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에 숭산 케이블카 타다

by 무량화

팬데믹 때문에 미룬 서안과 낙양을 이번에 4박 5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고대문명의 중심지였던 중원땅, 중원의 대도시로 변한 뤄양(洛陽)·시안(西安)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무대배경 중 한 곳이라 언제건 필히 가보고 싶던 장소들이기도 하다.

과연, 가도 가도 지평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땅은 무진 광대했으며 낙양성 주변의 산세는 매우 힘찼다.

시월 일기치고는 내리 우중충하니 빗발 긋는 날씨, 이는 하늘의 소관사이니 도리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대표적 고도(古都)인 장안과 낙양으로 떠난 유적답사여행이라 별로 개의치 않았다.

물론 기상 쾌청하다면 금상첨화이겠으나 병마용 같은 능침들이나 용문석굴과의 상봉자리엔 그런대로 어울리는 날씨같댈까.

하루 겨우 빤했을 뿐 매일 우산 지참해야 할 정도로 비는 계속 이어졌다.

소림사 탑림(塔林)을 지나 숭산(嵩山)으로 향하던 날에도 연신 비는 내렸고 숲안개 자욱했다.

고사성어 낙양지가(洛陽紙貴)란 말이 회자될 정도로 명문장가가 많았던 문화도시 중 하나인 뤄양, 낙양의 대찰 소림사를 품은 숭산이다.

높을 고(高)에 멧 산(山))이 모자처럼 씌워진 대로 산이 높고 크다는 의미의 嵩山은 중국 오악(태산, 화산, 숭산, 형산, 흥산) 중 중악(中岳)이란다.

유네스코지정 세계지질공원(世界地质公园)이자 중국 최초로 국가급 풍경명승구(国家级风景名胜区)로 지정된 명산이기도 하다.

하지만 산 아래에선 숭산 전체가 안개인지 구름에 가려 산세는커녕 대강의 윤곽조차도 가늠이 안 됐다.

케이블카를 타러 올라가면서도 오리무중 상태의 저 산을 과연 볼 수 있을까? 기대는 거의 접은 상태였다.

기대감에 들떠 먼 길 떠나온 우리는 다들 말을 잃은 채 묵묵히 산길을 걸었다.



산속으로 쑥 들어간 호젓한 길을 는개에 젖어가며 하염없이 걸어 올라가 케이블카 탑승구 앞에 섰다.

아무도 사진을 찍지 않았다.

주변이 온통 깊은 운무에 싸여 눈앞이 뿌옇기만 하므로 사진에 담을 풍물이란 게 도무지 보이지 않았으니까.

내심 케이블카를 타기도 겁이 났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밀려드는 인민들, 외국관광객보다 온데 내국인들 판이었다.

14억 인구이니 오나가나 명소마다 구름처럼 몰려다니는 사람들 천지라 멀미가 날 지경.

더군다나 어디든 입장하려면 표 검사야 당연하다 해도 매번 여권검사까지 받는 데 그만 질려버렸다.

구불구불 길게 줄 서서 한정 없이 기다리기도 지치는데, 마치 범법자가 정복차림의 공안 앞에서 아래위 쓱 훑어가며 조사받는 듯한 기분이 들어 불쾌감이 들었다.

하긴 공항 통과 시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유별나게 입출국자 신원 대조에 철저를 기하는 점이나 신체 구석구석 샅샅이 비로 쓸듯이 적확하게 검사를 하는 게 옳긴 하다만.

물론 문화재 보호차원 혹은 자연경관을 잘 지키려는 의도는 가상하다 해야겠지만 해도 해도 너무 심했다.

더 이상의 중국여행은 사양하겠노라고, 가볼만한 곳은 그간 동·서로 거의 다 가봤으니 이번으로 끝이라고 마침표를 꾹 찍어버렸다.

자유민주국가인 인천공항에 도착해 입국심사를 받는데 중국에 비해 오죽하면 거의 건성이다 싶을 정도였으니.



숭산 소림삭도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삼황채경구로 올라가는데 아무것도 보이진 않고 동체가 덜커덩거릴 때마다 긴장감이 아니라 솔직히 와락 무섬증이 일었다.

그나마 삭도 시공사가 스위스라기에, 낡긴 했어도 정기적으로 안전점검은 할 테니 설마 사고야 나랴 싶었다.

해발 1512m 숭산을 1천 미터까지 올라간다는 케이블카, 드디어 멈춰 섰고 우린 삭도를 벗어났다.

여전히 안개비 내리는 숲길, 가이드를 따라 뒤편 돌계단을 내려갔다.

지척 구분이 안 되게 운무 짙어 일행 거개가 산행을 포기하고 돌아섰다.

시야가 트이질 않으니 전망을 기대하기 어려운 정황, 일곱 명만이 좀 더 전진해 보기로 하고 숲길 잠깐 거쳐 암벽 다듬어 길을 틔운 잔도로 접어들었다.

산모롱이 하나를 돌자마자 안개가 스르르 걷히며 설핏 살푼 드러나는 숭산의 웅자.

너나없이 저마다 탄성을 질러댔다.

여태껏 보아온 그 어떤 산보다 뛰어나게 장엄한 산세에 나 역시 감탄사 절로 터졌다.

책을 겹쳐 세운 듯한 첩첩의 기암괴석들. 깎아지른 수십 길 암벽은 외경 그 자체였다.

종당엔 숫제 입을 다물고 경건히 합장배례라도 바쳐야 마땅한 산중의 산, 절대신의 모습이 이러할까.

여기 이르러 팍스아메리카나 미국마저 중국에 끝내 미칠 수 없는 부분은, 저들의 유장한 역사와 다양한 문화유산 그리고 자연경개가 아닐까 싶었다.

겨우 200년 남짓의 얇다란 역사에, 다양하긴 하되 짧은 역사라 문화유산도 별로 없으며, 애팔레치아· 시에라 네바다· 캐스케이드· 로키산맥 정도나 가진 미국이니 트럼프 승질 부릴만도.

이토록 산세 웅휘롭고 절묘한 숭산만이 아니라 웅대 화려한 화산을 보고서 거푸 그 생각이 들었다.



이 험한 산에 삭도를 설치하고 천길 낭떠러지 벼랑에 잔도를 낼 발상을 하다니.

위대한 역사(力事)라고 찬양하기 앞서 그로 인한 제 나라 백성의 희생은 간과했을, 천부인권이자 자연권

부재 내지는 말살정책이 AI세상만큼이나 가공스러워졌다.

화강암 바위 쪼아 길을 내면서 얼마나 많은 인민들이 스러져 갔을지, 저마다의 존재 자체는 그대로 다 귀하고 귀하거늘....

신선처럼 산천소요하며 자연 즐기는 우리와, 위험천만인 바위벽에 붙어 끌질하던 그들은 다른 종족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날 나는 환상적인 풍광에 취해 만족스레 웃으며 사진을 찍었구나.

이 넘사벽인 인간의 한계라니 아흐, 아파라! 아, 인간아! 이 인간아!

중국 고도와 명산을 주마간산 격으로 돌면서 그나마 모직 판초를 현지조달했기 망정이지 바람 고요해도 우산은 겨우 어깨까지만 가려줬고 젖은 운동화는 호텔방에서 헤어드라이기로 말려도 다음날 오후엔 도로 질퍽거렸다.

숲이고 절에서도 내내 우산을 받고 다녔으며 절반은 빗발 아랑곳 않은 채 하냥 비 속을 걸었다.

고도에서의 우중산책은 어쨌거나 그래도 두고두고 운치로운 기억으로 남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