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 결혼식날

by 무량화


어느새 삼십 년 전 일이 됐다.

인턴 과정이 끝나갈 무렵 아들이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선언이었다.

전혀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안된 상태라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아니 매우 곤혹스러웠다.

우리 부부는 아들이 그렇게 이른 결혼을 하리란 건 꿈에조차 생각지 않았기에 허둥거릴 밖에.

다만 그나마 잘 됐다는 생각이 든 것은, 어렵다는 신경외과 레지던트 3년을 견디는 데는 힘이 되지 않겠나 싶었다.

아무튼 그러구러 우리는 오십도 안돼 혼주 자리에 앉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구월 들어 결혼을 했고 이듬해 손녀가 태어났다.

손녀는 올해 스물아홉이다.

대학 때 만나 오래도록 친구로 지내온 참한 사람과 결혼에 이른 손녀.

지난봄, 손녀가 결혼할 사람이라며 남자 친구와 함께 인사드리겠다면서 제주에 왔다.

그때 처음 본 손녀 친구는 퍽 선하게 생겼기에 첫인상부터 좋은 사람으로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둘을 앉혀놓고 이런 말을 하였다.

여자는 결혼하면 대개 엄마 닮은 일생을 살게 된다는데 서현이도 결혼하면 엄마처럼 좋은 남편 만나서 잘 살 게 분명해.

그 말을 듣고 손녀 친구는 빙긋이 웃었고 손녀는 오오, 정말요? 라며 기뻐했다.

그러면서 "맞아요, 아빠는 정말 좋은 분이에요. 저도 아빠를 진심 존경한답니다. "



삼십 년 만에 참석해 본 한국 결혼식장 풍경은 매우 생경스러웠다.

미국 가기 전 조카 결혼식에 가보고 처음이니 세월이 그만큼 훌쩍 흘러가 버렸던 것.

과거 예식장 결혼처럼 시간에 맞춰갔더니 친할머니가 늦게 왔다며 눈총감이 되고 말았다.

세상과 유리된 듯 숲 속에 외따로 지어진 건물까지 모든 면이 변화된, 그것도 급변의 물살을 탄 세태를 반영하는 거 같았다.

나만 빠르게 변한 세상으로부터 한참 뒤처진 미국 조선족으로 세상물정 모르고 살아온 이방인이었다.

온데 생화로 장식된 화려한 웨딩홀은 중앙에 설치된 무대가 높직하면서도 길게 나있었다.

주례사도 예물교환도 폐백도 모두 생략됐으며 한 편의 연극 무대처럼 아니 드라마 세트장 보듯 모든 과정이 낯설고 이상하기만 했다.

미국식 결혼식장에서는 댄스파티가 독특했다면 한국의 요즘 결혼풍속도는 거의 문화적 충격감이었다.

결혼선언문을 양가 아버지가 각각 읽어내리는 방식도 특이했다.

신부 입장 시에 공식처럼 들려오던 결혼행진곡도 없었다.

축제를 즐기듯 신부도 연신 방긋방긋, 신랑은 드러내놓고 행복한 표정 지으며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졌다.

이날 신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신랑은 당당하고도 늠름했다.

자녀 결혼식은 양가 부모에게도 영락없는 이벤트성격 농후한 연기 무대이기도 하였다.

부모 입장식이 있을 때만이 아니라도,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고 무대 위를 걸어 나와 사위에게 전해줄 때 뜻밖에도 아들은 코믹연기까지 선보였으니까.

조명도 음향시설도 완벽하다 보니 누구나 한번은 근사한 배우 노릇도 해보고 싶은 걸까.

반면 나는 서툰 배우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아 진작에 신부가 되어 본 것도, 혼주 됐던 것도, 빨리 나이 든 것 모두, 새삼 고맙기까지 다.

아들 며느리에게는 너희들도 이제 진짜 어른이 됐구나. 수고 많았다, 며 등 도닥여 성원해 주었다.




새신부도 아니면서 어떻게, 무슨 맛으로 뷔페식을 마쳤는지 모르겠다.

어스름이 질 무렵에야 모든 절차가 끝나 딸과 나는 친정 언니네 가족들과 합류해 움직였다.

어두워져서야 아들이 연락 닿아 조카집 근처 어느 횟집에서 우리와 만나 소맥을 주거니 받거니 거나하게 마셨다.

난생 첨 마셔본 소맥인데 취기가 도는가, 내가 딸을 시집보낸 듯 헛헛해지는 데 아들 속은 지금 어떨까.

손녀가 애기적, 레지던트 하면서도 집에 오기만 하면 목욕도 맡아놓고 시켰다는 아들인데...

살아오면서 누군들 어려운 고비고비 넘기지 않았을까만은 그래도 삼십 년 세월 잘 살아온 아들 내외.

둘을 앉혀놓고 지난봄 손녀에게 해줬던 말을 들려주면서 서현이가 아빠를 아주 많이 존경한다고 하더라 했다.

며느리도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딸은 운명까지도 엄마를 닮는다니 서현이 역시 좋은 남편 만났을 테고 너희들처럼 잘 살아갈 거야.

그럼에도 아들 얼굴은 환하게 펴지질 않았다.

정말 딸 혼인시키는 부정(父情)은 그런가?

오래전 삼십 대 때 읽은 어떤 수필이 생각났다.

남편이 점잖은 교수분이신 여류의 에세이였다.

큰따님 혼사를 마친 날 밤, 늦도록 남편이 딸 방에서 나오지 않길래 살짝 문을 열어보니 담배 연기 자욱한 데서 딸의 피아노를 어루만지며 눈물짓고 있더라는 남편.

딸을 보내고 엄마인 자기만 속엣 것이 다 빠져나가 텅 빈 듯 허전한 줄 알았는데 남편의 눈물을 보자 가슴이 쩌르르 아팠다던 그 글.

문득 떠올라 괜스레 쩌르르해지는 내 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