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 그들먹, 가을걷이한 듯 넉넉한 날

by 무량화


미리 특별 부탁해 놨던 쌀이다.

드디어 도정이 끝나 예약해 둔 햅쌀을 갖고 왔다.

하논을 사철 들락거리며 농사짓는 걸 눈으로 직접 봐왔다.

논갈이를 한 다음 모판 만들어 모내기하고 벼 이삭 맺어 나락 영글자 수확하기까지의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셈이다.

바로 곁에서 직접 관찰한 바로는, 거의 모든 작업이 친환경 유기농법을 따르는 데다 용천수로 농사를 지었다.

요즘 이만큼 신뢰할 수 있는 논농사처가 달리 있을까.

논고랑에서 우렁이, 거머리, 메뚜기가 튀는 걸 경이로운 눈으로 지켜봤다.

이는 아주 드문 일이다.

그래서 농사짓는 부부에게 일부러 청을 넣었던 것.

추수 후 도정해서 일괄 구매처로 보낸다길래, 그전에 한집에서 일 년 먹을 양만큼만 따로 팔라고.

좋은 쌀 혼자 먹으려니 걸려서 아들네와 언니네도 조금씩이나마 부쳐줄 작정이다.

택시 타고 올 요량으로 30킬로를 샀다.

마침 쥔장이 트럭으로 집에까지 배달해 줬다.

인심 좋은 쥔 아주머니가 수확한 고구마를 한 아름 담아주었다.

잘 생긴 청둥호박도 두 덩이 짐칸에 올려놨다.

얻은 떡이 두레 반이라더니, 지난번에도 이웃들이 둥실한 호박에 고구마며 감이며 귤까지 그들먹하게 안겨줬다.

청둥호박으로는 호박지(호박김치), 호박죽, 호박부침을 해 먹는데 호박나물은 제주 와서 처음 먹어보고 배웠다.

쥔장에게 또 다른 청도 넣었다.

근처 밭을, 보자기 크기만큼만 빌려주면 상추를 심어보겠다고 하자 쾌히 그러란다.

하얗게 꽃이 핀 냉이가 보여, 밭둑에서 잠시만에 한 움큼 캤으니 국 끓이면 봄내음 서둘러 퍼지리라.

쌀도 한 포대 옮겨다 놨겠다, 밭농사처도 찜해 뒀겠다, 절로 뿌듯하니 배가 부르다.

낟가리 높이 쌓아둔 대지주 기분이 이러할까, 곳간 가득 찬 부자가 된 듯 흐뭇해서 입꼬리가 올라갔다.

추석은 이미 지났고 아직 추수감사절은 아니라도 괘않다.


호박파이 대신 호박죽에 호박나물로 청둥호박파티를 하기로 한다.

햅곡으로 밥 짓고 햇과일 정히 씻어, 두루 넉넉히 베풀어주신 하늘에 감사드려야겠다.



미국 살 적에도 댕스기빙데이가 되면 터키 요리보다는 호박파이를 더 즐겼다.

하긴 평소 토종 식성다이 하루 세끼 한식만 고집했던 터다.

밥을 먹어야 제대로 식사를 한 것 같지, 끼니를 빵으로 때운다는 건 어림없는 일이었으니까.

더구나 육식을 거의 안 하는 편인, 그렇다고 비건은 아니지만 식물성에 가까운 체질이라 터키요리는 한 점이면 땡.

우리 입맛에는 느끼하니 질기고 팍팍한 육질이 구미에 별로 댕기질 않는 칠면조다.

어느 땐 그래도 특별한 댕스기빙데이라 터키요리 대신 형태 비슷한 통닭튀김을 사다 먹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집집마다 추수감사절이면 큼다막한 칠면조 통요리를 하는데 거기 얽힌 유래야 미담이다.

그 옛날, 1620년 북미대륙에 건너온 청교도들은 첫겨울을 맞아 혹독한 추위와 기아로 죽어가고 있었다.

이때 원주민인 이웃 인디언들로부터 여러가지 도움을 받아 겨우 생명을 부지하게 됐다.

다음 해, 그들은 먹을 것을 주고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주었으며 씨앗도 골고루 나눠주었다.

그 덕에 청교도들은 낯선 땅에서 겨우 정착해 나갈 수 있었다.

그들은 인디언들에게, 첫 추수 후 감사를 표하는 뜻에서 야생 칠면조 요리와 호박파이를 만들어 함께 먹으며 감사예배를 드렸다.

거기서 유래한 추수감사절로서, 첫 이민자들에겐 사랑과 감사와 나눔의 의미가 담긴 날인 셈이다.

이후 정복의 역사가 시작되며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듯, 인디언들을 무지막지하게 내몰다 못해 참혹하게 도륙하기에 이르렀지만. ㅠ

추수감사절의 상징이 된 칠면조는 원래 북미대륙의 야생조류다.

일찍부터 인디언들이 길들여 가축으로 기르며 단백질 공급원으로 삼았던 동물이다.

인디언들에게 칠면조는 친근한 조류, 깃털로 옷깃과 머리를 장식하였으며 용맹과 권위를 상징하는 장신구로 사용하였다.

날씨 스산한 동부 뉴저지의 추수감사절도, 계절감각 무딘 캘리포니아의 댕스기빙데이 추억도 이젠 희미해져 간다.

하논 들머리 농가에 대추 달리듯 조롱조롱 늘어진 감 가지와 샛노랗게 익어가는 치자 열매를 보면, 여기가 문득 고향 같이 여겨진다.

단풍 고운 나뭇잎 하나 둘 낙엽 져 물가로 내린다.

귀향자에겐 그마저 다사로운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