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일월 품은 숲이라서인지 거목들 기상도 걸출하다.
곶자왈처럼 원시의 생명력이 살아 숨 쉬는 숲에는 양치식물과 콩짜개며 풍란 어우러져 무성하다.
밀밀하게 들어찬 우람한 둥치의 나무들 올려다보니
충분히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을만한 자격을 갖췄다.
분위기 자체가 외경감을 들게 해 다소곳 절로 공손해지며 말수 아껴진다.
그저 또 하나의 자연물 되어 비자숲에 흡수되듯 녹아든 자신.
생태숲다이 진녹색 온데 자욱한 비자림 숲길을 걷는다.
황톳빛 숲길에선 사각사각 별사탕 자그락대는 소리가 난다.
화산송이를 바닥재로 깔았다더니 건강증진 효과는 물론이고 감촉까지도 느낌 아주 상큼하다.
송이가 깔린 길은 맨발걷기 열풍으로 특수를 누린 길..
동글동글 부드러운 화산송이는 미네랄 성분과 원적외선, 음이온 방출 효과가 있어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항균 작용을 한다고.
날씨가 더 추워져 발 시립기 전에 비자림에서 맨발걷기도 해보시길.
숲향기로 말하자면 비자림만큼 독특한 데가 달리 또 있을까 싶잖다.
한약초 내음 같은 게 사방에서 말갛게 스며드니 청량감은 절로 따른다.
식물 속에 들어있는 정유 성분이 피톤치드처럼 숲 속 공기에 녹아든 테르펜 덕이다.
비자나무와 같은 주목과 상록수에 함유돼 있으며 살균 살충 효과가 있는 방향성을 지녀 신경을 안정시킨다고.
천천히 숲길 걷노라면 자율신경이 자극돼 정신집중의 효과를 본다는 설명글에 관심이 급 증폭된다.
비자(榧子)란 이름은 잎의 배열모양이
한자의 아닐 비(非)와 비슷하게 닮은 데서 유래하였다는데 과연 그럴싸하다.
길가로 뻗은 낮은 줄기의 비자잎을 사진에 담고는 이파리 살짝 만져본다.
잎새 어루만지듯 쓰다듬자 매끈한 촉감과 까칠한 침엽수 고유의 성정이 전해진다.
비자림은 눈 시원하게 해 주고 청각 상큼하게 열어주고 후각 청량하게 트여주고 덤으로 미각과 촉각도 선명히 깨어나게 해 준다.
시(視)·청(聽)·후(嗅)·미(味)·촉(觸), 오감 고루 자극해주니 이보다 더 좋은 데 어디일까.
두어 시간 형체 없는 정령처럼 부유하다 숲에서 나오니 심신 날아갈 듯 가뿐하고도 상쾌하다.
잠시동안이나마 맑은 기운으로 전신 세례 받으니 정화된 영혼, 이에 더할 나위 없이 충만된 사유의 시간을 선사해 준 비자림.
거리는 좀 멀지만 서귀포에 사는 동안 앞으로 여러 번 더 자주 비자숲을 오게 될 거란 예감이 들었던 대로,
두 시간 여 끄덕끄덕 차를 타고 와, 한두 시간 걷다가곤 하는 비자림이다.
오르내림 없는 평탄한 길이라 나이 지긋한 분들이 선호할 거 같으나 젊은 층의 선호도 역시 높다.
하여 사철 언제 와도 산책객 끊이지 않는 비자림.
첫눈에 반한 데다 새록새록 깊이 빠져들 게 하는 숲길,
언제라도 즐겨 찾는 이상향으로 내 안에 깊이깊이 각인시켜 둔 곳이다.
가끔 와서 무념무상되어 나무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오래오래 숲멍 누리기 좋은 곳.
사계절 언제라도 걸어볼 만하지만 특히
우중은 물론 비 내린 다음날도, 안개 짙은 날도, 해 쨍쨍하면 그늘이 좋아서도 거듭 찾게 되는 비자림.
최적의 삼림욕장을 만났으니 반소매 입는 철에는 더 자주 방문해, 모자 벗고서 동풍에 시원스레 즐풍(櫛風) 즐겨봐야겠다.
풍류(風流)가 뭐 특출난 건가?
이처럼 풍치 좋은 자연에서 멋스럽게 노는 일이다.
희수(喜壽) 나이에 이 이상 더 축복되이 누릴 아취가 그 무에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