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기슭 수성동에서 물소리 듣다

by 무량화

버터향이 후각을 간질대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한옥스테이를 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고소하게 스며드는 버터향 자극에 단잠에서 슬몃 깨어나다니.

전날 새벽같이 제주공항에 나가 김포로, 거기서 다시 인천공항으로 딸을 마중 나갔다가 급히 서둘러 경복궁 별빛야행까지 강행군해, 간밤 깊이 곯아떨어졌었다.

영락재에서의 아침, 시월 하늘 청아하고 바람결 삽상했다.

최대한 목재 한옥집의 아취 누리고자 창호문 활짝 열어제치고 누마루에서 양광 즐기며 여유 부리다가 쳌아웃 시간 가까워서야 집을 나섰다.

밝아서 보니 영락재와 바로 담을 맞댄 건물이 나름 소문난 영국식 디저트 맛집이었다.

어쩐지 골목길에서 영국이나 프랑스인 같이 늘씬한 유러피안 차림이 흔히 보이더라니.

그 집 후문 앞에 길냥이 밥그릇과 물그릇이 놓여있어 정겨운 주인일 거 같아 레몬스콘을 사가기로 했다.

입구에 밀가루와 설탕가루 부대가 높직이 쌓여있는 걸로 봐서도 꽤 이름 알려진 베이커리인 듯.



서촌을 또 언제 들리랴, 잠시 인왕산 자락 골목길 투어를 하기로 했다.

취향이 닮은 모녀라서 금쪽같이 귀한 짬을 '진경산수화길'에 할애키로 했던 것.

필운대로에서 옥인길을 따라 쭉 걸어가다 보면 누상동 어떤 집은 연희전문에 다니던 윤동주 하숙집 터라지만

그냥 스쳤고 박노수 미술관 또한 빠듯한 시간이라 건물만 일별 하고는 언덕길 따라 산 쪽으로 올라갔다.

벌써 어우러진 솔 숲 푸르고 하얀 화강암 훤한 이마가 멀찍이 드러났다.

날씨 청량해서인지 둘레길 따라 걷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인왕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크게 수성동(水聲洞)과 옥류동(玉流洞)으로 나뉘어 흐른다.

기운찬 이 물줄기가 기린교에서 합수되어 청계천의 지류 옥류동천되어 흐르는 초입 계곡이 여기다.

'수성동(水聲洞)'이란 이름 그대로 맑고 청량한 물(水) 소리(聲)가 인상적이라니 그 물소리에 잠깐이나마 젖어보고자 허위단심 찾아온 이곳.

겸재 정선은 자신이 태어난 터에서 평생을 살면서 전국 명산을 두루 돌며 화폭에 진경을 담았다.

그는 삶터 주변도 8폭의 진경으로 남겨 놓았는데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 중에는 인왕산 자락 '수성동'도 한 폭의 그림으로 남겨 놓았다.

암석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만 마리의 말발굽 소리처럼 크게 들린다는 인왕산 아래 계곡이다.

범상치 않은 절경지로 여름철 피서처라는 수성동 계곡의 물소리라면 그 옛적에는 숫제 우렛소리 같았겠다.



추사도 여기 이르러 빼어난 경관에 감탄, 水聲洞雨中觀瀑(수성동우중관폭)을 읊어 내렸다.

入谷不數武(입곡불수무) 골짜기에 들어서자 몇 발자국 안가

吼雷殷履下(후뢰은리하) 발밑에 우렛소리 우르르릉

濕翠似裏身(습취사이신) 젖다 못한 산 안개에 몸을 감싸니

晝行復疑夜(주행복의야) 낮에 가도 밤인가 의심되는 도다.

그런가 하면 역사지리서인 '한경 지락'에서 발췌한 글에 따르면 계곡 절경을 이렇게 기록했다.

水聲洞 在人王山麓 洞壑 幽邃 有泉石之勝 最好 暑月 遊賞 惑云此洞 匪懈堂(安平大君 瑢蹟也) 舊基也有橋名麒麟橋

“수성동은 인왕산 기슭에 있으니 골짜기가 그윽하고 깊숙하여 시내와 암석의 빼어남이 있어 여름에 놀며 감상하기에 마땅하다. 혹은 이르기를 이곳이 비해당 터(안평대군 이용의 옛 집터)라 한다. 다리가 있는데 기린교(麒麟橋)라 한다.” 는 옛 기록대로 골짜기는 깊고 암석마다 빼어난 자태다.

여기서 언급된 기린교라는 통돌다리가 후세 이르러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로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 서울시장 김현옥은 무분별한 개발 시대의 논리대로 수성동 계곡 가에다 1971년 아홉 동의 옥인 시범아파트를 지었다.

삼십여 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시민아파트는 노후화되었고 재건축 논의가 급부상했다.

이명박 서울시장 때부터 고려되기 시작했던 노후 아파트 정비작업은 오세훈 서울시장에 이르러 철거 계획으로 확정되며 탄력이 붙었다.

시민아파트를 헐어내는 와중에 '조선시대 돌다리 발견(연합뉴스)'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아파트 철거 후 인왕산 녹지를 복원하려던 처음 의도와 달리, 수성동 계곡 복원으로 수정됐다.

왜냐하면 여러 학자의 고증에 따르면 기린교라는 돌다리는 '신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여러 고서에 등장하였을 뿐 아니라 겸재의 '장동팔경첩'에 그려진 그 '기린교'였던 거다.

옥인 시범아파트가 건설되며 사라졌고 잊혔던 다리, 기린교는 그렇게 부활한다.

돌 폭 70cm 두께 35cm, 길이 3.7미터의 장대석은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그림처럼 다시금 정선의 '수성동 계곡' 그림대로 암반 사이 계곡 위에 걸리게 됐다.

복원비용은 엄청 들어갔다지만 현재 우리가 이곳을 찾아 150여 년 전 겸재와 추사의 마음 헤아리며 옛 정취에 잠겨볼 수 있는 이런 문화적인 호사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거야말로 돈 가치와 비교될까.


수성동계곡 초입 터줏대감 같이 위세 당당한 눗누런 줄무늬 길냥이 한 마리.

흡사 인왕산 호랑이 새끼 같으나 의외로 부끄럼 타는지 한사코 풀솦에 얼굴 박은 채라 그냥 인왕산을 떠났다.

인왕스카이웨이는 물론 겸재 정선 집터도 시인 이상의 집도 가재우물터도 다 생략하고 바삐 누상동 뒤로했다.

한 시 반 기차를 타야 하는데 잠시 한강도 보고자 하니 서둘러 통인시장 질러서 지하철을 타야 한다.

그 틈새에도 일제강점기 때부터 열렸다는 서촌의 전통시장인 통인시장통 몇 컷 담았다.

여기서는 자체 제작한 엽전으로 환전해 시장통 음식을 사 먹는 재미도 있다고 딸내미가 귀띔한다.

그새 서촌 명소 검색을 꽤나 했던가 본데, 간밤에 숙소 들어오자마자 기절하듯 잠들었으니 내사 깜깜이다.

시장을 빠져나와 지하철 타러 가다가 대로변에서 뜬금없이 세종대왕 태어난 자리도 얼핏 지나쳤다.

한강나루까지는 무리라 성수대교에서 유장스런 한강 물길 홀깃 바라보는 걸로 만족하고는 서울역으로 직행, 칼칼한 순두부백반으로 점심을 때웠다.

이후에도 딸내미와 밀착 동행을 이어가며 부산에서도 무지 바쁘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