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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09. 2024

몽땅 순딩이들인 스페인 개

카미노 스토리

살다 살다 이런 순딩이 견공들은 첨 본다.

덩치는 송아지만 한데 낯선 객이 지나가면 꼬리부터 내리고 슬금슬금 물러선다.

제 집 앞마당 기웃거리며 사진에 담아도 멀거니 쳐다보다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한다.

스페인 멍이들이 다 벙어리일 리야 없을 테고, 어쩌다 짖는 법을 잊어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희한하다. 유태인 태어나자마자 할례 받듯 모조리 성대 수술을 시킨 건가.

처음엔 동네 골목길 지나다 큰 개를 만나면 일단 경계태세에 돌입, 은근 몸을 사렸다.

몇 번 겪어보니 겁먹을 대상이 전혀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게 됐다.

사회주의 어린이들 마치 로봇처럼 일사불란하게 펼치는 섬뜩한  매스게임, 그를 위해 연습을 넘어 훈련받는단 말은 들었어도 설마 개를?

혹여 개도 군대나 삼청교육대 같은 곳에 들여보내 일정 기간 혹독스러운 조련을 받게 했는가.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자들 절대 놀라는 일없이 안전하게 마을을 지나가도록 국가 차원에서 조치를 취했나.

카미노 길은 스페인 관광청 수입에 있어 최대 효자종목이니까.

허나 만일 그랬다간 동물보호단체가 극성스레 활동하는 같은 유럽권에서 동물 학대한다고 집중포화 날릴 건데 일찍이
그런 뉴스 들어본 적 없고,

서로 의사소통 방식이 달라서 이긴 하다지만 개와 고양이, 심지어 앙숙지간이라 알려졌으나 한마당에 있어도 피차 소 닭 보듯 아예 투명체 대하듯 관심도 없다.

그 많은 산티아고 순례길 후기에조차 길고 긴 여정이건만 '개조심'은 한 번도 올라온 적이 없다.


스페인 농가 멍이들은 다들 태생이 순한 데다 양치기 개처럼 길이 잘 들어서인가.

신기하게도 스페인 개들은 하나같이 입에 재갈이라도 물린 듯 어떤 경우에도 어째서 도통 짖을 줄을 모를까.

그것이 알고 싶으나 묻지를 못했다.


스페인어는 부엔 카미노~ 외에는 입도 뻥끗할 줄 모르므로.



대신 잘 아는 한국 토종개 얘기로 슬쩍 넘어가자면, 진돗개고 픙산개고 삽살이고 한 성질 확실하게 한다.

한번 물었다 하면 주인이나 쫓아와 뜯어말려야 마지못해 겨우 풀 정도로 지독스럽다.

아는 교민 한 분도 한국에서 분양받아 데리고 온 족보 있는 진도를 키우다가 결국 손을 들어버렸다.

조금만 방심하면 펜스를 넘어가 불시에 사고를 치는 바람에 소문난 충견과도 도리 없이 인연의 끈 놓아버렸고.

토방 한편에 자리 잡은 순한 누렁이라도 먹던 밥그릇 누가 건드리면 앞발 버팅기며 으르렁, 이를 드러낸다.

당장 꺼지라며 위협적인 접근금지 사인을 보내면 개의 자존심도 있으니 자리 얼른 피해 줘야 한다.  

사나운 개 콧등 성할 날 없다고 개끼리 한바탕 물고 뜯으며 혈투 벌일 때는 자못 살벌하다.

투견 구경을 흥미 있다 하는 악취미도 있으나 핏불 테리어나 도사견이 상대 살점 물고 늘어지는 장면은 웬만한 비위

아니면 겁나게 끔찍스럽고 잔인해서 못 본다.

유년의 기억 속에는 아주 무서운 장면도 저장되어 있으니, 복달음한다며 장정들이 개를 그슬려 잡는 도중에 단말마 같은

괴성 지르며 냅다 도망치는 개 모습에 혼비백산한 적이 있다.

쥐약 먹고 죽은 쥐를 주워 먹은 개가 아궁이로 기어들던 모습이며... 촌에서 자란 사람들의 개에 대한 기억은 그 외에도 숱하다.  

예전 똥개는 워리~ 부르면 얼라가 따끈한 간식 떨어뜨렸다는 신호로 알고 쏜살같이 달려와 싹싹 핥아먹어치웠다.

마을에 행색 허름한 파락호라도 들어섰다간 동구 밖까지 따라 나오며 짖어대는 개 때문에 대략 난감, 더한층 꼴이 말이 아니게 되어버린다.  

낯선 객 그예 쫓기듯 떠나며 그악스럽게 사남 피는 개 향해 돌팔매질이나 해야지만 개는 수굿해져 돌아섰다.

요즘 사료 먹여 키우는 귀여운 애완견이니 반려견, 주인만 보면 꼬리 빠질 정도로 반기는 맛에 녀석 이뻐라 품어 안고 키운 댈까.

울 집 멍이만 해도 체중 조금만 늘었다 하면 딸내미는 당장 다이어트 사료를 배달시키며 관리에 들어가는데....

녀석 걸핏하면 밥값 한다고 왕왕거리며 짖긴 하나 손가락을 넣어봐도 깨물 줄 모르는 순딩이 중 순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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