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크러 설크러 ㅡ갈등과 상생

by 무량화


제주섬 곳곳의 곶자왈.


거기 가보면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들이 빛을 향해 발돋움하느라 키만 껑충 자라면서 비비 꼬였다.

그로테스크한 형태의 나무와 온갖 음지식물들이 마구 뒤엉킨 채 용암이 만들어낸 암괴 지대에 원시림을 이룬 곶자왈.

해서 대부분의 곶자왈은 어둠침침하고 기운 음산해 도립공원인 곶자왈조차 재차 방문은 사양한다.

특히 동백동산을 품은 선흘 곶자왈은 비경을 품은 데다 생태계의 보고라지만, 발밑에서 되울리는 괴이쩍은 소리에 질겁을 했다.

용암 언덕이 만들어지며 지표 아래 속이 빈 공동현상이 생긴 위에 이루어진 숲이라, 걸음 옮길 적마다 기묘한 울림이 느껴져 음산하기 그지없었다.


세계지질공원 대표 명소로 지정된 곳답다.



아마존을 지구의 허파라 하듯 제주의 허파 역할을 한다는 곶자왈이 도처에 산재해 있는 제주이기에 감탄 자아내는 풍경도 다수.

곶자왈에 흔한 콩짜개난 같은 착생식물은 광합성을 위해 키 큰 나무에 붙어서 더부살이를 하나 원 둥치에 피해는 주지 않는다.

겨우살이처럼 숙주나무로부터 물과 양분을 흡수해서 살아가는 몰염치족도 있는 반면, 스스로 썩어 생태계의 핵심 자원이 되는 예도 꽤 많다.


주로 낮은 자리에 낮은 키로 존재하는 버섯 같은 포자류, 이끼류, 치의류, 양치식물, 한해살이 풀 등등처럼.



요즘 어느 산야를 가나 무성한 칡넝쿨이 나무를 감아 조이며 숲을 휘덮고 있는 모습과 흔히 마주친다.

점잖게 감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둥치의 영양분을 빨아먹으며 세력 키워나간다.

양심도 없이 저만 살고 보자는 고약한 약탈자다.


근자 들어 한창 설치는 어떤 음흉한 정치인처럼.

칡만이 아니라 등덩굴도 수종(樹種)을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접근해 나무 둥치를 감아 숨통 콱 조인다.



만일 칡과 등나무가 한 곳에 자리 잡고 같은 나무를 타고 올라간다면 어찌 될까.

생태상 칡 줄기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등나무 줄기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아 올라간다고 한다.

이때 늦게 감고 올라가는 식물이 먼저 감고 올라가는 식물의 줄기를 누르게 된다.

따라서 먼저 감은 줄기는 밑에 눌려 서서히 고사하고 만다.

허나 뿌리까지 죽는 건 아니라서 죽은 줄기 위에 새순이 올라와 다시 나무를 감고 올라간다.

이제는 반대로 눌리게 된 줄기가 말라죽게 되니 자연계에는 영원한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을법하다.


길게 보면 인간사도 마찬가지, 권력 잡은 지금 당장이야 기세등등 세상을 제 맘대로 주무르나 화무십일홍에 권불십년은커녕 해를 버티기 어렵다.


<순자(荀子)>의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말로, 군주민수(君舟民水)란 경구가 있다.


'백성은 물이요 군주는 배이니, 강물은 배를 띄우지만, 강물이 성나면 배를 뒤집을 수 있다'는 뜻을 지녔다.


민심은 천심, 더욱이 현대는 여론형성과 결집이 초를 다투며 이루어지는 겁나는 세상이다.



일이 기묘하게 뒤얽혀 서로 불화하며 다툴 상황이 벌어지므로 칡 ‘갈’ 자와 등나무 ‘등’ 자를 합쳐 갈등이라 표기하였다.


갈등이란 곧 칡넝쿨과 등나무 덩굴이 서로 얽히고설키는 것과 같이 서로 상치되는 견해 등으로 충돌이 생기는 경우를 이른다.


그로 인해 알력·불화가 서로 상충하며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하지만 곶자왈 숲을 보면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닌듯싶다.


서로서로 의존하고 협력하며 상생하는 관계, 을이 없으면 갑도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세계가 자연.


모름지기 상생하는 자연에서 배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