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오 년 여 부산에서 살면서도 어쩐 일인지 한번도 올라가 볼 엄두를 내지 못했던 곳이다.
언제이고 꼭 가봐야지, 마음에 끼어두고 미뤄둔 장소도 아니다.
왠지 썩 내키지 않았기에 새로운 곳 찾아다니기 좋아하면서도 여긴 예외였다.
공원 이름에 붙은 민주란 단어에 식상해서도 아닐 테고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서도 아니었다.
하긴 전에는 대청공원이라 불렀지 민주공원이란 명칭은 근자에야 들어봤다.
산꼭대기 높기로 치자면 금정산 정상이 훨씬 더 높다.
그럼에도 거긴 산행로가 번다할 정도인데 이곳을 오가는 노선버스엔 손님조차 별로 없었다.
고로 이름이나 높이 때문도 아니고 교통이 불편해서도 아니겠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민주공원에 대해 관심 둬 본 바 없다 보니 그곳이 어떤 종류의 공원인지도 몰랐다.
얼마 전 부산을 찾은 모 대통령 후보가 충혼탑에 참배하는 뉴스를 통해서 겨우 의미를 파악했을 정도다.
그때 영상을 보고 처음으로 내용 알게 된 공원인데 시민 된 도리로라도 한번은 방문해 봐야겠다 싶었다.
산동네를 지나 공원에 이르자 조경수들은 누릇누릇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언덕 위에 그리 너른 터가 닦여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북쪽의 충혼탑을 중심으로 한 중앙공원과
남쪽 보수산 정상의 민주공원으로 각각 나누어질 만큼 규모 대단하다는 것도 올라와 보고야 알았다.
부산항을 내려다보고 있는 초량 산복도로 맨 위에 있는 이 공원은, 6.25 때 판자촌을 이뤘던 보수산 꼭대기에다 만든 공원이다.
70미터 높이의 무작스레 큰 충혼탑은 구도심 어디에서나 쉽게 눈에 띄는데, 오래 그 용처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볼 적마다 대체 멋대가리 없는 구조물인 저게 뭐지? 할 만큼.
부마민주항쟁을 이끌어 낸 부산시민들의 충혼정신을 드높이고자 만들었다는 탑인데 솔직히 상부만으로는 예술적 조형미를 도시 느낄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하단 부분을 보고 나서야 아하! 했지만.
탑을 받드는 여러 개의 구조물에도 작가 나름 의미를 담았겠지만 국가 위해 목숨 바친 푸른 청년들을 기리는 청동 조각상이 토해내는 충혼정신이야말로 이 탑의 존재이유였으리.
드넓게 자리한 공원에는 각종 시설물이 배치돼 있었으므로 볼거리는 많았으나 늦은 오후라 거의가 문이 닫혔다.
충혼탑부터 올라갔다가 광장으로 내려와 한 바퀴 돌아보던 중에 그냥 한번 들른 야외 조각 공원.
독립운동가의 동상이며 4.19 광장의 기념물 등이 불의에 저항한 부산 시민의 숭고한 민주정신을 상징하는 민주공원다웠다.
민주공원과 중앙공원 사이 민주광장 뒤편에 자리 잡은 조각공원 역시 인적은 끊겼다.
독립투사의 조각상과 호국 유공자를 기리는 기념비를 비롯, 부산 출신 조각가의 작품들이 야외에 전시된 채 깊은 적요 속에 잠겨 있었다.
방대한 규모로 조성된 공원이건만 전체적으로 방문객이나 이용자가 적어 한산하다 못해 휑한 분위기였음은 날씨 탓만일까.
사람 마음은 대동소이하다, 공원 주변이 적적하다 못해 아예 휘휘할 정도이니 찾는 발길 뜸할 밖에.
대충 둘러보고 어서 벗어나고 싶을 정도로 삭연한 느낌을 주는 공원이라면 관할 행정처의 책임부터 묻게 된다.
안목 문제일까.
도시정책 입안 시 공원 계획은 들어있었으나 고심한 흔적이 보이긴커녕 편성된 예산 억지로 집행하기 위해
조각품만 디립다 들어앉힌 꼴의 무성의함이라니.
누구라도 한번 와서 걸으며 아름답고 쾌적한 환경에 반했다면 숨은 명소더라는 입소문은 꽃향기처럼 퍼져나갔을 터다.
부산시내와 앞바다 전모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터임에도 위치상의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한 이곳.
길고양이 무리만 조각품을 놀이터 삼아 오르내리고 있었다.
*몇 해 전 부산에 살며 골목투어하던 당시에 쓴 글인데 딸내미 왔을 때 코모도에 이틀 머물며 서쪽 창가에 서면 마주 보이던 조형물이 바로 이 충혼탑이었다.