연했다.
그뿐인가.
서쪽으로 시선 돌리자 아하! 너로구나!
낯익은 서귀포 앞바다에 뜬 범섬 문섬 섶섬 차례로 얼굴 내밀고 강정항 법환포구는 청푸른 바다 배경이라 몹시도 새하얗다.
혁신도시의 랜드마크인 월드컵경기장 하얀 나래는 곧 비상할 듯, 중문 관광단지며 예래마을 정경이 그림 같다.
이만큼도 높이라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 도시조차 미니어처 모형물보다 작디작다.
모래알 정도도 못 되는 인간사, 얽히고설켜 오늘도 서로 지지고 볶는다.
국가 간의 전쟁도, 나라안의 정쟁도 무슨 철천지원한 사무쳐 극단으로 치닫는지.
갈등 구조라도 만들어야 씹는 재미있어서인가.
제풀에 과열된 양극단의 열혈 전사들 열 식힐 처방전은 없는 걸까.
여유 시간에 고전이라도 펴 들면 좋으련만.
얼른 발상의 전환부터 해야 했다.
두서없이 떠오르는 강퍅진 세상 잡사 머리 흔들어 털어냈다.
다시 산방산부터 빙 둘러 서쪽으로, 거기서 북쪽 향했다가 동쪽으로 남쪽 바다로 시선을 돌린다.
서녘으로 시선 돌리면 산방산 송악산이 저만치 보이고 가파도 마라도가 가물가물 떠오른다.
산방산 우뚝하고 단산에 이어 서쪽 뭇 오름 주르륵.
돌올하게 솟은 산방산은 잘 생긴 한 덩어리 수석이다.
바로 곁 단산 바굼지오름과 모슬봉 나란히 이웃하고 서쪽으로 대병악 소병악을 시작으로 뭇 오름들이 실루엣 곱게 떠오른다.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한 폭의 풍경화는 한라산 그 발치 해안선 두루 아우른 채 마라도를 비롯 송악산, 형제섬, 가파도가 한눈에 든다.
중문단지와 신시가지 월드컵경기장이며 서귀포 원도심 일원뿐 아니라 시계 맑게 트인 날은 동쪽 끄트머리 일출봉까지도 보인다.
전망터로 따지자면 과연 조망권의 끝판왕이다.
제주 오름 중 제일 높은 곳은 산방산이며 두 번째가 군산이지만, 출입이 가능한 오름으로 치자면 가장 높은 오름답다.
처음 대평마을에 갔을 적이다.
곰인형 귀처럼 산봉우리가 둘인 귀여운 군산을 보고 무작정 올라가 보기로 했다.
당시 이 산을 오를 때는 산지물에서부터 시작했다.
마을길, 언덕길, 산길을 꾸역꾸역 지치도록 걸어야 했다.
정상 뿔바위에 잠깐 섰다가 서쪽으로 한참 기운 태양 각도에 놀라 허겁지겁 반대편 산길로 내려왔다.
그러나 웬걸! 봉긋한 동산 같던 산은 도무지 끝도 없었다.
만용이었다.
군산에 대한 검색을 해보니 제주 오름 중에 가장 면적이 넓은 곳이 여기였다.
오름 가운데서도 걸출한 오름의 맹주임을 뒤늦게 안 것.
반면 차를 이용하면 정상까지 오분만 걸어도 닿을 수 있는 산이기도 했다.
360도로 탁 트인 산정 뷰가 끝내준다는데 정작 이날은 뿌연 대기로 시계도 트이지 않았다.
조망권에다 일출과 낙조의 명소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가족끼리 놀러 온 젊은이가 대평뜰까지 간다고 하자 차를 태워준 덕에 어둡기 전에 겨우 하산을 했더랬다.
위치 정보도 옳게 파악하기 전의 무모한 산행이었다.
그 후 정면, 양 측면, 후면은 물론 월라봉 통해서도 사방으로 공략해 본 군산이다.
일제 진지동굴이며 사자암, 눈썹바위, 금장지, 애기업게 돌, 영구물 구시물 등 산체 곳곳에 찾아볼 거리도 많다.
언뜻 보면 아기 업은 모습과 닮아 애기업개돌이라 불리는 바위는 굴메오름 남사면 미륵골에 자리하고 있다.
미륵골 경사지에는 병풍바위를 비롯 우뚝불뚝 치솟은 기암들이 굴메오름 정상을 떠받들고 서있다.
산빛 수척해지는가 싶더니 그새 추색 완연해진 숲길.
기립한 암벽 틈새에서는 약수인 구시물이 똑또그르르 흘러내렸으며, 저 아래 골짜기 푸른 초장이 펼쳐진 곳에 목부들이 모여 살았다 한다.
이 마을에는 희망찬 전설이 전해져 내려왔다.
군산의 정기를 받은 아기장수가 태어나 미륵골 농궤바위 문이 열리면 갑옷, 말, 보검이 나오리라는 예언을 그들은 믿고 기다렸다.
우렁찬 고고성을 발하며 태어난 아들을 나라 구할 장수라 여긴 테우리는 아기를 업고 농궤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간절한 심사로 아무리 기다려도 종무소식이라 화가 난 그는 망치를 들어 바윗전을 내리쳤다.
순간 천둥번개가 일며 폭우 속에서 벼락이 내리쳐 테우리는 아기를 업은 채 돌이 됐다는 슬픈 전설이....
여기에는 이렇듯 명품 바위들이 산재해 있는데 전날 내린 비로 계단길이 미끄러워 애기업개돌까지만 내려갔다가 되돌아왔다.
비양도 애기업개돌/마라도 애기업개당/월라봉 애기업개돌(애기 업어주며 일손 돕는 천자)
맨 처음 애기업개돌 설화를 듣기는 마라도 ‘애기업개당’ 또는 ‘할망당’ '비바리당' 등으로 불리는 본향당(本鄕黨)에서다.
허술해 보이는 둥그런 돌담 안에 마련된 제단, 이는 바닷길의 안녕을 지키는 본향신을 모시는 단이라 했다.
해녀를 따라왔다가 사연이 있어 외진 섬에 홀로 남겨진 애기업개의 애닮은 전설은 시커먼 돌 제단의 희끗한 촛농으로만 흘러내리고 있었다.
두 번째로 애기업개돌을 만난 곳은 감귤박물관이 들어선 월라봉 산책로 입구에서다.
서국이란 사람의 아내가 품 일을 다녀왔는데 아기 봐주던 애기업개가 굶주려 아기를 업은 채 돌로 변해 있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본 서국 아낙은 구덕을 등에 진 채로 바위가 됐다는 서글픈 전설이 담겨있는 바위로, 서로 마주 보고 서있다.
또 한번은 한림항에서 비양도에 들어갔을 적으로 섬을 한 바퀴 돌다가 해안가에서 애기업개돌을 본 적이 있다.
어느 땐 파도에 잠기기도 한다는데 물이 빠진 시각이라 그럴싸한 윤곽을 접할 수 있었다.
어느새 산정.
심호흡 서너 번으로 마음자리 환기시키고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안덕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은 완만해서 좋다.
영구물만 지나면 마을길, 온데 귤밭이라 노르스름 익어가는 감귤 위로 한라산이 무뜩 들어선다.
차도가 점점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