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에는 아들이 마중 나와 출구 앞에서 기다렸다.
딸 혼사를 앞둬서인지 약간 들떠있었다.
평소의 차분하던 성정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누이를 만나자마자 수다스러워진다.
반가움을 에둘러 표현하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고가도로에 올랐다가 코모도 쪽이 아닌 광안대교로 달려가다 되돌아와 부산역을 두 차례나 스쳐 지날 정도였으니.
겨우 영주동 경사진 언덕배기 구불구불 감돌아서 숙소에 닿아 짐을 부리고 아들 집으로 갔다.
지난달 딸내미가 숙소를 조선비치로 정하려 한다는 말을 듣자 며느리는 방이 여럿 남아도는데 구태여 호텔을 잡으려 하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요새는 손님 되기도, 맞기도, 피차 신경 쓰이는 일이라 심플하게 숙소에 드는 게 편하다는 딸.
모처럼 아빠하고 엄마하고 세 식구 오붓하게 지내겠노라면서 더블침대에 싱글침대가 있는 방을 예약하겠다하니 더 이상 군말이 없게 됐다.
때마침 APEC을 앞둔 시기라 부산까지도 특급호텔은 통째로 비워둔 상태로 웨스턴 조선 대신 해운대는 파라다이스, 부산항 근처는 코모도로 숙소를 정해두었다.
그러나 한 달 후에 하필이면 요셉이 독감에 옴팡 걸릴 줄 어찌 알았으랴.
조부모 오시면 인사 올리겠다며 손녀와 새신랑이 왔으나 할아버지가 못 오신 터라 나 혼자 절 받기도 뭐 해 손사래치고는 고모가 준비한 결혼선물만 전해주고 숙소로 돌아왔다.
너무 피곤해 나도 그렇고 딸 역시도 저녁식사는 전혀 생각이 없었다.
애들이 들고 온 과일바구니에서 며느리가 키위 망고 용과 등을 깎아서 도시락에 담아줬으나 그조차 생각이 없어 냉장고에 넣어뒀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잠에 빠져버렸다.
이튿날 새벽같이 잠이 깨 커튼 제치고 창문을 열었다.
연보랏빛 여명이 어리인 서쪽 하늘.
동창을 열자 고층건물 사이, 부산 앞바다 대교 위로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대기는 맑고 투명했다.
청량히 푸르른 전형적인 가을 하늘.
흰 구름도 적당히 떠있었다.
가을하늘 공활한데... 애국가 한 구절대로다.
경사스러운 혼례식 날로는 최상의 날씨였다.
하늘도 오늘의 주인공인 신랑신부를 축복해주고 있었다.
결혼식은 오후 세 시 반이라 오전시간은 널너리 했다.
우선 가까운 용두산부터 오르기로 했다.
기온이 약간 쌀쌀했다.
어깨에 걸쳤던 스카프로 목을 감쌌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부산에서 몇 년 지내면서 지하철 타고 골목길 누비며 돌아다녔기에 지리는 훤하다.
게다가 오래전 책을 낼 적마다 교정 보러 숱하게 드나들던 동광동이라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었다.
가다가 그 유명한 사십 계단도 지나고 50년대 풍물도 스친 다음 출판골목 거쳐 용두산 올라가는 동쪽 입구에 이르렀다.
층계를 올라가는데 아직 애송이 티도 못 벗어난 냥이 한 마리가 비둘기를 겨냥하며 미동도 안 하고 사냥감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너무 어려 깜냥도 안 되건만 제 몸피만 한 상대를 잡아보겠다고 겨누는 냥이의 태생적 본능이랄까.
그 모습이 한편 귀엽기까지 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그 짝이 아닌가, 내심 실소가 터졌다.
딸내미가 살짝 손을 뻗어 나를 제지시키며 멈춰 섰다.
나도 멈칫, 엉거주춤 상태로 기다릴밖에.
폰을 열었으나 비둘기는 쉴새없이 아래위로 자리를 옮겨댔다.
그러다 산책객이 나타나자 비둘기는 단숨에 후르룩 날아가버렸다.
혼자만 긴박했던 대치상태를 푼 냥이도 하릴없이 언덕 풀숲으로 사라졌다.
용두산 꼭대기 전망탑과 꽃시계와 이순신 장군 동상은 여전스레 자리를 지켰다.
이른 시각이라 공원은 텅 비어있었다.
해마다 만추가 되면 금관을 쓴 듯 멋지던 서쪽 입구 은행나무들은 단풍 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급시장기가 들어 우리는 섬진강 재첩국집으로 향했다.
이 집도 딸내미가 사전에 검색해 찜해둔 곳이다.
미국에서 맛보기 어려운 하동 섬진강 산 싱싱한 재첩. 보얀 국물에 뜬 녹빛 부추 휘휘 저어 따끈할 때 훌훌 떠먹으면 속이 다 개운할 듯.
남포동에 위치했으니 걷기로 하고 새벽공기 가르며 언덕길을 내려갔다.
일곱 시부터 연다던 재첩국집은 문이 닫혀 있었으며 내부 수리 중이란 공지가 붙어있었다.
여기 말고도 재첩국집 많다고 했으나 평점 가장 높은 집이 섬진강 이 집이라면서, 대신 오다가 본 아는 복국집으로 가서 까치복과 밀복 지리를 시켰다.
경남복국집은 전에 부산살 적에도 더러 왔던 곳이라 믿음이 가고 반갑기도 했다.
신석기시대 유적인 패총에서도 어김없이 복어 뼈가 나온다 했듯, 그 옛적부터 즐겨온 시원한 복지리 뚝배기 깨끗이 비우고 영도다리를 건넜다.
롯데백화점이 들어선 예전 시청자리며 영도다리 옆의 새로 난 부산대교에 딸은 거푸 신기해했다.
영도땅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두 개의 기념비, 한쪽은 도개식 영도대교 기념비이고 한편은 '굳세어라 금순아'를 히트시킨 현인 노래비다.
현인 노래비 뒤편 영도경찰서 바로 옆으로 난 골목을 들어서면 곧바로 바다가 코앞.
도선장인지 뭔지 낡은 배가 빽빽이 서있고 그 또한 낡고 허름한 선박부속품들이 구지레하게 널려있는 곳이다.
이 길을 타고 십분 쯤 가면 깡깡이마을이 나오지만 이 지점에서도 그 마을 분위기가 읽히므로, 우리는 다시 영도다리를 건너 자갈치로 내려갔다.
유라리광장을 지나며 부산에서 신의주를 거쳐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야무진 포부가 담긴 장소라고 슬쩍 아는 척 한마디.
자갈치시장 억척 아지매의 원조는 전쟁통의 월남 피난민들이다.
당시의 피난가족을 형상화한 동상은, 얼마나 숱한 사연을 품고 있을까 싶어 볼 적마다 애연하다.
육이오 전쟁의 비극을 피상적으로만 느낄 수밖에 없는 세대인 딸내미는 이마저도 심상하게 스쳐버렸다.
마침 자갈치축제 기간이었다.
부스가 도로 양가에 죽 늘어서 있고 안에서는 음식 준비로 손길 바빴다.
날씨가 좋아 축제는 한껏 흥청거리겠다, 다행이다.
잠깐 맛보기로 자갈치 시장 안으로 들어가 싱싱한 횟감과 해물을 구경했다.
일러서인지 카메라 때문인지 손님이 아니다 싶었는가
말 붙이는 상인들 없어 맘 편하게 돌아다녔다.
건어물 좀 사갈테냐고 물으니 한국마켓 가면 천지라며 짐 보태는 거 싫다길래 오케이~ 통과했다.
후다닥 그렇게 자갈치를 일별하고 그쯤에서 중앙로를 따라 숙소로 올라갔다.
들고 온 한복을 다림질하려면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헤어 클립을 만 채로 다리미질을 했다.
세 시 이전에는 손녀 결혼식장으로 출발을 해야한다.
https://brunch.co.kr/@muryanghwa/8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