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나요, 은목서 청신한 향을

by 무량화

맑은 향이 언뜻 스친다.

낯설지 않은 향이다.

어디서 나지?

향방이 가늠되지 않는다.

약속이 있어 솔동산 거리를 지나는 중이었다.

잠깐 멈춰 선다.

눈을 감아 본다.

서귀포성당 쪽이다.

타게 신부의 정원도 후줄근하게 시든 늦가을.

그 흔한 국화조차 피어있지 않다.

하긴 국화라도 진노랑 토종 국화만이 싸한 국향 그대로 품었을 뿐.


요새 흔히 유통되는 신품종 국화꽃들은 코를 바짝 들이 밀어도 아무 향이 없던데 그래도 벌이 찾아올까싶다.


스치기만 해도 향 묻어나는 잎새조차 비벼봐도 풀내만 날린다.



본당 앞에 선 짙푸른 두 그루 나무에서 하얀 보푸라기 같은 게 보인다.

수형 둥그스름 단아한 상록수다.

청신한 향기의 발원지는 거기였다.

서늘하도록 맑은 향을 풀어낸 주인공은 은목서였다.

그래, 지금은 은목서 꽃이 필 철이구나.

가을부터 겨울까지 결기 빳빳한 잎 새새마다 하얀 꽃 피어난 건 은목서, 황금빛 꽃이 피면 금목서다.

고아한 향기에 반해서일까, 이름자에 마저도 金(금)과 銀(은) 접두어가 붙다니.

처음 그 향과 만났던 곳은 부산 영주암, 큰애 대학시험 앞두고 새벽기도를 다닌 절이다.

차꽃 외엔 꽃이 귀한 철이라서였던지 유독 인상 깊이 각인된 은목서.

향에 혹해 따라갔다가 금목서와 조우한 곳은 범어사 너른 뜰에서였다.

금목서는 향이 좋은 데다 은목서보다 꽃도 눈에 띄기에 아파트에선 화분에 심기도 한다.

요샌 일반 주택이나 가로 조경수로도 심지만 이 상록 화목은 주로 사찰에서 가꾸는 나무였다.

수도자들이 기거하는 종교시설과 가장 잘 어울리는 수형에 향이 맑은 까닭이리라.

그만큼 향 자체가 은은하면서도 머리를 맑히는 기능이 있어서다.



서귀포성당 마당에서 한참을 서성댔다.

한 화가가 수십 년째 아침저녁 여섯 시마다 종을 울리는데 은목서 아래에서 그 종소리 들어봐야겠구나.


그 화가는 외국에서 초대전이 열려도 아내가 프랑스고 미국이고 대신 다녀온다.


비행기를 탈 수 없기 때문이다.


서귀포 밖 먼 데 외출을 못 하는 그 화백은 홍익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귀향한 후 서울 유학 외에는 서귀포를 떠난 적이 없다.


그를 은둔 예술가로 묶은 까닭을 나는 아지 못한다.


구원을 향한 희망과 존재의 허무라는 실존적 고뇌를 다루는 묵직한 화풍이라 인터뷰조차 저어 되던 화가는

또 하나 서귀포의 풍경으로 살아간다.


올해 초에도 개인전을 연 83세 노화가이나 그는 아직도 말수 적은 겸손한 청년같이 보인다.


투명하도록 맑은 은목서 청신한 향이 그에게는 어쩌면 너무 가벼울지도.


*은목서는 얼핏 호랑가시나무로 착각될 만큼 이파리 가장자리가 뾰족뾰족한 데다 작은 가시가 있으나 금목서 잎은 밋밋하고 갸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